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을 그렸다. 두 사람은 이름난 화가들이지만 한 조각 내 마음은 그려내지 못하였다. 내가 산속에 묻혀 학문을 닦아야 했는데 명산을 돌아다니고 잡글을 짓느라 마음과 힘을 낭비하였구나. 내 평생을 돌아보매 속되게 살지 않은 것만은 귀하다고 하겠다.” 1796년 조선 정조 때 그려진 서직수 초상(보물 1487호)에 적힌 초상화찬(肖像畵贊)의 내용이다.

‘터럭 하나라도 같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라는 표현은 조선의 초상화가 얼마나 사실성을 중요시했는지를 말해준다. 거기에 더해 시각적 이미지와 내적 세계까지도 그 속에 담겨지기를 원했다. 제각각 다르게 표현된 눈매와 입, 수염의 길고 짧음, 그 가닥가닥의 움직임만으로도 평소 성품과 감성적 고뇌까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복식, 장신구, 생활상은 물론 그 시절 정세와 대외적 분위기, 대상의 처지까지도 알 수 있는 초상화, 그림 한 장에 한 시대 역사의 단면이 들어 있는 것이다.

▲ 서직수 초상 1796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삼국시대 고분벽화에 인물을 그리면서 우리나라 초상화는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초상화를 꼽자면 고려시대는 ‘이제현의 초상’(국보 110호 원나라 진감여 작품)과 ‘안향 초상’(국보 111호)이 있다. 조선시대 최고 수작으로는 감히 조선 후기의 혁신이라고 칭하듯 정면을 향한 도발적인 자태로 자신의 내적 상태와 외적 사실성을 완벽하게 표현한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과 ‘송시열 초상’(국보 제239호)을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는 왕의 초상화인 어진과 공신상, 유교서원에 봉안된 초상화 제작 등이 활발해지면서 회화사적으로도 크게 발전한 시기이다.

자화상을 통해 내면 깊이와 인격의 품을 느끼는 것이 비단 과거의 일만이겠는가. 백 마디의 말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혼이 담긴 그림 한 장의 힘. 시간이 흘러 현재가 역사 속으로 묻힐 그때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지 한번쯤 생각해볼 때다.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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