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재야의 고수를 만나다

요리사로 일하다보면 로또에 당첨된 듯이 ‘횡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얼마전 지인의 소개로 서울에 있는 그런 식당에 당일치기로 갔다온 적이 있다. 그 식당에 대해 뭐든 알고싶어 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인맥 넓기로 나름 소문난 사람들도 태반이 존재조차 몰랐다. 안다고 해도 그런 식당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다는 정도였다.

정보에 의하면 그곳은 상위 0.1%만을 위한 회원제 식당이다. 사전예약자만 이용할 수 있고 회원이 되려면 가입비와 연회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돈이 있다고 아무나 가입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은 쉽게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입구에서부터 신분 확인을 했다. 누구와 어떻게 왔다가 나가는지 모르고 누구와 만나는지도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이봉주 선생 놋그릇·청자그릇에
드라마 대장금 총괄주방장이 만든
효소·천연조미료를 이용한 음식
뛰어난 맛·배려심에 존경심 절로

 

▲ 이창우 호텔현대울산 총주방장

그 식당을 찾았을 때는 늬엿늬엿 해가 지는 시간이었다. 간판을 보니 내가 찾던 식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여느 건물 사이에 낀 그저 평범한 4층 건물이었다. 안내인에게 지인 이름을 알려주고 들어서자 여직원이 안내했다. “음식과 서비스가 좋으니 꼭 한번 식사를 하고 배워오라 해서 왔다”고 사정을 얘기했다. 그러나 식사장을 구경하고 싶다는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구경시켜준 적이 없고 설령 시켜주더라도 사진촬영을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갈 수는 없기에 사정을 얘기했더니 예약이 안된 룸만 잠시 볼 수 있다고 했다.

요약을 하면 홀 서비스 직원 수가 주방 직원보다 배나 많은데 놀랐다. 무엇보다 식사에 사용하는 한식그릇이 이봉주 선생의 작품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내로라하는 놋그릇 기능보유자이자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다. 코스에 나오는 그릇들도 청자문양에 고가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품이 있었다. 음식도 어느 하나 튀지 않게 양념이 강하지도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았다. 효소를 이용해 야채를 양념하고 천연조미료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었다. MSG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고객들이 느끼게 하고 있었다.

식사는 대부분 고객 앞에서 직접 덜어서 제공하는 러시아식 서비스를 했다. 식사가 나올 때마다 음식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특히 메뉴 앞면에 ‘○○○고객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라는 문구를 새겨 작은 부분부터 고객 마음을 훔치고 있었다. 사전예약 고객의 상세정보를 입수해 별로 제작한 것이다. 24절기에 즐겨먹는 음식 설명은 물론 메뉴마다 스토리가 있었고 의미가 곁들여졌다. 고객이 보약을 먹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압권은 베일에 쌓인 주방장을 만나는 일이었다.

식사가 대충 끝날 무렵 위생복을 차려입은 주방장이 문을 열었다. 단아한 걸음으로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주방장을 보는 순간 서광이 비칠 정도로 빛이 났다. 운동경기에서 상대의 기에 눌려 기선제압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느껴보지 못한 재야의 숨은 고수에 대한 두려움과 부러움이 교차되는 기분이었다. 식당 부사장 겸 셰프라고 소개한 여주방장에게 기가 잔뜩 죽어 얘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 세웠다.

그는 드라마 대장금의 음식총괄 주방장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제공된 음식을 설명하는 모습에서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묻어났다. 톤이 높지도 낮지도 않으면서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이 신뢰를 주는 말투였다. 이런 주방장이 아직도 현장에서 고객들에게 궁중음식을 알리고 있었구나 싶어 존경심마저 들었다. 이것저것 묻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하마터면 마지막 열차를 놓치뻔 했다.

왜 그 주방장처럼 작은 것에도 고객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할까.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고 무엇을 서비스하는 줄 모르고 그저 힘들다는 푸념만 했을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았고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건 아닌지 반성하는 기회가 됐다.

 

● 오늘의 별미 메뉴 - 메밀 전병을 곁들인 궁중 월과채

◇재료: 당근 100g, 애호박 100g, 표고버섯 3개, 소고기채(방심) 100g, 메밀 밀쌈 2장, 계란 2개(황·백 지단).

◇소스: 씨 겨자 소스..

◇만드는 법 :

●당근 애호박을 돌려 깎기를 한 다음 채 썰어 살짝 데친다.
●고기는 채 썬 다음 간장, 마늘, 후추를 넣고 양념한 다음 살짝 볶아둔다.
●표고버섯은 꼭지를 따고 채 썰어 고기 양념과 동일하게 하고 볶아둔다.
●메밀가루에 계란, 우유, 물, 밀가루를 넣고 반죽한 다음 얇게 부친 다음 채 썬다.
●접시에 모든 재료를 가지런히 놓고 씨 겨자 소스를 별도로 담아 찍어 먹거나 모든 재료를 혼합한 다음 씨 겨자 소스로 버무려 먹는다.

이창우 호텔현대울산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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