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자식의 인연은 불가분 관계
인연 참뜻 깨우쳐 때늦은 후회 않길

▲ 변종수 개인택시기사

인간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인연(因緣)이란 관계를 맺는다. 불교에서는 일체만물은 모두 상대적 의존관계에 의해 형성되며 이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직접적인 원인을 인(因)이라 하고 인과 협동하여 결과를 만드는 간접적인 원인을 연(緣)이라고 한다. 가령 농사의 경우 종자를 인이라 하고 비료나 노동력 등을 연이라 하면 아무리 인이 좋다고 할지라도 연을 잘못 만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가 없다는 말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남남으로 만나 좋은 인연을 맺으면 흔히 천생연분(天生緣分) 또는 천정배필(天定配匹)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배신을 하게 되면 악연(惡緣)으로 변한다. 하지만 부모와의 인연은 피와 살을 나눈 천륜(天倫)의 인연이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다. 즉 남남으로 맺은 인연은 끊을 수 있지만 부모와의 인연은 쉽게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라 하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부모자식간의 사랑도 차츰 식어갈 때가 있다. 서로 보완적인 사랑이 일방적 희생으로 강요당할 때 부모라는 존재가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연의 깊은 철학과 굳은 신념이 부족하거나 천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할 때 일어난다. 부모는 자식한테 조건 없는 자기희생적 사랑을 주지만 자식은 부모은혜에 어떻게 보답하느냐가 중요하다.

자식으로서 부모를 공경(恭敬)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다하는 것이며 내가 먼저 이해하고 한발 양보하는 헌신적인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공자 말씀에 견마지양(犬馬之養)이란 것이 있다. 부모 섬김에 있어 공경하는 마음없이 부양만 하는 것은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지금 부모의 모습이 내일의 내 자화상임을 깊이 성찰하고 연민의 정을 가질 때 공경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의 경우 97세까지 아버님을 모셨고 지금은 94세의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십 수 년간 부모를 모실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의 확고한 철학과 굳은 신념이 나를 일깨워 주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부모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변했듯이 부모 역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베푼 만큼 돌아오는 것이 자업자득(自業自得)임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탐욕에 눈이 멀어도 부모자식 간에 또 형제 자매간의 인연을 배신하고 원수로 전락하는 것은 큰 비극이다. 부모께 효도는 그 어떤 조건과 이유가 없는 무한한 사랑의 실천이요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모와의 인연은 내 옷에 묻은 흙먼지가 아니듯이 천륜의 인연임을 깊이 깨닫고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부모는 나의 분신이며 영양분을 공급한 떡잎이기도 하다. 비록 세월의 흐름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할지라도 그 존재가치는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이란 막상 부모가 돌아가시고 없으면 이미 때 늦은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살아 생전 진정으로 인연의 참 뜻을 깨닫고 실천할 때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데 마음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변종수 개인택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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