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환 울산 중구의회 운영위원장

우리나라는 국가예산 386조원 가운데 30%가 넘는 130조원이 복지에 투입된다. 각 지방자치단체 역시 전체 예산액 가운데 40% 넘는 돈을 각종 복지사업에 투입, 매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늘어가는 복지예산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여전히 어렵고 힘겹게 생활하는 이웃들이 너무 많다.

국가나 지방정부의 예산만으로는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을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얼굴없는 천사’나 ‘키다리 아저씨’같은 이웃들이 있기에 살맛나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복지정책에 대한 관심과 기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혜자는 계속 늘어나지만 그에 따른 정부 지원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민간단체나 개인의 아름다운 마음씨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귀하고 값진 것이다.

하지만 나눔에는 반드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얼마 전 이런저런 사정으로 기초생활수급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힘겹게 생활하는 가정이 있어 한 민간단체에 장학금 지원 요청을 한 끝에 다행히 이뤄졌다. 민간단체의 기념일에 맞춰 장학금 수령이 이뤄지는 날, 왠지 나도 모르게 장학금을 받는 학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공개적인 행사 장소에서 이름이 호명돼 장학금을 받고 단체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순간에도 수혜를 받은 그 학생의 표정에는 우울함이 묻어 나왔다.

다음날 신문지면에는 장학금을 전하며 환하게 웃는 단체원들과는 대조적인 학생의 얼굴을 보며 스스로가 낯부끄러움을 느꼈다. 물품을 지원 받거나 장학금을 받는 우리 이웃들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사진 속 주인공이 돼 신문·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게 된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10대 청소년 입장에서는 그 자체가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어떤 단체는 장학금 수여 행사에 반드시 자녀와 부모님이 함께 동반해야 하는 곳도 있어 자칫 주변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본의 아니게 자신이 저소득층이란 사실이 알려질 수도 있다. 좋은 취지로 기획된 행사가 자칫 상대방에겐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천수장학회 창립 5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여느 장학재단처럼 식순에는 장학금 전달식이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행사장 한 켠 ‘수령자 석’이라는 안내 푯말이 세워진 곳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지난 장학행사 일이 떠올라 괜히 미안함에 쳐다보기도 민망했다.

하지만 막상 장학금 전달식이 시작되자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장학금 수령을 받기 위해 행사에 참석한 분들은 바로 학생의 담임선생님들이었다. 정서적으로 민감한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이 대신 장학금을 받아 이를 전달하도록 한 천수장학회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이 같은 작은 배려가 진정 누군가를 위하는 더 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 드러내지 않고 온정을 전하는 ‘키다리 아저씨’가 더욱 감동적이 듯 작은 배려가 더 큰 나눔이 될 수 있음을 우리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김경환 울산 중구의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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