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 진안 마이산을 바탕으로 그린 일월오봉도.

일월오봉도는 다른 이름으로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또는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라 불리기도 한다.

그림을 앞에서 보면 왼쪽에는 달이, 오른 쪽에는 해가 떠있고 양쪽 산에서 두 줄기의 폭포가 내리고 있으며 아래로 넘실대는 파도모양과 중앙을 기점으로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솟아있고 역시 좌우로 붉은 기둥의 소나무가 대칭으로 짝을 이루도록 그려져 균형감과 안정감을 주고 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왕의 존재 의미…조선시대 용상 뒤편에 놓여
일월오봉도를 뒤로하고 옥좌에 앉은 왕은 우주질서의 중심에 존재
두줄기의 폭포는 왕과 왕비 화합, 생명의 힘을 널리 전달하라는 뜻
양쪽에 서 있는 두쌍의 소나무는 우주목으로 하늘-땅 연결 매개체

우주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동양의 핵심사상인 음양오행을 나타내며 해와 달은 음양을 표현하고 다섯 봉우리 또는 목화토금수와 색상은 오행을 표현하고 있다.

일월오봉도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왕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주로 용상(龍床, 왕이 정무를 볼 때 앉던 자리)의 뒤편에 놓였다고 한다.

먼저 음양은 우주를 이루는 해와 달로서 자강불식(自强不息, 하루도 쉬지 않고 정확한 시간에 스스로의 행로를 가는 것)을 뜻한다. 왕은 정해진 시간에 정사를 시작해야 하며 모든 업무가 질서와 체계 그리고 균형 속에서 정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옛부터 동양에서 군주는 북극성(제왕의 별)에 비유되어 북쪽 하늘에 안거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남면(南面)이라 하였다. 따라서 왕은 남쪽을 향하여 앉아야 한다는 사상이다.

왕이 위치하고 있는 북에서 남으로 보면 좌측이 동쪽이 되고 우측이 서쪽이 된다.

음양사상에서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면서 낮의 상징으로 양이 되고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면서 밤의 상징으로 음이 된다.(左- 東- 陽- 日, 右- 西- 陰- 月)

군주가 남면하고 있을 때 왕의 시각에서 좌측인 동쪽은 양으로 문신(文臣)들이 위치하였고 우측인 서쪽은 음으로 무신(武臣)들이 위치하였다.(양인 좌가 우선이듯 문을 무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정승도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은 위치라는 의미이다.

즉, 왕이 북쪽으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 문신은 동쪽, 무신은 서쪽에 위치하고 남쪽이 위계가 가장 낮은 것으로 그 외 신하와 백성들이 북면(北面)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

다음으로 음양은 우주를 이루는 하늘과 땅으로서 땅은 후덕재물(厚德載物, 덕을 두텁게 하여 자애롭게 만물을 포용하고 기르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많은 산악에다 사이사이에 강과 하천이 숨어 있는 듯 낮게 흐르고 있다.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대지에 풍요로운 생명력을 품은 어머니와 같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운데 솟아있는 오악(五岳)은 땅의 상징으로, 오행의 뜻과 함께 중앙의 산과 그 산을 둘러싼 동서남북 네 산을 의미한다.

중국 기준으로는 중앙의 숭산, 동방의 태산, 남방의 형산, 서방의 화산, 북방의 항산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기점으로 보아 동쪽은 금강산, 남쪽은 지리산, 서쪽은 묘향산, 북쪽은 백두산, 중앙은 삼각산(북한산) 등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산인 곤륜산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림 아래 부분에 수평으로 출렁이는 물은 햇빛, 달빛과 함께 생명을 키우는 원천으로 지상에 존재하는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넘실대는 파도모양은 조수(潮水)의 조(潮)와 국사(國事)를 논의하고 집행하는 조정(朝廷)의 조(朝)가 발음이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밀려드는 파도는 조정에 출입하는 신하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두 줄기의 폭포는 음과 양의 조화로움에서 생명을 잉태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왕과 왕비가 화합하여 생명의 힘을 널리 전달하라는 뜻을 내포한다.

양쪽에 서 있는 두 쌍의 소나무는 우주목(宇宙木)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적송(赤松)은 전통적인 조선 소나무의 특징으로 성스럽고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원래 궁중에선 기록화를 그리게 되어 있는데 왕의 얼굴은 용안(龍顔)이라 하여 신성시하고 있었으므로 만약 그림으로 그려진 왕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훼손된다면 용납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왕의 얼굴 대신에 일월오봉도를 그렸으며 이는 왕과 관련이 있는 그림으로 왕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하게 되었다.

따라서 일월오봉도는 큰 규모의 궁궐 어좌(御座, 왕이 앉는 자리) 뒤에나 왕의 초상인 어진(御眞)을 모신 진전(眞殿)과 혼전(魂殿)등의 뒤에 비치(備置)하게 되었다. 또한 왕이 거처하는 곳이나 행차 시 일월오봉도의 병풍을 치거나 장식을 했으며 왕은 그 그림 앞에 앉게 되어 있다.

일월오봉도는 그림 그자체로는 미완성으로 보며 병풍 앞에 왕이 앉아야 비로소 완성된 그림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림은 위에서부터 삼등분으로 나누어 우주를 이루는 삼재(三才, 천지인)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는 데 왕(|)이 정좌(正坐)하면 삼재를 관통하는 대우주의 원리(三+|=王)가 완성된다.

일월오봉도를 뒤로 옥좌에 앉은 왕은 우주의 질서를 잡는 중심에 있으며 천지간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존재가 된다.

즉 왕은 하늘의 이치를 받들어야 하며 음양의 조화와 오행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갖추어 백성과 함께 태평성대의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

한편 병풍 뒤에 있는 공간은 상궁이나 내시 등이 대기했다고 하며 왕이 죽을 때에는 그 그림도 함께 묻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의 일상이나 궁중의 의례에서 일월오봉도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도상(圖象)이나 유래와 관련된 기록은 전해지는 바가 없다.

일부 학자들은 중국유교의 고전인 <시경(詩經)>에 실려 있는 ‘천보’(天保)라는 시의 내용(왕의 덕을 칭송하고 왕에게 하늘과 조상의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교경전인 <주례>에 기초하여 경복궁을 건립하였듯이 <시경>에 입각하여 아름답고 장엄하면서도 우주의 기운을 담고 있는 일월오봉도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 김진 김진명리학회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우주의 중심으로 역대 조선왕의 상징인 일월오봉도는 국가 통치이념인 성리학사상을 공간으로 옮겨놓고 대우주에 순응하는 소우주(인간)의 존재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후기 조선에 이르러서는 민화의 범주가 되어 병풍이나 옷장 등 생활소품에 장식화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현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일월오봉도는 덕수궁 중화전(中和殿),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창덕궁 인정전(仁政殿) 등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국왕의 존재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조선에서만 있는 독특한 형태를 지닌 궁중회화라 할 수 있다. 우주의 중심인 왕의 위엄과 권위 그리고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그 가치는 특별하며 우리의 자부심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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