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창호 극작가

신라 제38대 원성왕 때, 김현은 흥륜사에서 밤늦도록 탑을 돌았어. 한 낭자가 따라 돌다가 눈이 맞아 정을 통했겠다. 김현은 낭자의 숲속 움막까지 따라갔어. 거기엔 할머니가 살고 있었어. 낭자가 사실대로 말하자 할머니가 말했어. 이미 저지른 일이니 우선 몸을 숨겨줘라. 잠시 후, 범 세 마리가 사람의 비린내를 맡고 킁킁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게야.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지. 너희가 사람을 해치니 한 놈을 죽여 경계 하겠노라. 범들이 벌벌 떨자 낭자가 말했어. 오빠들이 멀리 달아난다면 제가 대신 벌을 받을게요. 범들은 기쁜 나머지 꼬리를 치며 달아났어.

낭자가 말했지. 저와 낭군은 부부의 연을 맺었어요. 오빠들의 악함 때문에 그 재앙을 제가 대신하는데, 어찌 낭군의 칼에 죽어서 은덕을 갚는 것만 할까요. 내일 마을에서 사람들을 해치면 임금께서 벼슬을 걸고 저를 잡게 할 것입니다. 성 북쪽 숲으로 오시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김현이 말했어. 어찌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팔아 벼슬을 하겠소. 낭자가 말했어. 제가 죽는 건 하늘의 명이며, 제 소원이요, 낭군의 경사며, 우리 종족의 복덕이요,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한 번 죽어 다섯 가지 이로움을 얻는데 어찌 망설이셔요. 다만 절을 지어 제게 좋은 과보를 얻게 해주신다면 더 큰 은혜가 없답니다. 둘은 울면서 헤어졌지.

다음날 범이 사람들을 해치니 원성왕이 명을 내렸어. 범을 잡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겠노라. 김현이 나아가니 왕은 벼슬을 주고 격려하거든. 김현은 곧장 숲으로 갔지. 낭자가 맞이하며 말했어. 낭군과 맺은 우리의 정을 잊지 않겠어요. 제 발톱에 다친 사람들은 흥륜사의 간장을 바르면 나을 거예요. 낭자는 김현의 칼로 저를 찔러 절명했어.

김현은 벼슬에 오르자 서천 가에 호원사(虎願寺)를 짓고 불경을 강론하여 범의 저승길을 돕고, 자기를 성공하게 해준 은혜에 보답했지. 단군신화에선 곰이 인간이 되었는데, 여기선 잠시나마 인간이 된 범의 보은으로 절의 유래를 밝혀, 성공은 누군가의 숨은 공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장창호 극작가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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