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부 산을 이고 사는 사람들 - 8)신불산 포수 삼총사

▲ 신불산 포수 삼총사(1930년대). 신불산 호식바위에서 무언가를 겨냥하고 있는 세 포수 사진이다. 앳된 생김새는 사냥꾼이라기보다는 부자집 도련님 같은 느낌이 든다.

◇총 든 사냥꾼이 설치기 시작하면서 신불산 맹수 사라져

이봉창 의사가 도쿄에서 히로히토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진 사건이 발생한 1932년 정월, 부산에 거주하는 포수 삼총사가 신불산을 찾았다. 입산에 앞서 그들은 상북면 산전리에 있는 상북지서를 방문해 수렵 신고를 했다. 사실 신불산에서 맹수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총 든 쪽바리들이 드나들고부터였다. 신고를 마친 포수 삼총사는 소개 받은 길라잡이를 만나기 위해 약속된 상북면소(上北面所)로 갔다.

길라잡이 두 사내는 상북 토박이들이었다. 탈거지 사납게 생긴 사내는 짐승 발자국을 쫓는 자욱포수였고, 또 다른 사내는 산판도사로 불리는 늙다리 벌목꾼이었다. 부산 삼총사를 본 두 사내는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앳된 도련님 꼬락서니도 눈꼴셨지만, 알랑방귀 깨나 뀌는 친일파가 아니고서는 조선인으로선 감히 엄두도 못낼 신식 엽총을 소지하고 있었으니 그럴만했다. 벌목 죄로 잡혀온 일이 있는 늙다리 산판도사는 아예 대놓고 삼총사를 애송이 취급하는 눈치였다.

 

그 해는 마침 상북면소가 준공된 해였다. 상북면소의 돌출된 포치는 일제강점기 관공서의 대표적인 양식으로서 울기등대, 남창역사, 구삼호교와 함께 오늘날 근대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상북면소에 들어간 목재는 석남사 사찰림에서 조달되었고, 설계와 시공을 담당한 사람은 지역 목수였다.

그들은 상북면소를 빠져나와 밝얼산 말무재를 오르는 비탈길을 열었다. 경사가 급해 끌고가는 말도 구부러진다는 말무재는 마을이 없는 깊은 골짜기였다. 코가 비뚤어지도록 밤새 술을 마신 산판도사가 방귀를 연신 뀌어대자 뒤따르던 삼총사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욱포수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누런 이를 드러냈다.

“태산같은 저 신불산을 넘으려면 코가 댓자로 빠질 거요.”

산발치에서 올려다 본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은 부처님이 누워 있는 형상이었다. 산봉우리는 하늘을 찔렀고, 정상치 알머리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다.

총든 사람에겐 번개같이 달려들어 공격하지만
산을 지키는 사람은 절대 해코지 하지 않는 표범
닥치는대로 사람 죽이려드는 호랑이와는 달라
사냥꾼들도 신불산 지킴이는 영물이라 사냥 안해

◇저승골, 간월산북능, 신불평원으로 이어진 사냥길

말무재 능선에 올라선 그들은 곧장 저승골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사람은 봐도 나오는 사람 못 봤다는 저승골은 사방이 막힌 음침한 골짝이었다. 얼음짝 폭포바위를 기어오르자 고드름 창이 달린 얕은 굴이 나왔다.

“여긴 범이 새끼를 키우던 범굴임더. 어딘가에서 호시탐탐 우릴 노릴 거요.”

그때 산중 골짜기에서 짐승 우짖는 소리가 울렸다. 삼총사가 총부리를 세우자 자욱포수가 별것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부엉이 우는 소리요. 승냥이 소리와 비슷함더. 고라니는 꽥꽥, 승냥이는 꽤액, 꽤액 희한한 소릴 내죠.”

저승골을 빠져나온 그들은 간월산 북능에 올라섰다. 으응! 으흐흥! 괴성에 놀란 삼총사가 철거머리처럼 따라붙었다.

“소스라치는 저 소리가 호랑이 우는 소리요. 아무래도 오늘 신불산 찌꿈이(지킴이)가 나타날 것 같소. 정신들 똑똑히 차리슈.”

탈거지 사납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애살맞아 보이는 자욱포수가 말을 이어갔다.

“울 아버진 홀갱이꾼이었어요. 며칠 식량을 들고 사냥길에 올랐다가 굴속에서 범을 만났는데 산신령이 먹을 걸 안 주었던지 뼈 가죽만 남아있더래요. 그래 가지고선 가지고 간 식량으로 죽을 끓어주며 밤새 호랑이와 동숙했대요. 아침에 고맙다며 돌아가더래요. 난 그걸 모르고 실종된 아버질 찾으러 다녔죠.”

자욱포수는 맹수들의 습성도 잘 알고 있었다. 호랑이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지만 자기 몸을 아끼는 편인 표범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다.

