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달라지는 기업 접대문화

 

#울산의 한 대기업 홍보업무 담당자 A씨는 요즘 저렴한 스크린골프장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주요 일과 중 하나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저녁 술자리와 주말 골프가 줄거나 없어지면서 대신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과 저렴한 스크린골프장을 찾아 더치페이로 스크린골프를 즐긴 뒤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것이다. A씨는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일주일에 3~4일은 저녁 술자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없고 간단하게 1차만 하거나 아니면 점심을 먹는 것으로 바뀌는 추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홍보·대관업무 담당자 B씨는 얼마전 부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몇년 전 계정을 만들었으나 바쁜 업무 등으로 거의 하지 않다가 최근 들어 다시 시작하며 SNS상의 지인들과 친분 쌓기에 한창이다. B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사회 분위기 및 여러가지 제약 등으로 업무상 만나던 사람들과 자주 못만나게 됨에 따라 SNS를 통해서라도 인맥을 관리하고 있다. SNS를 통해 동정 및 근황도 알게 돼 일석이조다”고 말했다.

법인카드 이용액·건수 달라져
식당 4.4%· 유흥주점 5.7% ↓
유관기관 접촉 꺼려 업무 제약
애매한 법 조항에 혼란도 여전

‘김영란법’ 시행 한달이 지나면서 기업들의 접대문화 및 대관·홍보담당자들의 일상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저녁 술자리나 주말에 골프 접대 등이 접대문화의 대표적 사례였으나 법시행 이후 저녁 술자리는 점심으로, 골프 대신 등산이나 ‘각자 내기’ 스크린골프 등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실제 신한카드가 ‘김영란법’ 이후 법인카드 이용액과 건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김영란법 시행 이후 요식업계 이용금액은 이전 대비 4.4% 감소했다. 2차 문화로 대표되는 유흥주점은 5.7% 줄었다. 반면 대표적인 집근처 소비인 편의점에서의 사용은 3.6% 증가했다. 홈쇼핑과 배달서비스가 각각 5.8%와 10.7%씩 늘었다. 빠른 귀가로 인해 집 주변에서의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법인카드 사용시간도 달라졌다. 요식업은 저녁 평균 법인카드 결제 시간이 한 시간 앞당겨졌고, 오후 7시 무렵 택시 이용 건수는 김영란법 시행 전보다 1.2% 증가했다. 반면 오후 8~10시는 소폭 감소했다. 특히 직장인 1인당 1회 식사 접대 비용이 3만원 이상인 비율은 70.6%에서 24.9%로 크게 낮아졌다.

이런 가운데 법 시행 이후 일선 기업 홍보담당자들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관공서 등 유관부처 담당자들이 만남 자체를 꺼리고 있어 필요한 정보를 얻는 등의 직무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대관·홍보담당자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만나서 식사하는 자체를 꺼린다”며 “예산이 많지 않아 밥 한끼 사는 게 유일한 홍보수단이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업무 자체가 위태로워 진것”이라고 말했다.

또 추상적이고 애매한 법 조항과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어 혼란도 여전하다. 한 기업체 홍보담당자는 “처음에는 직무와 연관된 사람이면 만나서 밥 조차 먹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사내교육 등을 통해 이제는 어느 정도 숙지가 되어 있으나 법 조항이 애매한 부분이 많아 한 동안은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질의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깊게 뿌리내린 한국 접대문화의 토양을 고려할 때, 시간이 지나게 되면 영수증 쪼개기 등 편법과 꼼수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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