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40대 애장왕 때였어. 알몸으로 여인을 껴안고 눈길을 내쳐 달려간 스님에게 상을 줘야 한다는 민심의 소리가 들려왔지. 그게 나랏일만큼 중한가 해서 주저하는 애장왕 앞에 숙부인 김언승―809년에 난을 일으켜 애장왕을 죽인―이 나섰겠다. 눈밭에서 아기를 낳고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그 여인을 불러오너라.

대궐에 나타난 여인은 스물두 살 나이의 거지였지. 여인이 자초지종을 아뢰거든. 배가 너무 아파서 천엄사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날은 저물고, 사방 분간이 안 되는 눈보라에 꽁꽁 얼어 쓰러졌는데, 아기가 나오지 뭡니까. 눈앞에 천엄사를 두고 아기를 낳다가 기절했더랬지요. 깨어 보니, 한 스님이 승복을 벗어 제 몸을 감싸주었고 아기를 어르다가는 뛰어가셨어요, 벌거벗은 채로.

그 스님은 황룡사에 머무르는 정수 법사였지. 삼랑사에서 일을 보고 새벽에 돌아가던 중에 눈길에 얼어붙은 산모를 발견한 거야. 천엄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열어주질 않았어. 사람이 죽어간다고 길길이 소리쳐도 꽉 잠근 문은 열리지 않았지. 여염에선 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이런 게 다 김언승이 수렴청정하니 민심이 변하고 절 인심도 얼어붙었다는 거야. 누가 오기만 하면 재산을 빼앗는 줄 알고 임금이 와도 모른 척할 판이었으니, 지나가는 스님이 문을 두들겨 본들 끄떡이나 했겠냐고.

정수 법사는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어. 꽁꽁 언 산모와 아기에게 승복으로 덮어주고, 알몸으로 살을 비벼 모자를 살린 게야. 여염에 소문이 퍼진 다음에야 애장왕이 알았다나. 그러자 하늘에서 말씀이 들려왔지. 왕은 당장 정수 법사를 스승으로 모셔라. 하늘의 소리는 백성의 소리. 왕은 마지못해 정수 법사를 국사에 봉하려고 위의를 갖추었고, 김언승이 나서서 가마로 모셔왔지. 법사는 다 떨어진 옷을 기워 입고 오는 거였어.

그 뒤로 여인은 기도하러 천엄사로 들어가고, 정수 법사는 국사로 책봉됐지. 신하는 신하답게, 왕은 왕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제 임무를 할 때 세상이 태평하다는 걸 선왕인 경덕왕 대에 나왔으니, 그 처신을 바로 행해야 임금이 아니겠는가.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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