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지난 주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이른바 ‘최순실 예산’이 대거 삭감됐다. 소위는 일명 ‘최순실 예산’으로 알려진 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 가운데 877억5000만원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의견대로 삭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은 400억원 정도만 남았다. 상황은 여기에서 종료된 게 아니다. 일각에선 남은 예산 마저 삭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또다른 일각에선 그 예산을 자기네 기관이나 사업으로 돌려달라 아우성이다.

논란 속에는 교문위에서 81억원이 삭감돼 올라 온 ‘가상현실 콘텐츠산업 육성사업’도 포함돼 있다. 이 사업은 문화창조융합벨트의 전국적 확산을 도모할 지역창작인(기관)과 지역특화 콘텐츠사업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한마디로 중앙정부의 융합벨트정책을 성공시킬 단단한 연계망을 구축하자는 취지였다. 지난 여름 발표된 문화관광부의 정부안에는 대표적인 사업안으로 울산센터(영상전문)의 ‘고래문화원형 글로컬 콘텐츠 개발 및 원소스멀티유저(OSMU) 활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혁신기술로 실제와 같은 가상현실을 눈 앞에 보여주는 이 프로젝트는 반구대 암각화, 장생포, 고래마을, 고래고기 등 울산의 대표적 고래역사문화를 VR, 4D 애니메이션 등 다채로운 콘텐츠로 개발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 구성됐다. 만약 장기적으로 이 일이 추진된다면 울주군은 대곡천 암각화군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함께 암각화를 활용한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 수 있다. 남구 또한 기성세대를 위한 추억공간인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을 어린이 및 청소년 등 미래세대를 겨냥한 가상현실 빌리지로 재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여파로 이 사업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존의 원대한 계획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울산시와 구군이 새로운 창구나 묘안을 만들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이처럼 각 지자체가 추진하는 문화예술 사업비는 대부분 정부예산과 해당 지자체의 매칭으로 감당한다. 굵직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도시의 문화예술 활성화,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을 빌려주는 레지던스, 구군별 대표축제 또한 물론이다. 문화기반시설에서 운영하는 기획사업도 정부예산과 해당 지자체의 경비가 절반씩 들어가는 구조이다보니 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처럼 900억원에 가까운 국비가 삭감될 경우 지자체 단위로 내려오면서 그 삭감폭은 몇 곱절로 껑충 뛰어오른다. 이 뿐이 아니다. 문화예술 현장에서의 상실감은 숫자로 표기되는 금액단위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퍼져가고 있다.

지난 한 주 다양한 문화예술인을 만났다. 한 사람은 항간에 떠도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고 알려졌다. 그는 “이러려고 내가 예술했나 자괴감이 든다”면서도 “그나마 예술인으로 봐 줘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또다른 사람은 “문화예술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길래…”라면서 자조섞인 한탄까지 내놓았다. 글을 쓰는 문인인 그는 “고유의 영역, 전문성 운운하며 선을 긋는 문화계의 비합리적 생태가 결국은 그들 눈에 먹잇감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울산시의 문화재단과 기초단위 재단의 출범, 생활문화센터와 작은도서관, 각종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기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변화의 급물살 앞에서 갈피를 못잡는 문화예술계가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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