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힘들 때 나를 일으켜 준 사람들

30년 전이다. 부모님 곁을 떠나 처음으로 자취라는 걸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태어나 내손으로 라면 한번 끓여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학교 주위에는 방을 여러 개 만들어 월세방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방은 좁았고 벽지도 대충 발라 굴곡이 졌으며 화장실은 주인집 식구들이 같이 사용하면서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살던 자취집에는 노처녀가 둘이나 있어 눈치껏 볼일을 봐야 했다. 그땐 거의가 연탄을 피워 추위를 견뎌낸 시절이었다. 처음 자취를 하는 나는 수시로 연탄불을 꺼트려 주인집에서 밑불을 빌렸다. 다행히 주인집 큰딸이 친절하게도 빌려주어서 냉방에 자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았다.

▲ 이창우 호텔현대울산 총주방장

문제는 한 번도 밥을 해보지 않아서 생겼다. 어느 날은 진밥이었고 아니면 고두밥을 먹어야 했다. 밥 짓기에 요령이 생겨 익숙해질 무렵 처지가 비슷한 동문들이 내 자취방으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내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을 강산이 몇 번 바뀐 후에야 알게 되었다.

늘 붙어 다니던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내 자취방으로 모였다. 한창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20대 초반 친구들은 내가 해준 요리를 열심히 먹어주었다.

그때 만든 요리 재료는 집에서 빠지지 않고 싸주신 김치가 전부였다. 그걸 가지고 손에 잡히는 대로 넣고 만들었다.

라면 한번 끓여보지 않았던 시절
자취 시작하며 우여곡절 겪어
밥 짓기에 요령 생겨 익숙해지자
친구들 먹을때마다 맛있다고 극찬
애정표현 서툰 우리 문화에서도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

어느 날 한 친구가 라면 한 상자를 어깨에 메고 왔다. 내 자취방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줄기차게 찾던 친구였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응, 친구 집에 매일 빌붙어 산다고 누나가 이거라도 갖다 주라 하더라”고 했다. 그 친구가 준 라면은 매일 끓여 먹거나 생라면으로 그냥 부숴먹기도 했다. 그날 방바닥에는 늘 부스러기가 밟혔고 수프는 늘 끓여먹던 찌개의 훌륭한 양념이 되었다.

친구들은 이 수프를 넣고 만든 갖가지 찌개를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만든다고 했던가. 그때 내 요리 실력은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지만 그 친구들은 나를 요리사로 만든 조력자가 된 것 같다. 만약 그때 그 친구들이 내 음식을 시큰둥하게 먹었더라면 아니 먹으러 몰려오지 않았다면 나는 요리사 자질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잘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몰랐던 시절. 그때만 해도 유명했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업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제약회사를 다니며 약에 대한 지식도 없이 약국을 다니며 약도 팔아 보았고, 친척이 운영하던 자동차정비소에서 취업을 미끼로 정비보조 일도 해 보았다. 클럽 조명보조로 일하던 시절에 한정식 집에서 음식을 먹다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세상에 이런 음식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가 이런 것이구나 느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돌고 돌아 옛 친구들이 해준 칭찬이 결국 내가 요리사로 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칭찬은 습관이다. 애정 표현에 서툰 우리 문화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지만 나부터 실천해 보련다.

부부간이든, 연인사이든, 부모 자식 간이든, 동료 선후배 사이에도 칭찬 한마디에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그저 말 한마디다.
 

 

● 오늘의 별미 메뉴 - 수증계(水蒸鷄)
◇재료: 토종닭 1마리(엉치살·가슴살), 토란 300g, 오이 1개, 실파 100g, 계란 1개, 생강 20g, 국 간장 100㎖, 홍고추 1개, 참기름 10㎖

◇밀가루 즙 소스: 밀가루 1스푼, 닭 육수 1컵, 후추, 생강 채

◇만드는 법 :
①닭은 통째로 하거나 뼈를 발라 방망이를 두들겨야 고기가 부드러워진다.
②냄비를 달군 다음 참기름을 붓고 닭을 넣고 볶다가 물을 넣고 끓인다.
③토란은 껍질을 벗겨 손질해둔 다음 닭이 어느 정도 익으면 같이 넣고 삶는다.
④파와 오이는 5㎝정도 크기로 잘라 끈으로 묶은 다음 삶는 닭에 넣어 살짝 익힌다.
⑤닭이 충분히 익으면 건져내서 찢어두고 육수에 국 간장으로 양념한다.
⑥육수에 밀가루 즙을 천천히 넣으며 걸쭉하게 농도를 맞춘다.
⑦찢어놓은 닭을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부은 다음 그 위에 실파, 오이, 황백 지단, 홍고추, 생강 채를 올린다.

이창우 호텔현대울산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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