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산을 이고 사는 사람들-7)운문산 호랑이 사냥꾼

▲ 운문사 경내 호랑이 벽화. 황소만한 호랑이를 탄 산신령이 유유자적 산속을 향하고 있다.

1917년 동짓달, 기세 좋게 퍼붓는 눈발을 뚫고 운문령(雲門嶺)을 오르는 사냥꾼이 있었다. 구만산, 억산, 운문산, 가지산, 쌍두봉의 된비알에 찍힌 호랑이 발자국을 끈기 있게 추적해온 사냥꾼의 눈깔은 뒤집혀 있었다.

고기 맛이나 볼 요량으로 산짐승을 쫓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하루에 수 백리를 이동하는 호랑이를 따라잡기란 여긴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호랑이의 보폭이 80㎝에 달한다면 무명 홀대바지에 각반 찬 사냥꾼의 걸음새는 반도 되질 않았다.

운문령 아래 생금비리에서 호랑이가 발톱으로 할퀸 나무를 발견한 그는 나무둥치에 코를 대 냄새를 맡아 보았다. 오줌냄새가 짙은 것으로 봐선 호랑이는 얼마 전에 지나간 것으로 여겨졌다. 부지런히 추적하면 놈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랑이 오줌에는 다른 짐승이 공포감을 느낄 고유의 물질이 들어 있었다. 여러 짐승들이 다녀가는 이런 나무를 표시목(標示木)이라 하는데, 야생 우체통 역할을 하였다. 호랑이가 표시목에 영역 표시를 하고 가면 다른 짐승들이 이를 알아차리고 황급히 피해가는 것이다.

▲ 호랑이가 진호하던 운문산 범봉. 운문산 주변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운문산을 일명 호거산, 지룡산을 복호산이라 부른다.

그는 발자국과 배설물만 보고도 짐승을 파악할 수 있는 백전노장 사냥꾼이었다. 멧돼지 똥은 건조하고 억센 편이고, 항문이 큰 반달곰 똥에는 열매 씨가 섞여 있었다. 육식성인 담비나 삵, 오소리, 족제비 똥은 가느다란 반면에 호랑이 똥은 씨알부터 월등히 굵었다. 홍두깨 굵기의 호랑이 똥에는 잘게 부순 뼈 조각과 털 그리고 잡초 따위가 섞여 있는데, 잡초는 소화촉진을 위해서였다.

호랑이 배설물 특유의 냄새로 다른 짐승은 접근 피해
운문산 출몰 호랑이 잡으러 착호갑사 출신 포수 출동
야밤에 들리는 포효소리에 뛰쳐나가 한밤혈투 펼쳤지만
최적의 서식지인 운문산 호랑이 포획 소식은 안들려

그는 호랑이 잡는 착호갑사(捉虎甲士) 출신이었다. 착호갑사는 인명과 가축을 위협하는 호랑이를 사냥하는 관군으로서, 이들은 조선시대 국난(國難)이 발생했을 때 전투의 최선봉에서 싸운 최정예 대원들이었다. 청산리전투에서 전과를 올린 홍범도 장군도 착호군 출신이었다. 조선 땅이 완전한 왜인 속국이 되면서 분개한 그들은 의병이 되거나, 짐승이 다니는 길목에 목매를 치는 홀치기로 입살이를 해야 했다.

여우네 봉놋방을 지나 운문 삼계마을에 도착한 그는 호랑이를 모신 산신각에 들러 예를 올렸다.

 

그를 알아본 동네 노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산간오지 논 한 마지기 값이나 마찬가지인 송아지를 호랑이에게 잃어버린 노인은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미치광이 풋나물 캐듯 늘어놓았다. “언양장에서 산 송아질 몰고 생금비리 부자바위를 내려오는데 겁 많은 송아지가 발굽을 떼지 않는 기라요. 혹시 호랭이가 노리는가 해서 바짝 긴장을 했지요. 호랭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호랭이가 번개처럼 덮친 기라요. 들고 있던 횃불로 쫓았지만 송아지 목덜밀 문 놈이 나한테도 달려들려 해 내뺄 수밖엔 없었단 말임더.”

운문령 비알에는 소뿐만 아니라 소장수까지 실종되는 호사가 잦았다. 향 좋은 소나무를 집중 벌목하는 산판꾼과 화전민이 늘어나면서 갈 곳을 잃은 호랑이들이 가축과 인명을 노리는 종종 일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인 총포 소지금지령이 내려지기 전이라면 호랑이를 척살하던 조선 관군 착호갑사가 출동을 한 것이다.

그는 송아지를 물고 달아난 운문산 호랑이 추적에 나섰다. 호랑이 발자국은 운문산 북능 배너미재로 나 있었다. 호랑이는 다른 짐승과는 달리 항상 뒷발이 앞발자국을 일자(一字)로 되밟는 습성이 있었다. 다 큰 호랑이의 발자국 크기는 20~30㎝로 성인 손바닥 크기이다. 앞발가락은 4개이고 뒷굽 패드는 간장종지처럼 둥글다.

운문산 북능은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소굴로 들어가라는 말은 바로 이곳을 가리킨다.

