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고양이의 아름다운 형제애
생명에 대한 사랑의 위대함 느껴

▲ 허찬 울산스마트동물병원 원장

“사람에게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인류학자이며 영장류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Jane Goodall)의 말이다.

우리는 동물의 본성을 거의 본능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있다. 동물의 모성애가 인간의 그것과 다른 이유는 새끼가 자신의 힘으로 생존이 가능하도록 성장할 때까지만 발휘된다는 것이다. 새끼가 완전히 성숙하면 그 때부터는 한정된 생존환경 속에서 오히려 경쟁자로 인식해 집단이나 자신으로부터 야멸차게 쫓아낸다. 형제간의 관계 역시 성숙한 개체가 되면 일정구역 안에서의 공존이 불가능하게 된다. 물론 종에 따라 생존을 더욱 쉽게 하기 위해 성숙한 이후에도 함께 생활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도 어느 한 개체가 부상 당해 사냥이나 방어 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도태시켜 공생관계는 끝나게 된다.

경남 사천의 한 공군부대 장병들이 창고의 물건들을 정리하다 배수구 그릴에 가슴이 끼여 꼼짝 못하는 노란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 곁에는 덩치가 조금 더 큰 검정색 새끼 고양이가 형제를 지키기 위해 장병들을 향해 하악거리고 있었다. 노란 고양이는 배수구 그릴에 몸이 낀 채 꽤 오랜 날이 지났는지 피부가 벗겨져 맨살의 상처부위가 짓물러 가고 있었다. 다행히 노랑이(구조한 장병들이 붙인 이름)가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까망이가 부지런히 음식물을 물어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까망이를 먼저 구조한 장병들은 배수구 그릴을 잘라내고 노랑이 마저 구했다. 노랑이는 피부도 문제였지만 갈비뼈 부분이 심각하게 함몰돼 걷지도 못했다. 구조한지 이틀이 지난 후에야 담당장교의 연락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과 접촉됐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살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살린다 하더라도 심한 변형으로 정상적인 생리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장병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해줄 것을 간청했다. 장병들의 간청에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호소하는 듯한 노랑이의 그 까만 눈망울과 형제를 살리고자 했던 까망이의 가족애에 감동해 고양이들을 치료하기로 했다. 물론 어떠한 생명도 소중히 해야 하는 수의사로서의 본분도 그 고양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지만….

몇 시간 동안 먼 길을 달려 병원에 도착한 노랑이에게 먼저 수액을 주사한 뒤 오랫동안 짓물러 괴사된 피부를 제거하고 봉합했다. 그리고 혈액검사와 초음파 등 필요한 검사와 함께 치료를 시작했다. 생명은 위대했다. 노랑이는 의료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기 시작했고, 심하게 함몰됐던 가슴부분도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갔다. 짓물러 있던 피부도 아물어 갔다. 다만 크게 난 상처부위에 털이 자라지 않아 예쁜모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염려됐다.

치료를 시작한지 1개월이 지나면서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병원에서 계속 고양이들을 기를 수 없었는 데다 유기동물보호센터에 보낼 경우 까망이도 걱정이지만 노랑이는 예쁘지 못한 외모 때문에 더욱 입양 희망자가 없어 힘들게 살려놓은 고양이를 언젠가는 안락사시켜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고양이들을 보호소로 보내는 대신 병원에서 입양 희망자를 찾기로 했다. 고양이 사진과 함께 사연을 적어 병원 로비에 게시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망이와 노랑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새 가정에 입양됐다. 의료진들이 마련한 여러 선물들과 함께. 아쉽게도 각각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기는 했지만 새로운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고양이 형제를 통해 사랑의 위대함, 특히 생명에 대한 사랑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리고 세상에는 아직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허찬 울산스마트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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