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율리 청송사

▲ 청송사지 옛 절터의 삼층석탑 인근에 최근 새로 지은 청송사 대웅보전.

울산~부산 고속도로 문수IC가 생기면서 청송사를 찾아가기가 조금 헷갈린다.

문수초등학교를 찾아가 그 옆길로 가면 되는데도 학교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부산방면 7번국도가 여러 갈래의 길로 나눠지면서 자칫 방심하면 고속도로 쪽으로 진입하기 십상이다.

2012년 초만 해도 ‘문수분교장’이었던 문수초등학교. 지금도 ‘문수분교’로 통할만큼 낯선 이름이다. 문수분교는 ‘청량초등학교 문수분교장’의 줄임말이다. 학교가 커졌고 문수초등학교로 바뀌었어도 문수분교가 더 정겹다. 대부분의 등산지도에는 아직도 문수분교로 표기돼 있다.

이 학교는 분교장 시절 졸업생이 2005년에 2명에 불과했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도 한 해 5명에 그쳤다. 이에 따라 농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권장 정책에 따라 폐교 위기로 내몰리기도 했다. 1937년 7월 간이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은 이래 최대 위기였다.

싱싱하고 푸른 소나무가 많아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청송’이라 불러
신라시대 효소왕때 창건한 청송사·통일신라시대 청송사지 삼층석탑
그 옆으로 최근 들어선 대웅보전…산사길 옆에는 식당·카페도 즐비

하지만 인근에 보금자리주택 건설사업 진행으로 반전 기회가 찾아왔다. 2012년 3월 이 학교는 문수초등학교 본교로 개편됐다. 문수데시앙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자 지난해 3월에는 8학급을 이루었다.

문수초등학교 입구, 우람하게 치솟은 금강송 한 그루가 하늘을 가린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표석도 그 옆에 새로 섰다. 사라질 뻔 했다가 본교로 개편된 이 학교의 꿈은 계속 진화를 할 것 같다.

▲ ‘갤러리 다운재’ ’커피숍 투썸’ 등의 간판이 나란히 서있다.

문수초등학교 옆으로 콘크리트길이 나 있다. 넓지 않은 산길 이름은 ‘청송길’이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길 동무를 해준다. 배낭을 멘 등산객들이 무시로 오르내리는 바람에 정적이 감돌 겨를이 없다.

초입에서 300여m 가량의 산길 옆 공터에는 문수사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어떤 날은 한 대, 어떤 날은 두 대가 서 있지만 버스가 보이지 않는 날도 있다. 여기서 기다리면 태워줄까? 하지만 언제 태워주는지 알 길이 없다. 절까지 태워주는지, 국도에서 실어주는지도 모르겠다.

좁다란 산길이 푸름을 간직하고 있다. 걷는 길이 푸르기야 하겠냐만 공기가 싱그럽고 소나무들도 쭉쭉 뻗어 있다. 산길 이름이 왜 청송인지를 쉽사리 알아차리겠다. 경사진 언덕바지에는 ‘율리쉼터’라는 가정집 같은 식당이 있다. 오리 백숙과 불고기를 먹으러 간혹 들렀던 기억이 난다.

오른쪽으로 문수산 허리에서 율리~삼동간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현장의 숲이 잘려나간 휑한 공간은 허허롭기 그지없다.

▲ 보수작업이 진행중인 청송사지 삼층석탑.

내리막길이 끝날 무렵 조그만 다리 앞에서 작은 정자가 기다린다. 찬바람 부는 날에는 텅 비어있는 정자에서 쉬어갈 겨를조차 없다.

처음 갈림길이 나타난다. 산길만 나눠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청송사’와 ‘청송암’ 두 개의 간판이 어디로 갈지를 묻는다. 청송사는 오른쪽 길, 청송암은 왼쪽 길이다. ‘청송사’와 ‘청송암’의 차이는 무얼까. ‘암’(庵)보다 작은 ‘사’(寺)가 한두 곳이 아니니 규모 차이는 아니겠다.

