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크로아티아 트로기르(trogir)에서 통근 배를 타고 스플리트(split)로 향한다. 작은 섬과 깊은 만으로 둘러싸여 호수같이 잔잔한 수면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드리아 해의 항해는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통영 미륵도에서 보는 다도해의 절경이 까닭 없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멀리 수채화처럼 윤곽을 나타내는 항구의 풍경은 베네치아를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답다. 지중해의 항구도시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바다에서 보는 경관을 고려하면서 계획되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바다에서 보는 스플리트는 고급 휴양도시의 모습이다. 환호형 비치와 같은 긴 해변을 따라 베네치아 풍의 건물이 배경을 이루고 해안에 정박된 호화요트들이 마리나 휴양지로서의 풍경을 만든다. 야자수가 그늘을 드리우는 널찍한 해안도로, 흰색 노천카페와 강렬한 태양과 짙푸른 바다, 안락의자에 앉은 선글라스의 여행객들, 그것은 ‘꽃 누나’들을 유혹할 만큼 지중해 휴양도시의 사치스러운 여유와 세련미를 물씬 풍겨준다. 크로아티아의 휴양도시 스플리트

1800년동안 도시모습 그대로 지켜와
로마보다 더 온전한 로마의 황궁에
관광객들은 과거로의 시간여행 누려
고목의 나이테같은 도시의 연륜 보며
신라유적 곳곳에 ‘현대’가 들어앉은
맥락 상실한 경주가 자연스레 교차돼

그러나 이토록 세련된 항구도시가 무려 18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스플리트는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AD 245~313)가 퇴임 후에 살기 위한 별궁을 지으면서 도시의 역사를 시작한다. 더욱 경악스러운 점은 지난 1800년 동안 도시의 모습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건국될 즈음에 바로 여기에 항구도시가 만들어졌고, 당시의 도시와 건축물 속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셈이다.

▲ 베네치아를 연상케 할 만금 아름다운 항구도시 스플리트.

이 도시에서 역사적 중심은 방형 성곽으로 위요된 디오클레티아 궁전이다. 가로 215m, 세로 181m, 가장 높은 성벽이 26m에 이르는 이 궁전은 로마보다도 더 생생한 로마시대의 건축물과 도시경관을 자랑한다. 황제는 대리석을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가져오고 기둥과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가져 오는 등 별궁건설에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 권력자의 초호화 궁전도시였던 셈이다.

이러한 초창 당시의 모습은 이 도시의 중심부에서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미끈한 대리석 기둥과 화려한 기둥머리 장식, 삼각형 지붕의 입구를 갖는 로마건축, 이러한 건축물로 둘러싸인 포럼(로마식 광장), 판테온처럼 천장에 구멍이 뚫린 알현실, 골목 안에 숨겨져 있는 주피터 신전에 이르기까지 1800년 전 로마황궁의 모습이 온전히 재현된다. 로마병사로 분장한 경비원들까지 천연덕스럽게 관광객들의 시간과 공간을 먼 과거로 돌려놓는다.

궁전 일곽을 에워싸는 성벽은 그야말로 시대 양식의 모자이크이다. 로마시대로부터 중세,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재생을 통해 누더기처럼 개조되고 변형되었다. 특히 저층부는 대부분 상업공간으로 변용되어 과거의 모습을 짐작할 수가 없다. 이러한 현대적 파사드 위에 조적식 성벽과 고전주의 열주가 기묘하게 얽혀있다. 천년이 넘는 세월의 간극에도 다양한 시대의 건축양식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마치 고목의 나이테처럼 이 도시의 연륜을 드러낸다.

황혼에 물든 스플리트를 내려다보며 도시의 연륜을 생각한다. 연륜이라면 이천년의 역사도시 경주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기록으로 남겨진 생생한 역사와 이야기들, 독특한 문화유산은 세계의 어느 역사도시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문화, 역사, 관광의 콘텐츠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와 유산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의 경주는 과연 신라시대의 공간과 환경을 얼마나 재현해주고 있을까?

물론 경주에는 첨성대나 안압지, 왕릉, 황룡사지 등 신라시대를 대표할 만한 유적들이 풍부하게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찢어진 보물지도처럼 현대도시의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다. 유적들은 현대적 도시체계와 공간 속에서 ‘뜬금없이’ 나타난다. 관광객들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지도를 들고 낯선 도시의 골목을 탐험하며 난해한 퍼즐을 맞추어야 한다. 신라의 역사와 고대도시를 전공하지 않는 이상 그 문화유산과 도시의 관계를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도시는 맥락(脈絡)이다. 몇 개의 유적을 잘 보존한다고 해서 유서 깊은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남대문을 명동 한복판에 옮겨 놓는다면 그것은 이미 남대문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도시의 모든 구성요소들은 장소적 의미가 있고 그것을 떠나면 맥락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길과 광장, 공원, 공공시설과 개별 건축물들이 도시적 체계 안에서 제자리를 잡을 때 비로소 도시적 의미를 현시할 수 있는 것이다.

고작 백년도 안 되는 도시경관으로 어떻게 신라왕경 이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려 하는가? 도시유적을 점(點)으로 관리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경주의 중심부가 신라 금성의 도시적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면 굳이 영화세트장 같은 신라 밀레니엄 파크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층아파트 단지로 에워싸이고 공장단지로 변모해가는 경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천년 역사도시의 소멸을 안타까워한다.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