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두서 개운사

▲ 두서면 내와리 큰고개골을 지나 개운사로 가는 산길에는 구절초와 코스모스 등 들꽃들이 지천으로 한들거린다.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에서 두서면 내와리로 향하는 활천내와로(路).푸르른 하늘과 어우러진 너른 논둑 너머에는 누런 벼 이삭이 고개를 숙였다. 늦가을의 풍요로운 들판은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마음의 평화를 불러준다.

복안천(伏安川)을 거슬러가다 보면 지명 유래를 짐작할법한 들판들이 정겹다.

호미지맥으로 이어지는 천마산과 길동무를 하는 동안 버드밭들, 장디들, 모래보들, 음달들 등의 이름이 이어진다.

길이 갈리지는 불성골 입구까지 민가가 끊일 듯 말 듯 보이지만 내와리까지 홀로 가기에는 긴장감이 살짝 엄습한다.

경주지진 진앙과 4㎞ 거리 내와·외와마을
미호들, 못안골, 서당골, 오시박골 지나
김유신 장군이 도를 닦았다는 ‘백운산’
형산강 지류 이조천 발원지 ‘박달저수지’
숲마을길 끝엔 펜션 모양 절집 ‘개운사’
산 반대편엔 태화강 발원지 ‘탑골샘’도

반구대로 미호교차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간 뒤 미호리에서 이어지는 전읍복안로(路)로 마찬가지다.

미호들, 못안골, 서당골, 오시박골로 지나다보면 골짝 어디선가 멧돼지나 호랑이라도 덮칠 듯한 첩첩산중이다.

두서면 내와리는 시간이 멈춘 듯 한 두메산골이다. 예부터 도시와 거리가 멀어 교통 불편이 계속 되고 있고 현재도 308번 시내버스 노선 하나에 의존하고 있다.

불성골 입구에서는 길이 나눠진다. 왼쪽으로는 내와마을회관, 오른쪽으로는 울산숲자연학교(옛 두서초등학교 내와분교) 방면이다.

▲ 절 입구에 영남알프스 둘레길 5구간 표지판이 서 있다.

내와마을회관 쪽으로 가는 호젓한 산길은 찬물골, 북바위골, 개호치골, 어더붕골을 지나게 된다. 복안천을 따라가면 중매들, 큰고개골을 지나 울산숲자연학교가 있는 외와마을을 만나게 된다.

이 일대는 한때 기와를 굽던 곳이었다. 그래서 안쪽 마을을 ‘아네’, 바깥쪽 마을은 ‘바데’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내와마을 뒷산이 골처럼 생겼다하여 안쪽은 ‘내와’, 바깥쪽은 ‘바데’라 했다고도 한다.

특히 이 마을은 산간분지라 추울 때와 더울 때의 기온차가 심해 볍씨도 조생 종자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수원이 길지 않은데다 지하수도 별로 개발되지 않아 관개용수 부족으로 항상 농사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내와마을은 백운산을 서쪽으로 등지고 있다. 평균 해발 400m의 고지대 산촌으로 교통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오지에 속한다.

▲ 콘크리트 산길 끝에서 펜션을 절집으로 쓰고 있는 개운사

백운산은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영기를 얻었다는 영산(靈山)이다.

신라시대에는 인박산(咽薄山) 또는 열밝산이라 불리며 무척 신성시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두식 표기로 ‘열’은 ‘열치다’, ‘박’은 ‘밝’과 같은 의미여서 ‘밝고 광명한 산’으로 해석한다. 김유신이 경주 중악((中嶽, 단석산으로 추정) 석굴에서 수도한 다음 해인 18세 때 이곳에 들어와 수도한 곳으로 전해진다.

울산숲자연학교와 내와마을회관 사이에는 큰고개골이 둥그스름한 고갯길로 이어져 있다.

맡뫼마을 버스정류장 가까이 고갯길 중간으로 길이 나있다. 들머리에 ‘대한불교조계종 개운사’라는 간판이 서 있다.

절골들, 어름골이 이 주변에 있다는 말을 산꾼들에게 들어보긴 했다. 가파른 저 뒤편으로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

제법 경사진 오르막길이 금세 끝나자 꼬부랑 산길에서 가을꽃들이 기다린다.

호젓한 산길 옆으로 구절초와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한들거린다. 들꽃이 어쩌면 조경작업을 해놓은 것 마냥 정연하다.

살짝 숲 장막을 걷어낸 삼강봉 쪽으로는 탐스런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추운 겨울을 날 까치들이 먹으라고 남겼나보다. 내와 임도 입구 밭두렁에는 먹음직한 호박잎이 무성하게 뻗어 있다.

산길 오른쪽으로 산을 깎아내고 평탄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곳에 고급 전원주택단지나 택지를 개발할 모양이다.

하긴 4~5년 전 이곳과 마주보이는 박달저수지 인근 약 100만㎡ 토지를 일본인들이 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났었다.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 이후 일본인들이 집단거주지역을 찾는다는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었다.

당시 규모 9.0의 대지진에 이은 방사능 누출로 이곳을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 악몽을 달래려 했던 모양이다. 적어도 지난 9월 규모 5.8의 강진이 경주에서 발생하기 전까지는…. 내와리나 박달리는 울산과 경주라는 행정구역상 금만 그어져 있을 뿐 담장 없이 지내는 한마을이나 마찬가지다. 경북 경주 내남면 박달리에 위치한 박달저수지는 울산과 경북의 경계이자 형산강 지류인 이조천(伊助川)의 발원지이다.

 

콘크리트 산길 끝에 알프스 산록을 배경으로 한 사진에서 본 듯한 그림같은 펜션이 나타났다. 개운사다. 절 입구엔 영남알프스 둘레길 5구간 표지판이 서 있다.

기왓장을 덮지 않은 펜션모양의 절집은 처음 본다. 펜션을 사들여 사찰로 쓰는 모양이다.

절집 앞에서 우락부락하게 생긴 일운 스님을 맞닥뜨렸다. 지난해에 절 입구에 구절초와 코스모스 씨를 뿌렸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산 반대편으로는 울산의 젖줄 태화강의 발원지인 탑골샘이 숨어 있다.

탑골샘이 가까운데도 내와리는 여름이면 늘 물이 부족하다. 올여름 유례없는 폭염 때는 박달저수지가 거북등처럼 바닥을 드러냈다. 한 마을주민은 수몰되기 전의 집터까지 봤다는 목격담을 들려줬다. 40년 가까이 된 박달저수지를 조성한 이후 바닥이 보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최근 비가 자주 내린 저수지에 민물새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 박달저수지뿐만 아니라 외와작은지, 외와저수지에 낚시꾼의 발길도 늘었다.

이곳에서는 시퍼런 저수지 아래로 항상 고향을 품고 있는 수몰민의 추억도 아련히 남아 있다.

올해는 지진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벼 이삭이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멱 감던 개울가에는 복분자와 딸기 꽃이 지천이었고 송사리 잡던 봇도랑과 거름 무더기도 마을의 한부분이다.

박달 출신인 수필가 김귀선씨는 장성한 아들을 잃은 계산 댁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던 감나무 밭도 잊을 수 없다. 아이들의 불장난으로 벌겋게 타오르던 보릿짚 볏가리, 아랫마을에서 들려오던 ‘꼬~꼬오 멍멍 와그장창창~’소리까지 기억한다. 두서 내와리로 가는 길은 선사시대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 느낌이다. 글·사진=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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