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형 울산시인권위 위원장 본보 14기 독자위원

진시황에게 통일국가의 이념적 근거를 제공했던 법가사상의 대가 한비자는 ‘사리사욕을 버리고 법도대로 행한다면 백성이 편안하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기원 전에 이미 서구의 근대적 법치주의를 주창한 셈이고, 이를 받아들인 진시황은 법가사상으로 국력을 결집해 결국 최초의 통일국가 대업을 이루었다. 헌정질서 문란, 국기 문란, 국정 농단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결국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 등 법도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했어야 할 권한이 법도를 벗어나 사리사욕에 제공되고 지원되었기 때문에 촉발된 것이다. 한국사 초유의 최고위 지도자로 성공적인 여성 대통령으로 기록됨으로써 정치에 있어서도 양성평등이 구현된 것으로 평가받게 되길 바랬고, 여성적인 섬세함과 청렴함으로 대통령직을 마무리하고 퇴임함으로써 퇴임 후 가족과 친지, 측근에 의한 부정부패로 시비에 시달렸던 역대 대통령의 전철을 종식시키는 시발점이 되길 바랬으며, 더하여 성공적인 국정수행으로 가족사의 공과에 대한 논란까지 종식시킴으로써 권력에 의해 왜곡돼 온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 주길 바랬다. 그러나 참담하게도 임기 말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현 사태는 대통령 스스로가 사리사욕을 탐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정하더라도 적어도 제3자의 사리사욕 수단으로 대통령의 권력이 제공되었다는 비난과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잘해야 무능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아니라면 독직(瀆職)의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비난과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권력이 법도대로 행해지지 않아 국가와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함으로써 현대 정치사에 있어 우리나라 특유의 민중 저항 방법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고 실제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키워왔던 ‘촛불 집회와 시위’ ‘촛불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갑자기 촛불 저’의 법적 근거와 정당성을 법도에 따라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고리타분한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17세기 계몽주의의 선구자였던 존 로크(John Locke)는 그의 저서 <통치이론>을 통해 ‘입헌주의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파괴하려는 국가기관 또는 권력의 담당자에 대하여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다른 법적 구제수단이 더 이상 없을 경우 헌법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국가기관 또는 권력의 담당자에게 저항할 수 있는 저항권이 있다’며 저항권에 대한 법적 근거를 확립했는데, 이러한 저항권은 헌법으로조차 제한할 수 없는 자연법적 권리로 정의돼 프랑스 인권선언과 미국 독립선언에 명시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촛불 집회와 시위는 단순히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넘어 헌법으로서조차 제한할 수 없는 저항권에 근접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행사로 요약될 수 있겠다.

이러한 저항권은 권력기관이나 권력자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경우에 한하며 주권자인 국민이 그 헌법적 질서를 유지·회복하기 위한 최후의 비상수단적 권리로 인정되는 것이긴 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현 사태의 엄중성을 한번 더 직시하고 법도의 회복을 위한 의지가 실행되지 않는다면 촛불 저항이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자연법적 저항권 발동으로 변신돼 대통령은 국민의 전면적이고도 신랄한 저항권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항권이 자연법적 권리로서 그대로 남아있기를 소망한다.

권오형 울산시인권위 위원장 본보 14기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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