날쌘 표범은 자기 몸무게의 두 배나 되는 멧돼지를 공격한다. 눈이 흘러내린 멧돼지는 힘이 좋고 뚝심이 세지만 표범은 잡은 짐승을 물고 번개처럼 나무 위를 뛰어오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행은 간월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촛대바위에서 짐승이 먹다 남은 뼈 조각들을 발견하였다.

“여긴 간월재를 지나가는 사람을 노리던 곳이요. 생쌀을 씹으며 죽림굴에 숨어살던 천주학쟁이들이 많이 희생됐죠.”

그들은 키높이로 덮인 억새밭으로 들어갔다. 가르마를 탄 억새길에는 눈 발자국들이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네 개의 발가락과 둥근 뒤축 그리고 주먹만한 크기로 봐서 표범 발자국이 분명했다.

일행은 몸을 낮춰 주변을 살폈다. 걸을 때 발톱을 숨기는 표범은 은둔의 제왕이다. 두 마리가 어울려 다니는 표범은 경계가 많은 반면에 홀로 생활하는 호랑이는 백두산에서 동대산까지 끝없이 돌아다녔다.

◇신불산 지킴이 매화 표범은 어디로

그들은 된비알을 안고 신불산을 올랐다. 신불재 참새미에서 준비해 온 초배기 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신불산상벌(神佛山上伐)로 향했다.

산 아래에는 울주 고을을 비롯한 동해 앞바다도 아스라이 보였다. 처음 오른 부산 삼총사가 물찬 제비처럼 탄성을 터트렸고, 늙다리 산판도사도 두 팔을 활짝 벌려 회오리바람을 안았다.

“신불산은 억새나라야. 여기만 오면 가슴이 탁 트이거든.”

금강골에서 밀려오는 회오리바람에 억새들이 춤사위를 펼쳤다.

“저긴 구상나무 군락지네.”

산 아래 금강골에 자생하는 쭉쭉 뻗은 구상나무 군락지를 본 산판도사는 크기는 열 척, 둘레는 한 자 반치 정도로 보인다고 했다.

“척 보면 알아. 봉화 탄광 갱목 캐는 일부터 송목(松木) 짊어지고 비탈길 드나들길 예사로 했지. 동톱하고 도끼만 있으면 스무 척 거목도 자빠트려.”

신불산상벌 상투바위에 올라섰다. 드넓은 억새평원과 돌로 쌓은 단조성이 나타났다. 자욱포수가 상투바위에서 신불산 지킴이(표범)를 본 목격담을 늘어놓았다.

“내가 스무 살 한창 땐 기라요. 동네 사람들이랑 단조성 참새미에 가재 잡으러 올랐다가 이곳 상투바위에 앉아있는 범을 봤심더. 벌써 마주치길 두 번 째였소. 범을 보고도 도망 안 갔으니 나도 간이 배밖에 나왔지. 꼬랑지를 사타구니 사이에 끼워 누워있는 녀석은 대범하게 생겼더랬소. 그 녀석이 바로 신불산 찌꿈이(지킴이)요. 영물이라 우린 안 잡아요. 범도 산을 지키는 사람에겐 절대 해코지 안 하거든. 그런데 총 든 사람에겐 완전히 달라. 왜놈 포수가 총질하다가 목이 물려죽은 적이 있심더. 번개같이 뛰어내리면 어느 누구도 꼼짝 못해요.”

▲ 배성동 소설가

상투바위에서 일행들이 쉬는 틈을 이용해 산판도사는 볼일을 보기 위해 억새밭으로 들어갔다. 밥물처럼 일렁이는 억새 사이로 동네 여자들이 산나물을 캐러 드나들던 신불평원이 보였다. 그때 억새밭을 헤집는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사각~ 사각~’ 억새를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발정기 짐승이 뒤엉켜 살을 섞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억새밭에서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표범을 먼저 본 사람은 산판꾼이었다. 장독만한 표범 머리통을 본 산판도사는 놀라 소스라칠 뻔을 했다. 고함을 쳤다간 그 자리에서 공격을 당할 상황이었지만 천운이 따랐던지 표범은 억새밭 속으로 사라졌다.

서릿발 눈깔이 된 추적자들이 뒤쫓았다. 두 사내는 고함을 치며 물샐 틈 없이 몰아붙였고, 총을 든 삼총사는 짐승이 지나 갈만한 길목에 숨어 총질을 해댔다. 표범을 잡은 곳은 신불재 김도령바위였다. 네 장골이 겨우 들 정도로 무거운 놈이었다. 마을 우물가 큰 대추나무에 매달아 놓고 해체작업을 하였다. 표범 뱃속에서 개뼈다귀가 겹쳐져 나왔다. 벗긴 호피와 호골을 박리하였다. 귀한 호피는 상북지서 순사에게 넘겼다. 푸짐한 저녁 식사를 대접한 쪽발이 순사는 ‘해수구제(害獸驅除)’ 포상을 상신하였다.

배성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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