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일조권 분쟁 해법은 없나 - <중> 민사법과 건축법의 괴리

▲ 일조권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울산시 울주군 굴화장검지구 푸르지오아파트(오른쪽)와 공사가 진행중인 동원로얄듀크아파트(왼쪽) 전경. 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민사소송법과 건축법의 불일치가 전국적 이슈인 일조권 분쟁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각종 부작용은 물론 법과 행정의 신뢰성까지 추락시키고 있어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개 법 잣대 달라 혼란 야기
건축법 따른 허가 반려 못해
행정 딜레마…신뢰도 타격

◇넓어지는 일조권 인정 범위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일조권의 피해를 보다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추세다. 특히 일조권 침해 분쟁이 생기면 공사를 아예 못하게 하는 법원의 판결도 잇따르고 있다. 일조권을 침해(수인한도 이상)하는 건물이 착공 전이거나 공사 초기 단계일 때 피해자들이 공사중지 가처분을 제기하면 법원이 받아주는 양상이다. 다만 2층 이상 건축물이 세워진 경우 건물을 철거하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지나친 손실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고려돼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는 판례가 많다.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지면 건설사는 완공시점 지연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공사중지를 피하기 위해 법원의 잣대를 교묘히 이용하는 건설사들도 있다. 울주군 굴화장검지구의 푸르지오 아파트가 이같은 사례(본보 11월23일자 7면 보도)다. 푸르지오 아파트 주민들은 “동원개발이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피하기 위해, 공사초기에는 일조권 피해 배상을 충분히 해 줄 것으로 주민들을 안심시켜 놓고 3층 이상 아파트가 올라가자 협상의 태도가 돌변했다”며 “법률 전문가까지 동원한 고의적 협상 지연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사소송법과 건축법의 괴리

민사소송법에 따른 법원의 일조권 침해 기준이 현행 건축법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건축법에 전용·일반주거지역 일조권 확보를 위해 높이 9m(3층 이상) 초과 건축물을 건립할 때 정북(正北) 방향으로 인접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건축물 높이의 2분의 1 이상을 띄어야 하고, 9m 이하는 1.5m 이상의 간격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규정만 갖추면 건축 허가에 문제는 없다.

그러나 법원은 건설사가 건축법을 준수해 건물을 지었다 하더라도 일조권 침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건축허가는 최소 요건을 충족했다는 의미이며, 건축행위로 인근 주민들의 쾌적한 주거환경을 침해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건축법령상 일조규정과 민사상 잣대가 다르게 적용되면서 건축법령에 부합한 합법적 건축물이 일조권 소송에 휘말리는 불합리성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소송비용, 공기 지연에 따른 손해 등이, 피해자 입장에서도 실질적 피해와 법적 소송 및 실력행사에 따른 피로도 등이 문제로 부각된다.

◇건축행정 혼선…신뢰 추락

민사소송법과 건축법의 불일치로 건축행정이 혼선을 겪고 있고, 신뢰 또한 잃고 있다. 일조권 침해가 예견되더라도 지자체는 건축법에 따라 설계된 아파트 건축허가를 반려할 수 없다. 반려한다면 건설사가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대법원 판례에 따라 법원이 건설사의 손을 들어 줄게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조권 분쟁이 벌어지면 피해자들은 지자체에 책임을 요구한다. 푸르지오 아파트 주민들이 지난달 29일 울주군청을 찾아 “건축허가를 내준 울주군이 즉각 피해 보상 중재에 나서라”라며 항의 집회를 연 것도 하나의 사례다.

울산의 한 지자체 공무원은 “만약 사법부의 판결이 정당하다면 입법부는 사법부의 판결 내용을 적극 수용해 건축법를 바꿔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행정기관의 인허가 업무는 마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창환기자 cchoi@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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