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편식

 

콱 쥐어박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꿈은 허접한 일상에서 시작된다는데…. 일상생활에서 매일매일 설렘과 맹목성을 가지고 반복하면 이루어진다는데….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이렇게 반복하고 맹목적인데도 꿈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단한 삶.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엄마가 아니지. 딴청을 피우는 아이에게 밥 한 숟가락, 김치 한 조각, 나물 한 젓가락만 더 먹으라고 애원도 해보고, 최후의 수단인 회초리를 들고 협박도 해보지만 엄마의 근심만 늘어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아이가 악마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순간이다. 오늘도 수많은 엄마들은 과자, 피자, 치킨, 사탕 등 단맛에 열광하며 편식하는 아이와 전쟁 중이다.

“이~야! 할머니, 이거 자꾸 씹으니까 달달한 물이 나와요.” 텃밭에서 제철에 수확한 당근과 무를 씹어먹으며 딸들이 하던 이야기였다.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을 키워준 덕분에 나는 진정 행운아였다. 많은 아이들이 채소를 보면 기겁을 하지만 우리딸들은 맛있게 먹었다. 비법은 없다. 많이 접촉하고 먹어봤기 때문이었다.

채소의 쓴맛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미뢰’
영·유아기 아이들 성인보다 3배 정도 많아
많이 먹이기보다 거부감 없애는 것이 중요

왜 아이들은 유독 단맛에 열광하는 걸까. 근원적인 이유는 수백만 년 전 우리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혹독한 환경조건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맹수를 만났을 때, 위험을 감지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도망을 가기 위한 태세를 갖춘다. 이때 다리에 모든 에너지들이 순식간에 모이게 된다. 이런 에너지의 대부분은 나무열매, 곡물 등에서 얻어진 단맛의 성분들이 만들어낸다. 인류에게 단맛은 생존과 직결된 것이었다. 그 유전자가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단맛이 나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에 열광하는 것은 그렇다 치자. 치킨이나 피자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놀랍게도 양념치킨과 피자에는 과자보다 더 강한 단맛이 숨어 있다. 이렇게 단맛이 많은데도 왜 못 느끼는 걸까. 이유는 단 한 가지. 단맛을 못 느낄 정도로 다른 맛 성분도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맛이 세다는 건 자극적이라는 의미다.

그럼 아이들은 왜 채소를 싫어하는 걸까? 짐작했겠지만 채소의 쓴맛 때문이다. 아기들은 성인의 3배 정도 많은 미뢰를 가지고 태어난다. 미뢰는 척추동물에서 미각을 맡은 꽃봉오리 모양의 기관이다. 미뢰가 많으면 채소의 쓴맛을 더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채소를 싫어하는 편식 경향은 미뢰수가 줄어드는 8세 이전 유아기에 가장 두드러진다.

아이들은 만 1세가 되면 네오포비아(Neophobia), 즉 새로운 것이나 낯선 것에 대해 공포가 심해진다. 음식물 네오포비아도 만 2~5세 사이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청소년기로 가면서 줄어들긴 하지만, 문제는 이 시기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지 못하면 편식성향이 성인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시기가 묘하게 자아존중감이 형성되어 가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식습관이 좋지 않을 경우 자아존중감까지 떨어질 수 있다.

▲ 박미애 울산공업고등학교 영양교사

다행히 아이들의 입맛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편식이 심할수록 새로운 음식은 서서히 소개해야 한다. 처음부터 채소를 먹여야겠다는 욕심은 금물. 채소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첫 번째다.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데는 최소 8번 이상의 노출이 필요하다고 한다. 같은 재료를 이용해 단계별로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는 ‘푸드 브리지(Food Bridge)’라는 방법이 있다.

푸드브리지 1단계는 싫어하는 재료를 놀이도구나 식기로 활용해 시각적으로 친숙하게 만든다. 2단계는 재료를 알아볼 수 없게 하되, 모양이나 색 등을 이용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3단계는 아이가 거부감을 갖거나 골라내지 않도록 다른 재료와 섞어 준다. 마지막 4단계는 셰이크나 셔벗 등으로 만들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우리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그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내면, 천성, 본성은 변한 것이 없다. 단지 부모들의 들끓는 마음이 문제다. 자연 속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듯 풀과 흙, 숲속에서 ‘입맛’이 길들여지는 기다림은 어떨까. 그저 자연스럽게.

박미애 울산공업고등학교 영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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