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함월산과 입화산

▲ 울산시 중구 성안동 함월산에 건립된 함월루는 주심포 양식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뤄진 중층 구조다. 누각의 예스러운 아름다움과 현대적 건축물의 세련미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울산에는 ‘전망대’로 이름 붙은 곳이 여러 곳 있다. 울산대교 건설과 함께 건립된 울산대교전망대가 있는가하면 태화강 십리대숲과 아울러 철새공원을 바라볼 수 있는 태화강전망대가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 문을 연 태화강 생태관에서 선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한편 또 다른 성격의 전망대 한 곳 더 추천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중구 성안동 함월산에 자리한 ‘함월루’를 들고 싶다. ‘전망’보다는 ‘조망’에 더 가까운 함월루를 먼저 찾았다.

북부순환도로를 따라 중구 성안동을 지나다보면 산쪽 언저리에 울산지방경찰청사와 그 건물 옆 산 정상에 낙락장송마냥 우뚝 선 누각이 하나 보인다. 그 누각이 바로 함월루(含月樓)이다. 그리고 이 함월루가 자리한 산이 함월산(含月山)이다.

▲ 함월루에서 내려보이는 우정혁신도시와 울산시가지.

함월산이라는 명칭은 성안동 외에도 화정동 월봉사 뒷산, 강동면 신흥사 뒷산에서도 같은 명칭을 찾을 수 있다. 김성수(울산학춤보존회 고문) 박사의 신문기고문을 보면 왜 울산에 함월산이 많은지 답을 내리고 있다. 함월산이라는 산들의 위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주변 구릉보다 높고 앞쪽에 가림이 없어 월출(月出)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또 가까이 혹은 멀리에는 반드시 강물이나 바닷물을 내려다보는 임수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기술해 놓았다.

성안동 ‘함월산’ 언저리 위치한 ‘함월루’
팔작지붕·붉은색 기둥 누각의 모양새는
학이 날아 오를듯한 생동감마저 느껴져
함월산과 사이좋게 이웃해 있는 ‘입화산’
최근 웰빙·힐링의 공간으로 거듭나 인기

그렇다! 울산의 경우 월봉사(月峰寺), 신흥사(新興寺)와 같이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바다가 위치해 있다. 성안동 함월산 역시 내려다보이는 곳에 태화강이 있고 그 태화강 강물이 달을 품고 동해로 흘러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산 정상 부근에 누각이 있으니, 그 이름이 함월루이다. 이렇듯 함월(含月)이라는 명칭은 그 이름부터가 벌써 자연친화적이요 자연합일적이다.

함월루로 올라가는 오르막 길은 잠깐이지만 제법 가파르다. 하지만 기분 좋은 가파름. 그 가파름이 끝이 날 즈음에 무언가가 보인다. 그것은 코발트 색감의 파란 가을 하늘과 닿을 듯 자리하고 있는 누각의 용머리 선(線)이다.

▲ 최근 야영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입화산 참살이 숲.

오르막 길을 따라 천천히 정상으로 올라서는 동안 누각 모습은 선에서 면(面)으로 그 점차 형태를 바꾸고 있다. 마치 영화의 첫-페이드인(Fade-In)-장면처럼 지붕부터 기둥으로 내려오며 점점 가깝게 그리고 점점 뚜렷하게 그 전체 모습이 시야에 모두 들어온다. 소쇄하면서도 당당하다. 이와 함께 팔작지붕과 붉은색 기둥의 누각 모양새는 마치 한 마리 학이 긴 다리로 지상을 당장이라도 박차고 날아 오를듯한 모습이어서 생동감(生動感)마저 느껴진다.

누각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나무계단을 밟아본다. 발바닥에 와닿는 촉감이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한발 한발 그렇게 누각에 올라서니 드디어 탁 트인 세상이 눈 아래에 펼쳐져 있다. 멀리로는 울산대교와 장생포가 한 눈에 들어오고 가까이로는 새롭게 조성된 혁신도시의 고층 건축물들이 또 한눈에 모아진다. 누각의 예스러운 아름다움과 현대적 건축물의 세련미가 보여주는 묘한 조화가 무척이나 이채롭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함월루기문(含月樓記文)이 새겨져 있음을 확인한다. ‘의미 있고 유서 깊은 이곳에 울산의 다양한 면모를 조망할 수 있는 전통양식의 누대를 건립하여 함월루라고 명명하였다’라고 적혀있다. 주심포양식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뤄져 있는 중층구조의 함월루는 이름 그대로 ‘달을 품은 누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울산의 전경을 보다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곳, 눈과 함께 가슴으로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공활한 가을 하늘 등 사계절을 카메라에 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 달을 품은 산에서 달을 조망할 수 있고 그 달을 품은 물을 조망할 수 있는 누각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 함월루이다. 참고로 함월루는 국토교통부의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 사업에 선정되면서, 이와 관련된 ‘달빛누리길 조성사업’ 일환으로 2015년 8월20일 준공되었다고 한다.

