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끄트머리 12월을 맞아
지나온 삶에 스스로 질문 던져
주체적 생으로의 새 시작 맞길

▲ 김용호 영산대 창조문화대학 학장 방송연예학부 연기뮤지컬 전공

예전에 연상퀴즈게임을 한 적이 있다. ‘12월’이 제시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망년회, 눈… 그런 것들을 연상했다. 그런데 내 입에서는 부지불식간에 ‘죽음’이 튀어나왔다. 오래 전 독일 유학 중에 아버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님께서는 그후 병석에 계셨지만 나는 공부에 쫓겨 찾아뵙지 못했다. 그러다 유난히 춥고 어둡던 12월 저녁, 갑작스런 부고를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그날의 충격은 12월에 각인되었다.

하지만 죽음의 경험이 없어도 누구나 마지막 달력을 넘기면 ‘끝’을 생각하게 된다. ‘끝’은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도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없이 죽는다”는 시구가 새삼 가슴을 치고 불현듯 자문하게 만든다.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독일의 표현주의 극작가 게오르그 카이저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에 등장하는 은행원은 어느날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진다. 맹목적으로 열심히 살던 그가 그 대답을 찾는 순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1917년에 초연되었는데 전체 2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없으며, 단지 직위나 직업에 따라 지점장, 조수, 신사, 호텔웨이터 등으로 표시된다.

주인공은 은행 출납계에서 일하는 은행원이다. 주인공이 일하는 은행은 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하는데, 부의 축적이 궁극의 목표이다. 은행원은 세상 모든 문제의 해답은 ‘돈’이라고 굳게 믿으며 영혼없는 기계처럼 일한다. 어느날 아침 은행원은 돈을 찾으러 온 이탈리아 여인에게 매혹되고, 여인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돈이 여인을 차지하게 해줄거라고 믿은 은행원은 거액의 돈을 횡령해서 여인을 찾아가지만 거절당한다. 운명의 기로에 선 은행원은 틀에 박힌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는 대신 모든 돈을 주고 살만큼 가치있는 것을 찾기로 결심한다. 이때 ‘죽음’이 함께 가자고 찾아오지만 은행원은 자정에 보자며 물리친다.

점심 때 집에 간 은행원은 어디에서 오냐는 물음에 ‘무덤’에서 온다며 “죽은 자는 기껏 삼미터 깊이 정도 밖에 묻혀 있지 않은 셈인데, 오히려 산 자들은 더 깊은 쓰레기 더미에 묻혀 헤어나질 못한다”고 답한다. 어머니는 시계추처럼 정확했던 은행원이 처음으로 점심을 먹기 전에 집을 나가겠다고 하자 충격을 받고 쓰러져 죽는다. 은행원은 사소한 질서 파괴 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가정이 은행과 마찬가지로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길을 떠난다.

은행원은 경륜장에 가서 경주에 열광하는 관중들에게서 삶의 열정을 발견하고 거액의 상금을 건다. 하지만 황태자가 등장하자 사회적 ‘권력’에 지배당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고 실망해 상금을 취소하고 경기장을 떠난다. 다음으로 은행원은 환락의 무도회장을 찾아간다. 그는 무도회장을 채운 아름다운 가면을 쓴 사람들의 육체적 쾌락에 돈을 내놓는다. 하지만 가면 뒤의 실제 모습이 괴물인 것을 보고 기겁을 한다. 영혼없는 ‘쾌락’의 공허함만 발견한 채 떠난다.

마지막 7장에서 은행원은 한 소녀를 만나 구세군 회관으로 인도된다. 회관을 채운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낭비한 삶에 대한 참회와 고백을 하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은행원의 지난 삶과 동일하다. 은행원은 지난 삶과 돈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고해대에 올라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던져 버린다. 그러자 군중들은 돈을 줍기 위해 아비규환이 되고, 믿었던 소녀마저 현상금 때문에 은행원을 고발한다. 시간은 자정이 되고 ‘종교’의 위선을 깨달은 은행원은 자살한다. 아침의 은행원은 아무 생각없이 맹목적으로 사는 기계같은 물질주의자였다. 하지만 자정의 은행원은 자신을 억압하는 틀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새로운 인간’으로 죽는다. 은행원의 하루는 인간의 일생을 보여준다.

12월에는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끝이 시작이 되고, 죽음이 부활이 되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김용호 영산대 창조문화대학 학장 방송연예학부 연기뮤지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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