 

억산, 범봉, 운문산, 가지산 그리고 지룡산(일명 복호산)에 에워 쌓인 무인지경 계곡은 지리에 밝은 토박이라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깊고 깊은 심심(深深), 신비한 학심(鶴深), 길 잃은 오심(奧深)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냥꾼들조차 출입을 꺼려하였다.

배너미재에 도달할 무렵엔 해가 그렁그렁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배너미재 아래에 있는 외딴 움막으로 찾아갔다. 게딱지 움막에서 나온 산판꾼이 그를 알아보았다. “누군가 했더니 간이 배밖에 나온 나으리시구만.” 그가 착호갑사 시절 몰이꾼으로 동원되었던 인물이었다. 친일 순사 등살에 들볶이다 못해 산으로 내몰려 산판을 굴러다녔다.

움막 모닥불 옆에 앉은 두 산중호걸은 산중생활 이야기를 나눴다. “엊그제 학소대 방구(바위)에서 마루타(통나무) 내릴 때였소. 바위틈에서 화덕 같은 범불이 새파랗게 노려보기에 놀라 자빠진 적이 있었소. 불을 켠 눈깔이 하나 됐다가 둘 됐다가 그랬거든요. 부리부리한 눈빛이 가까이서는 빨간 두 개, 멀리서는 파란 하나로 보였소. 도사견보다 큰 중개만 하더군요.” 담력 좋은 산판꾼 호랑이 목격담을 늘어놓았다.

“도사견만한 놈이라면 내가 쫓는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이요. 호랑일 보고 백수의 제왕이라 하지 않소. 호랑이는 정면승부를 합니다. 산중에서 자기보다 강한 짐승이 없으니깐 요. 보통사람은 이빨을 드러내고 우르릉거리는 놈을 보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질금질금 싸죠. 호랑이 사냥은 녀석이 정면에서 덮칠 때를 이용해서 한 방에 조져야 합니다. 두 번 기회가 없죠. 한 순간에 결판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내 목이 날아갑니다.”

“여긴 호랑이 소굴이요. 학소대 도랑물에 손 씻고 있는데 요강만한 돌이 떨어지기에 올려다보니 누런 호랑이었소. 산신할배가 밥을 안 줬는지 비쩍 마른 놈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어요. 운문산 산판꾼들 언제 호랑이 밥이 될지 몰라요.”

그때 움막 밖에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호랑이 포효가 들렸다. 지축을 흔드는 호랑이 우짖는 소리를 들은 사냥꾼 눈빛에 서릿발이 섰다. “저 놈은 가까운 데 있어요. 호랑이 소릴 듣고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소.” 사냥꾼은 총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아는 길도 밤길은 걷지 말아야 했소. 날이 밝으면 가시죠.” “호랑이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소. 아침이면 벌써 백리 밖에 있을 놈이요.” 산판꾼의 만류에도 사냥꾼은 여울진 골짜기를 향해 소리 없이 다가갔다. “어흐흥~어흐흥~” 가뜩이나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호랑이 울음소리에 부러졌다. 어둠이 짙은 숲속에서 들리는 호랑이 울음소리는 공포에 떨게 했다.

제 아무리 심장에 털 난 사냥꾼이라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만큼 호랑이 사냥은 두려웠다. 오룡산 이 포수는 호랑이 발길질에 허벅지가 으스러졌고, 명포수 소리를 듣던 강 포수는 범귀신이 씌어 ‘내가 범이다’고 헛소리를 치며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반미치광이가 되고 말았다.

어둠이 짙은 숲속에서 소리 없는 움직임이 보였다. 그는 얼른 몸을 숨겼다. 밤으로 활동하는 호랑이는 으슥한 곳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는 나무둥치를 은폐삼아 얼른 허리춤에 꿰찬 탄띠를 꺼내 엽총에 장전시키고 주변을 살폈다. 날카로운 눈빛은 거랑 너머에 엎드린 호랑이와 마주쳤다. 이 녀석은 운문령 근동을 돌아다니며 활개를 치던 놈이 분명했다. 칠십 관이 넘는 멧돼지와 혈투를 벌이는가 하면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물어 죽였다.

▲ 배성동 소설가

소리 없이 움직이던 호랑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놈이 뒤에 있으면 위험해.’ 속으로 뇌는 찰나 놈은 어느새 그의 뒤에 있었다. 앙, 앙 소리를 내는 놈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그는 때를 놓칠세라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호랑이는 그의 팔을 단숨에 물어 뚫고 거꾸러졌다. 걸레짝처럼 너덜거리는 팔뚝으로 엽총을 끌어안고 호랑이를 향해 정신없이 총질을 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신성시했다. 호사가 많은 운문산 주변의 지명들은 범상치 않다. 무인지경 운문산 산군을 싸잡아 호거산(虎踞山)이라 불렀고, 이웃한 형제봉을 범봉(虎峰), 운문사 앞산인 지룡산을 복호산(伏虎山)이라 칭했다.

운문산이 거느린 산군은 호랑이가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주변 관망이 용이하고 새끼를 키우기 좋은 호젓한 굴도 여러 군데이다. 따라서 무인지경 운문산군(雲門山群)이라면 범을 복원할 만하다. 운문사 경내에 그려진 호랑이 벽화처럼 호랑이를 타고 산책을 나설 그날을 응시하고 있다.

배성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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