(6)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밝히다-난치성 망막질환 앓는 수필가 이지원씨

▲ 시력을 점차 상실해가는 아픔 속에서도 당당하게 수필가로서 전국단위 수필가상을 수상하고 수필집도 출간한 이지원씨가 인터뷰 중 활짝 웃고 있다.

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어려운 일일수록 피하지 않고 꿋꿋이 맞서는 정공법이 통해요. 사막의 낙타는 그늘이 없을 때 오히려 얼굴을 태양과 마주하죠. 얼굴은 비록 화끈거리지만 몸통 부위엔 그늘이 만들어지거든요. 반대로 태양을 피해 뒤로 돌아서면 몸 전체가 열을 받죠.”

수필가 이지원씨는 시야가 점점 좁아지다 결국 시력을 잃게 되는 병을 앓고 있다.

‘난치성 망막질환’으로, 3급 중도 시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일반인의 시야각이 160도인 반면 현재 그의 시야각은 고작 10도에 불과하다.

난치성 망막질환으로 시각장애 판정에도
2006년 ‘문예한국’ 신인상으로 등단
이달 초 3여년만에 두번째 수필집 펴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계속 글 쓸 생각”

그렇다보니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는 이상 사람을 알아보기도 힘들다. 겉만 보면 분명 아무렇지 않은데, 길을 가다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생긴 상처도 많다.

그런 그가 이달초 3년여만에 어렵게 두번째 수필집 ‘낙타가 태양을 피하는 방법’(도서출판 수필과 비평사)을 펴냈다.

점점 더 악화되는 눈 상태 탓에 스스로를 다잡고 채찍질한 결과다.

31일 만난 이씨는 “이번 작품을 쓸 땐 눈 상태가 나빠져 더 힘들었다”며 “언제 글을 못쓸지 몰라 마음이 항상 많이 바쁘다. 다행히 첫 책 보다 반응이 좋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번 수필집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대목은 표제작 ‘낙타가 태양을 피하는 방법’과 그의 눈 상태를 솔직하게 밝힌 4편의 작품. 3년전 첫 수필집 ‘무종(霧鐘)’과 이번 수필집까지 그동안 그는 자신의 이런 상황을 작품을 통해 밝혀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좋은 글을 위해 정진하는 그의 모습은 동료 문인은 물론 독자에게도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왔다.이씨는 “늘 글을 진솔하게 쓰려고 한다”며 “처음에는 미사여구로 치장도 하고 어물쩡 하기 싫은 얘기는 피하기도 했지만, 문학을 한다는 게 결국 내게 솔직해지는 일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06년 졸업 후 ‘문예한국’ 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이후에 일과 병행하며 수필을 써왔다. 2010년부터는 홍억선 수필가에게 지도를 받으며 더 정진해 2013년 첫 수필집을 냈다.

눈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진 건 몇 년 전 방송대를 다닐 때였다.

“고전시학 강독 시험을 보는데 갑자기 글씨가 잘 안 보였어요. 문제를 못 읽어 과락이 났어요. 그때만 해도 과로인 줄 알았는데 망막이 안 좋아져서였더라고요. 공부는 계속 하고 싶어서 그때부터 다초점 렌즈를 끼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병이 다소 더디게 진행돼 장애에 점차 적응하다보니 일상생활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상태다.

다만 책을 읽을 때는 독서확대기를 이용해야 하고 글을 쓸 때도 남들보다 집중해야 하는 탓에 더 빨리 피곤해진다. 이씨는 “여고시절부터 책을 좋아했고 한국은행에 근무할 때도 작가를 꿈꾸며 문학대회 같은데 참여하며 계속 글을 썼다”며 “마흔에 퇴직한 이후에도 여러 일을 해봤지만 다른 것은 짧은 흥미로 끝난 반면 글쓰기는 가장 재미있고 점점 더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눈 건강에는 나쁘겠지만, 그만뒀을 때 오는 스트레스보단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니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특히 수필은 문학 치유로 가장 적합한 장르다. 이글대는 태양에 맞서는 낙타의 지혜처럼, 나 역시 조금씩 더 나빠지겠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앞으로도 글을 써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창환기자 cchoi@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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