몇 년 사이 이 산속에 갤러리나 카페도 제법 들어선 모양이다. ‘갤러리 다운재’, ’커피숍 투썸가는 길, ‘카페 엠 율리’ 등의 간판도 나란히 서 있다. 굳이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따스한 차 한 잔정도 음미하는 여유를 갖는 것도 여유롭겠다. 촌집 나대지와 전답, 과수원 매물을 구한다는 플래카드 광고가 전봇대에 붙어있다.

가을걷이를 마친 정자 옆 마른 논 가운데 작은 다발로 묶어놓은 볏단이 가득하다. 농군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을 땀이며 결실을 거두는 정성이 묻어난다. 볏단 주변으로 어디서 왔는지 모를 촌닭 가족이 호시탐탐 나락을 노리고 있다. 길옆 옹벽에서 총총대는 까치는 한입 가득 무언가를 물고 있다.

‘고종31년(1894년) 영축, 내율, 외율로 갈라져 있다가 1914년 행정개편 때 율리 청송이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이 마을을 지나다보니 푸른 소나무가 많아 이름을 청송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청송마을회관 앞에는 2012년 6월 세워진 표석이 서 있다. 마을이름 내력이 새겨져 있다. 자장율사까지 등장시킨 지명 유래의 근거는 찾지 못했다. 다만 청송마을을 더욱 쉽게 알리기 위한 스토리텔링 일환이 아니었을까. 청송마을은 청송본마을, 지통곡, 중마을, 절골로 4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회관을 지나 삼거리 갈림길에서 청송사는 오른쪽 길로 향한다. 산길 가운데서 율리~삼동간 도로 공사구간과 마주친다. 청량 문수IC에서 삼동 하잠리 일원까지 총연장 7.4㎞ 구간을 너비 20m, 4차로로 개설하는 사업이다.

이 도로는 삼동교차로에서 하작교차로까지 1.2㎞, 율리터널에서 문수IC까지 1.4㎞ 구간은 각각 개통했으나 이용차량이 거의 없다. 전체 구간 중 율리터널에서 하작교차로까지 4.8㎞ 구간이 개설되지 않아 산과 마을만 끊긴 상태로 남아 있다. 허허벌판 같은 잿빛 도로를 건너는 기분이 묘하다.

도로를 건너 다시 이어진 산길은 소나무 숲이 터널처럼 드리워져 있다. ‘청송’이라는 지명의 선입견 탓일 게다.

몇 년 사이 새로 지어진 전원주택이 이제 제자리를 잡은듯하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 한 뼘의 땅에도 배추며 상추가 햇볕을 받아 상그럽다. 초겨울 바람이 넘어오는 산자락으로 몇 안 되는 민가와 고풍스런 절집이 보인다.

차량 두 대가 마주치면 지나치기 버거울 산길 끄트머리. 그물에 둘러싸인 청송사지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탑을 두른 푸른색 망이 햇볕에 투과되어 SF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 탑은 지난 달 8일부터 내년 2월15일까지 보수작업이 진행 중이다. 석탑 주변 감나무에는 꼭대기마다 까치집이 지어져 있다.

청송마을 가운데 위치한 청송사는 유래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청송사지 석탑만이 유래할 뿐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망해사·청송사는 문수산에 있다’(望海寺靑松寺俱在文殊山)는 기록만 남아 있다.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蔚州 靑松寺址 三層石塔)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신라 제32대 효소왕(孝昭王, 재위 692~702년)때 처묵(處默)화상이 창건한 옛 청송사 터에 있다. 상하로 나뉜 이중기단 위에 5.5m 높이의 3층 탑몸이 올려졌다. 1963년 1월21일 대한민국 보물 제382호로 지정됐다.

삼층석탑 옆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청송사지 청송사가 있다. 청송사지 옛 절터의 삼층석탑 인근에 최근 대웅보전을 새로 지었다.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목에는 명품 반열에 들 만한 소나무 한그루가 객을 맞는다. 대웅보전 오른쪽에는 동백나무가 거대한 꽃망울을 터뜨렸다.

청송사터 삼층석탑은 한번 찾으면 계속 찾는가보다. 몇 차례 찾아왔고, 그럼에도 다시 찾았다. 무슨 매력이 다시 찾게 할까. 주변 경치가 그리 뛰어나지도 않고 탑도 아주 빼어난 것은 아니다. 이 탑을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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