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년전 선조들의 혜안 본받아
동북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 등
국제사회에서 우리 역할 찾아야

▲ 성인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라는 긴 이름의 세계지도를 보게 되었다. 말 그대로 ‘혼연일체가 되어 펼쳐지는 국경과 역대 왕조의 수도를 기록한 지도’다. 1402년 조선 3대 태종 때 그린 옛 세계지도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라는 점에 놀라게 된다. 이 지도는 태종 2년 김사형, 이회, 이무 등이 만들었다. 주요 지명은 중국 원나라 시대의 것들을 사용하였으며, 지도 크기는 세로 150㎝ 가로 163㎝의 비단 바탕에 그린 채색 필사본이다.

이 지도는 1360년 대원 울루스 말기에 시작됐다. 몽골시대 남중국에서 입수한 두 장의 지도-청대 승려 청준의 ‘혼일강리도’와 오문(강소성 소주) 출신의 이택민이 만든 ‘성교광피도’의 장점을 조합해-를 한 장의 지도로 만들었다.

이 지도에 중국과 조선은 세밀하지만, 유럽과 아프리카는 간략하다. 중국이 중앙에 있고 오른쪽에 조선반도, 그 아래에 일본이 작게 그려져 있다. 한편 지도 왼쪽에는 아프리카 대륙에 빅토리아 호수가 담겨 있다. 중간에 아라비아 반도, 중동, 유럽과 러시아와 함께 작게 축소되어 그려져 있다. 서양에서도 1507년에 이르러서야 유럽과 분리된 아메리카 동해안 일부가 대서양과 함께 그려진 불완전한 세계지도가 나왔다.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의 고지도임은 물론, 신대륙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이전의 지도로서 세계적으로 훌륭한 세계지도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조선 초기의 지도제작술의 수준과 국가의 지도에 대한 지대한 관심,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공간 인식을 알려주는 자료로도 의의가 크다. 규장각에 류고쿠대학 소장본의 모사본이 있다. 일본에서 지도를 소개한 책 제목은 <몽골제국이 만든 세계지도 : 지도는 말한다>이고, 저자는 ‘아시아발 세계지도’로 평했다. 우리가 번역한 책 제목은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다.

고려말 조선초 학자 권근(1352~1409년)은 지도 아래에 쓴 발문에서, “천하는 넓기 그지없어, 안으로 중국에서부터 밖으로 사해에 이르기까지, 몇 천만리에 이를 지 헤아릴 수 없다. 요약해 두어 자 되는 폭에다 그리면 자세하게 기록하기가 어렵다.… 지도를 제작할 시에는 그 대강 만을 기재하는 법.… 문을 나서지 않고서도 천하를 안다는 말이 정녕 이를 두고 하는 말로서, 무엇보다 지도나 서적을 통해 지리를 아는 것은 정사(政事)에 도움이 되는 것.… 후일 좁은 이집에 은거하면서도 명승고적을 실은 지도를 보는 꿈이 이루어질 듯하여” 기쁘다고 썼다.

동북아균형자론(東北亞均衡者論)은 대한민국이 동북아시아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담론이다. 과거 정부가 “무력이나 힘의 사용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동북아 역내에서 중견 국가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고, 우리의 국익을 위해, 변화하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협력국가가 되기 위해, 과거 우리가 종속적 변수였던 상황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우리의 역할을 찾아 나가자는 것”으로 설명했었다.

부산에서부터 기차로 중국 실크로드와 시베리아를 지나, 파리까지 달려가는 꿈을 꾸었던 십여 년 전이 생각난다. 실크로드와 시베리아에 해외건설이 가능하도록 했다면,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되었을 것이다. 중국의 고속철 시작에 우리가 도왔다면, 다른 가능성도 열리지 않았을까?

근래 트럼프 당선자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폐기하려 하고, 그 틈새에서 “미국 포함한 새 자유무역지대 만들자”(FTAAP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며, 서쪽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로 팽창하고, 동쪽으로 FTAAP를 대안으로 제안하며 시진핑의 중국은 미래에 투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청와대와 국회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부는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아시아 내의 균형자 역할을 잘하고, 의미 없는 시계추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여년 전 아시아를 넓게 생각하던 그 때 그 대통령이 그립고, 600여 년 전 세계지도를 넓게 그린 선조들의 혜안이 떠오른다.

성인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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