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이 작년과 올해에 걸친 면세점 신규 특허 관련 의혹을 캐기 위해 지난 25일 기획재정부와 관세청 등 주무부처를 압수 수색한 가운데, 연말 예정된 4개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입찰의 법적 근거 자체가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으로 규정된 ‘외국인 관광객 30만 명 이상 증가’라는 신규 면세점 특허 발급 조건을 서울지역이 갖추지 못하자, 정부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추정값이나 전망 등을 내세워 추가 입찰을 ‘졸속’ 강행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왜 정부가 이처럼 서울 면세점 수를 급하고 무리하게 늘리려고 노력했는지, 그 배경에 검찰이나 야당, 업계의 의혹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서울, ‘외국관광객 30만 이상 증가’ 법정조건 미달

현재 관세청의 ‘보세판매장(면세점) 운영에 관한 고시’에 명시된 면세점 신규 특허권(영업권) 발급 요건은 딱 두 가지다.

전년도 시내면세점 전체 매출액, 이용자의 외국인 비중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 관광지식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면세점 이용자와 매출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 79% 수준이기 때문에 조건에 부합한다.

문제는 면세점 신규 특허권 발급의 두 번째 요건인 ‘광역지자체별 외래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30만 명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대목이다.

면세점을 추가하려면 해당 지역 외국인 관광객 수가 직전 해보다 30만 명 이상 늘어난 ‘수요’가 먼저 확인돼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5월 24일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공식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15년 서울 외래관광객(외국인 관광객)은 2014년보다 100만5천 명이나 감소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15 관광동향에 관한 연차보고서’에서 이 수치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30만 명 이상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100만 명 이상 줄었기 때문에, 이 정부 공식 통계대로라면 서울 안에 새로 면세점을 허가해주는 것은 명백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에 대해 하변길 관세청 대변인은 “우리가 추가를 결정할 당시(4월 말)에는 2015년 서울 외래 관광객 통계가 없었기 때문에 30만 명 이상 늘어난 2014년 통계를 기본 근거로 사용했다”며 “최신 통계는 아니더라도 고시에 따랐다고 생각하며, 2016년 관광객과 면세점 매출 증가 추세도 부가적으로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4년 통계는 이미 2015년 7월과 11월 두 차례 ‘면세점 대전’을 치르며 5개의 서울 시내면세점을 내 줄 때 ‘수요 근거’가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중복 수요 예측으로 새 면세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불과 4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2016년 관광객, 서울 시내면세점 매출 실적 등을 고려해 업황과 수요를 전망했다는 부분도 논란거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면세점업체 관계자는 “수 십 년간 면세점 사업을 하고 있지만, 두 가지 요건 외 다른 조건으로도 신규 면세점 추가가 가능하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며 “그런 식이면 누구나 관광객, 면세점 매출 추세를 임의로 전망하고 그 수치를 내세워 마음대로 면세점 수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 KIEP, 출처 불명 ‘88만 명 증가’ 예측

백번 양보해서 법적 근거가 없는 전망치나 통계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정부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면세점 추가 허용의 근거로 제시한 수치 자체가 부실하거나 ‘입맛대로’ 가공됐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16일 정부 출연 연구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면세점 제도개선 공청회’를 열고 ‘면세점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이후 3월 3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가 내놓은 ‘5년 한시 특허제 철폐’ 등을 포함한 면세점 제도개선안, 한 달 후인 4월 29일 관세청이 발표한 ‘서울 시내 4개 면세점 특허권 추가 계획’ 등의 토대가 된 연구 결과다.

KIEP는 보고서 17페이지에서 “서울지역의 경우 2015년에 직전년도 대비 88만 명(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여 방문자 수에 대한 특허요건(전년 대비 30만 명 이상 증가)을 충족한다”, 20페이지에서 “서울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 수 증가 및 면세점 이용자·매출액의 급증 추세를 고려할 때 신규특허 추가 부여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공청회 개최 당시 2015년 전체 외국인 관광객 입국자 통계는 있었지만, 서울지역만을 특정한 외국인 관광객 통계의 경우 아직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집계가 끝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KIEP가 전적으로 추산에 따라 ‘서울 외국인 관광객 88만 명 증가’론을 내놨다는 얘기다. KIEP는 지난해 전체 외국인 관광객 입국자 수(1천323만 명)의 93% 정도가 서울을 방문했다고 가정하고 2015년 서울 외국인 방문객을 1천230만명(1천323만 명×0.93)로 어림잡았다. 이는 2014년 방문객보다 88만 명 정도 많은 규모다.

하지만 당시 이 수치를 확인한 상당수 업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KIEP 추정대로라면 메르스 여파로 전체 한국 방문객(1천323만 명)은 2014년보다 6.8%(약 97만 명) 줄었음에도 서울 방문객은 오히려 88만 명 늘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가사의한 추정은 KIEP가 전체 외국인 관광객 입국자 중 서울 방문자 비율로 ‘93%’라는 추세와 동떨어진 숫자를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사 결과에서 서울 방문 외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2011~2014년 79.7~82.5% 수준에서 오르내렸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KIEP는 2015년 비중 추정값만 이전 4년간의 최곳값보다도 10%포인트(P)나 높은 93%로 잡았다.

KIEP가 지난해 10월 15일 면세점 공청회에서는 주로 면세시장 독과점 규제 방안이나 수수료 인상을 통한 면세점 이익 환수 방안에 초점을 맞춘 반면, 올해 3월 16일 면세점 공청회에서는 관광 활성화를 위한 신규 특허 추가 발급 쪽으로 불과 수개월 만에 제언 방향을 바꾼 점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 ‘-100만 명’ 통계 20여 일 앞두고 “4곳 추가”

정부가 빈약한 ‘아전인수’격 통계를 바탕으로 4월 29일 ‘서울 시내 면세점 4곳 추가’를 발표한 시점도 논란거리다.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5월 24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15년도 공식 통계(서울 외국인 관광객 100만5천 명 감소 포함)를 공개했다.

결국, 관세청 등 정부는 정확한 지난해 서울 관광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불과 20여 일을 기다리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고 서둘러 4월 말 서울 면세점 특허 추가 발급을 결정하고 6월 곧바로 면세점 특허 발급을 공고했다는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도 계속 제기하는 부분이다.

지난달 10일 기획재정위원회 관세청 국정감사에서 더불어 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수개월이면 전년도 관광객 숫자가 나오는데 그 전에 신규 면세점을 모집했다”며 “관세청이 신규 면세점 설치요건인 관광객 증가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따졌다.

서울 면세점들의 영업 현실도 정부의 ‘충분한 수요’ 예측과는 거리가 있다. 최근 신규면세점 사업자들이 공시한 3분기(2016년 1~9월) 보고서를 보면, 대부분 수 백억 원의 누적 영업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생존 경쟁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송객 수수료’만 중국 여행사들에 건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서울 중구 신세계면세점(신세계DF)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무려 -30%에 이를 정도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의외의 신규 면세점 선정 결과 뿐 아니라 올해 초 갑작스러운 서울 면세점 추가 결정에 이르기까지, 업계에서는 이미 수 많은 의혹이 제기돼왔다”며 “이런 와중에 연말 서울 면세점 4곳 추가 심사가 강행된다면 결과에 누가 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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