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이 양보로 분쟁을 해결하는 조정은
선명한 승패 낳는 판결보다 후유증 적어
타협을 통한 분쟁해결 문화 확대됐으면

▲ 배용준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재판이라고 하면 스포츠처럼 승패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승부의 세계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민사재판에는 법원이 승패를 선언하는 판결 외에 당사자가 조금씩 양보하여 스스로 분쟁해결방안을 찾아 합의하는 조정(調停, Mediation)이 있다. 조정은 중립적인 제3자인 조정인(판사 또는 조정위원)이 당사자가 분쟁에 대하여 쉽게 협상하고 합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쟁해결 방법 또는 절차이다. 분쟁성 민사사건 중 조정으로 해결되는 비율은 약 30% 정도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판결 외의 대체적 분쟁해결수단(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으로 분쟁이 해결되는 비율이 90%를 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조정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민사분쟁으로 법원을 찾는 일이 없어야겠지만, 혹여 민사재판에 휘말리게 될 경우,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조정적 분쟁해결을 적극 고려해 보길 권유한다.

첫째, 조정은 주체적 분쟁해결방법으로 당사자가 결론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 판결은 분쟁의 결론을 전적으로 법원에 맡기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역사적 진실이더라도, 사후적으로 증거에 의해서만 사실인정을 할 수 있는 재판에서는 불행히도 자신이 경험한 역사적 진실이 사실로 인정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판결에서 원하는 결론을 얻더라도, 상대방에게 판결에 불복할 수 있는 상소권이 주어져 있기에,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더욱이 판결의 결론이 자신의 주장에 가까울수록 상대방이 상소할 가능성은 커진다. 조정은 당사자가 결론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유하고 일단 합의에 이르면 그것으로 분쟁은 종료되므로, 결론에 대한 불확실성, 상대방의 불복가능성을 모두 제거하고, 신속하고 종국적인 분쟁해결을 보장한다.

둘째, 조정은 대안적 분쟁해결을 가능케 한다. 엄격한 법적용과 일도양단적 판단이 아니라 당사자의 이익을 충족하는 다양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흔히 드는 단순화된 예로, 귤 한 개의 분쟁이 있다. 원고와 피고가 귤 한 개의 소유권을 다투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원고는 귤의 알맹이에, 피고는 귤의 껍질에 관심이 있다. 이 사건을 판결로 해결하면, 법적용의 결과에 따라 귤 한 개는 원고나 피고 중 한쪽의 소유로 선언된다. 그러나 조정으로 해결하면, 귤의 알맹이는 원고가, 귤의 껍질은 피고가 가지는 것으로 합의할 수 있다. 당사자의 사정을 고려한 창의적이고 융통성 있는 분쟁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셋째, 조정은 분쟁해결에 드는 비용을 절감해준다. 민사분쟁의 본질은 당사자 사이의 이익이나 손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다툼이다. 일단 재판절차가 시작되면 당사자 사이의 비용(변호사보수 등 금전적 비용뿐 아니라, 정신적·시간적 기회비용 포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이는 당사자 사이에 분배될 전체 이익의 감소나 전체 손해의 확대로 귀결된다. 합리적인 경제주체라면, 지금이라도 양보와 합의를 통해 비용증가를 멈추기를 원할 것이다. 쌍방 당사자가 각자의 승소가능성을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분쟁 계속으로 인한 비용증가 부분만큼을 서로 양보한다면,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영역은 생각보다 넓어진다.

마지막으로, 조정은 당사자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판결은 선명한 승패 구분으로 패소한 당사자에게 큰 상처를 준다. 그러나 조정은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양보한 것이기에 소송과 같은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분쟁을 계속하던 당사자가 서로 양보하고 합의함으로써 신뢰관계의 회복이 가능하다. 이는 당사자가 합의한 사항을 자진해서 이행할 가능성도 증대시킨다.

‘아무리 좋은 판결도 조정만 못하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양보와 타협을 통한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분쟁해결 문화가 확대되길 기대한다.

배용준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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