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박태환과 잠수대결서 이긴 해녀할머니

 

한번에 1~2분…하루 8시간 100여차례 물속으로
숨 참는 능력으로 위계 결정
대상·상-중-하·똥군 나뉘어

지난 2008년 10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박태환 선수와 제주 해녀 할머니의 잠수 대결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동영상)가 화제가 됐다. 3분 남짓 시간이 지난 끝에 박태환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물 위로 올라가면서 대결의 승리는 끝까지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 해녀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장난스러운 대결이었지만, 해녀에게 숨을 참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은 해녀의 위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대상군 또는 상군(작업 수심 10~20m), 중군(5~10m), 하군 또는 똥군(3~5m)으로 나뉘는 해녀의 위계질서는 단순히 노력만으로 넘나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군에서 중군이 되는 것은 개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가능할 수 있지만, 수십년간 물질을 해 온 베테랑 해녀도 타고난 폐활량과 같은 선천적인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중군에서 상군이 될 수 없다.

 

해녀는 한번 잠수에 통상 1~2분 바닷속에서 소라·전복·천초 등을 채취한다. 상군 중 일부 해녀는 한 번에 3분가량 20m 깊이까지 들어가 작업하기도 하지만 하루 8시간가량 쉬지 않고 100여 차례 물속을 드나들어야 하는 작업 특성상 박태환과 해녀 할머니의 대결에서처럼 숨을 끝까지 참아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거친 바닷속에서 멈췄던 숨을 수면 위로 올라가 터뜨릴 때 내는 ‘숨비소리’는 바로 삶을 위한 해녀의 울부짖음과 같다. ‘호오이 호오이’ 마치 돌고래 또는 새가 우는 듯 아름답게 들릴 법한 이 소리는 짧은 휴식만으로도 계속해서 물질을 이어가기 위해 해녀들이 터득한 호흡법이다. 연합뉴스

제주해녀 복장 변천사
고려때 나체조업 금지령 내리기도
조선 초·중기까지 자유롭게 물질
관리들의 간섭에 물옷 입기 시작

과거 해녀들은 알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낫으로 전복과 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했다.

기록을 보면 고려 숙종 10년인 1105년 탐라군의 구당사(句當使)로 부임한 윤응균이 ‘해녀들의 나체(裸體) 조업을 금한다’는 금지령을 내렸고, 조선 인조(1623~1649) 때는 제주목사가 남녀가 어울려 바다에서 조업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인 1629년에 이건이 유배지 제주에서 쓴 한문수필 ‘제주풍토기’에도 ‘잠녀(潛女)들은 발가벗은 몸으로 낫을 들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 미역을 따고 나온다. 남녀가 뒤섞여 일하고 있으나 이를 부끄러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어촌계 해녀들이 잠수복을 입고 해산물을 채취하려고 바다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을 미뤄짐작해 보면 조선 초·중기까지 자유롭게 물질을 하던 해녀들은 육지에서 내려온 관리들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점차 ‘물옷’이라 일컬어지는 재래작업복을 입기 시작했고, 각종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옷은 하의에 해당하는 ‘물소중이’와 상의에 해당하는 ‘물적삼’, 머리카락의 흐트러짐을 막기 위해 쓰는 ‘물수건’으로 이뤄져 있다.

물질도구로는 테왁 망사리, 빗창, 호맹이, 족쉐눈 등이 있다.

테왁은 부력을 이용한 작업도구로, 해녀들이 물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그 위에 가슴을 얹고 헤엄쳐 이동할 때 사용한다. 테왁에는 채취한 수산물을 넣어둘 수 있는 망사리가 부착돼 하나의 세트처럼 이뤄져 있다. 해녀들은 과거 잘 여문 박에 구멍을 뚫고 씨를 빼낸 다음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구멍을 막아 테왁을 만들었으나, 이후 플라스틱 또는 스티로폼 등 더욱 가볍고 편한 재료를 사용해 만들었다.

재래작업복인 물옷은 1970년대 초 일본에서 속칭 고무옷이라고 하는 잠수복이 들어오면서 대체됐다. 고무옷은 부력이 있어 연철이라는 납추를 몸에 매달아야만 물에 들어갈 수 있다. 고무옷이 등장하면서 해녀의 작업환경이 크게 변했다.

▲ 제주 해녀들이 물질할 때 몸을 물에 뜨게 하려고 가슴에 받치는 기구인 테왁과 테왁망사리. 제주해녀박물관 전시물 촬영. 연합

이전 30분에서 1시간 남짓하던 작업시간이 고무옷을 착용하면서 3~5시간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났고,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작업할 수 있게 됐다. 바닷속 20m 가까이 물질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잠수병과 같은 부작용이 생기고 장시간 해산물 채취로 인한 바다 밭의 황폐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으나 해녀 스스로 자정작용과 수입 증가, 편리성 등 이유로 고무옷은 현재 모든 해녀에게 널리 보급됐다. 글·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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