함월산 함월루에서 조망에 취해 있는 객(客)을 이번에는 이웃해 있는 입화산(立火山)이 그냥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

일찍이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은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산중(山中)을 매양 보랴 동해(東海)로 가자스랴’라고 하며 금강산에서 관동팔경(關東八景)으로 여정을 옮기는데 대한 아쉬움을 가사문학으로 표현하였다. 문장(文章)으로야 선생에 미칠 바 못되지만, 필자 또한 아쉬운 정(情)만큼은 선생 못지않아 하릴없이 그 아쉬움을 뒤로하고 함월루를 내려와 입화산 방향으로 향한다.

입화산은 함월산과 사이좋게 이웃한 산이다. 동천강을 중심으로 강 서쪽에 위치한 입화산은 함월산과 마찬가지로 고도가 203m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이다. 이름 그대로라면 ‘불꽃을 세우는’ 산이다. 오래전부터 이 산에는 촛불이 꺼지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촛불을 켜놓고 소원성취를 기원하면 그 기도가 잘 이루어지는 영험함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이 산에는 온통 무속적 기원의 촛불들이 온산을 태울 듯 그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함부로 산에다 불을 피우는 위험천만한 무속적 행위는 일절 금지되어 있기에 이제는 그런 영험함을 기대하기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웰빙’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육체적인 건강함과 함께 정신적인 건강의 조화를 통해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삶의 유형이나 문화라는 의미의 웰빙. 이를 아름다운 우리말로 하면 ‘참살이’가 된다.

입화산 숲속에 촛불이 꺼진 대신 ‘참살이 공간’이 불을 밝혔다. 웰빙과 함께 ‘힐링’을 할 수 있는 자연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난 입화산은 최근 야영장으로도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여러 가지 야영시설을 비롯하여 입화산의 편백나무와 대나무가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의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입화산 참살이 숲에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자연휴양림 시설이 들어선다고 하니,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아닐 수 없다.

입화산 곳곳을 완만한 걸음걸이로 돌다보니 산책로를 따라 기립해 있는 키 큰 돌들이 보인다.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살펴보니 돌에 시(詩)가 새겨져 있다. 시비(詩碑)였다. 김춘수, 박목월 시인을 비롯하여 서덕출 선생의 동요가사를 새긴 시비도 눈에 띈다. 시비들은 그동안 잠시 시를 잊고 감성을 잊은 채 바쁘게만 살아온 사람들에게 언어의 보석을 통해 다시금 인간성을 회복하고 감성을 일깨우라고 일러주는 듯 했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시비가 있었다. 그것은 가수 고복수(高福壽)의 ‘타향살이 노래비’였다.

1932년 콜롬비아 레코드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국을 대상으로 가수 공개모집에 나섰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가요 오디션’의 효시라 할 수 있다. 그때 공개모집을 통해 입선돼 등단한 가수가 바로 고복수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제를 찬양하는 노래나 일본어로 부르는 노래가 강요되던 시절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음에도 그가 부른 ‘타향’은 민족의 노래로 승화되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는 위안의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 고향을 등지고 나라를 떠나 만주로, 북간도로 떠돌던 유랑민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서 다 같이 부둥켜안고 민족이 처한 현실 앞에서 비분의 울음을 터뜨리며 함께 공감했던 노래였다고 전해진다. 나는 눈으로는 노래비에 적힌 가사를 읽으며 입으로는 가만히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 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때는 옛날

고복수 선생은 그 후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학원 ‘동화예술학원’을 설립해 이미자, 오기택, 하춘화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가수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기울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바로 울산 출신이었던 것이다. 울산 중구청은 고복수 선생을 기념하고 관광테마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중앙1길 일원에 400m를 진입유도 핫스팟으로 조성하고 ‘고복수살롱’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그가 활동하던 1930~50년대를 재현하고 기념관을 건립하는 등 ‘청춘 고복수’ 사업을 기획하고 있어 자못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 홍중표 자유기고가 (전)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함월산 그리고 입화산. 고도 200m 정도에 불과한 낮은 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두 산은 결코 낮은 산이 아니었다. 낮지만 높은 산, 이 만추(晩秋)의 계절에 가을날의 서정을 깊이 만끽할 수 있게 해주며, 울산을 한 눈에 조망하게 한다. 참살이와 더불어 치유와 휴식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넉넉한 산이요, 낮아도 낮지 않은 산임에 틀림이 없었다.

깊어가는 가을, 산행이라도 좋고 산책이라도 나쁘지 않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함월산과 입화산에 꼭 한 번 들러보자! 시(詩)를 읊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으나 그렇지않은들 또 어떠랴! 그 산에 가면 모두가 시인이 되고 자연이 되며, 어쩌면 지나간 시간까지도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홍중표 자유기고가 (전)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