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라영 북구예술창작소 큐레이터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시대의 부조리와 불편한 사회상을 은유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예술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였다.

“우리는 인위적인 꾀를 쓸 이유가 없잖아. 또 지혜도 필요 없어, 예의도 필요 없고 말씀이지. 물건을 사고팔 때 생길 수 있는 이익과 손해, 그로 인한 욕심, 오해 같은 게 일어날 리가 없지. 그런데 인간(人間)들은 이 세상을 더욱 어렵고 힘들게 어지럽히고 있어.”

1980~90년대 한국화단에 파문을 던진 소정 황창배(1947~2001년)가 그의 작품 <무제-哭高宅>에 적어놓은 글이다.

황창배는 진부한 전통과 변용의 혼란 속에서 헤매고 있던, 당시 동양화 화단에 대단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밀가루로는 빵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수나 수제비도 만드는 것이다.” 그의 수제비론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는 한국화로 보기 어려운 아크릴과 다양한 오브제들­안료(피그먼트), 파스텔, 흑연 등을 두텁게 올려 한국 채색화의 반란과 혁신을 일궈냈을 뿐 아니라 표현한 소재와 주제 또한 매우 다양하다.

▲ <무제-哭高宅> 한지에 혼합재료, 127x61㎝, 1991.

<무제-哭高宅>은 인본(人本)을 무시한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다. 우스꽝스러운 닭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서 있다. 검정색 바탕에 주둥이에서 튀어나온 두 개의 말풍선 안에는 좌측에 분홍색 글씨의 ‘哭高宅(곡고택)’ 우측에 흰색 글씨의 ‘꼬꼬댁’이 적혀있다. 그리고 ‘꼬꼬댁’이란 표기가 틀린 듯 X자를 그었다. 고택에 살면서 곡(哭), 즉 닭울음소리를 내는 천박한 부잣집 마나님을 풍자한 것이다. 기호화된 문자, 왜곡된 형태, 단순한 색채, 과감한 생략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강렬하게 드러냈다.

기라영 북구예술창작소 큐레이터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