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창호 극작가

8세기 말엽, 연회 법사는 영취산 한 암자에서 정진을 거듭했어. 뜰 안의 연못에는 연꽃이 피더니 계절이 바뀌어도 그대로였지. 신라 제38대 원성왕이 그 신이한 이야기를 듣고 연회를 국사로 삼으려 하니 법사는 암자를 떠나 도망을 친 게야.

그가 서쪽 고갯마루의 바위를 넘어갈 때였지. 한 노인이 밭을 갈다가 어딜 가냐고 물었겠다. 법사가 대답했지. 대왕께서 뭘 잘못 들으셨는지, 저를 국사로 임명하려 해서 도망가는 중입니다. 노인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지. 여기서 몸을 팔지, 왜 먼 데서 팔려고 용쓰는가? 스님이야말로 이름 팔기를 좋아하는군요. 연회는 자기를 비꼰다고 여기고는 흘려듣고 몇 리를 더 달아났지.

시냇가에서 한 노파가 어딜 가느냐고 물었어. 연회는 아까와 비슷하게 대답했지. 노파가 되물었어. 아까 누굴 만난 거요? 연회가 대답했지. 한 노인을 만났는데 이유도 없이 업신여기기에 불쾌해서 와버렸습니다. 노파가 말했어. 그 분은 문수보살인데 그 말씀을 흘려들었으니 어쩌지요. 그 말에 연회는 놀랍고도 송구스러워 급히 그 노인에게 되돌아가서 물었지. 성인의 말씀을 감히 거역하곤 염치없이 돌아왔습니다. 근데, 시냇가의 그 노파는 누구이옵니까? 노인이 대답했어. 그는 변재천녀(辯才天女·부처의 법을 노래하는 신령)시다, 하곤 사라지거든.

법사가 암자로 돌아와 조금 있으니 왕의 사자가 왔지. 연회는 진작 받았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임금의 명대로 대궐로 들어갔어. 왕은 그를 국사에 봉했지. 이후 연회 국사가 노인에게 감응 받은 곳을 문수점이라 하고, 여인을 만나본 곳을 아니점이라 했단다.

“여기서 팔지, 왜 멀리서 몸을 팔려는가.” 문수보살의 이 말씀은 중요한 때에 일단 자리를 뜨는 걸로 속마음을 숨기는, 그 자리에서 응하면 출세하려는 마음이 드러날까 봐 숨어서 몸값을 올린 다음 못 이기는 척 나오려는 의도라는 거지. 이왕 할 거면 지금 하지 왔다갔다 시간 끌 필요가 있겠는가. 어진 이는 세상에 알려지기 마련이고, 그 사람이 절에서 연꽃 팔아 신도를 모으나 궁궐에서 이름 팔아 백성의 신망을 얻으나 똑같다는 말이지.

장창호 극작가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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