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태 울산중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울산마두희축제에 대한 논란을 접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난 5년간 행해 온 마두희축제가 예산문제로 논란에 휩싸이면서 축제명을 바꿔야 한다는 보도가 전해진 바 있어서 지역 문화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마두희는 여느 지역의 줄다리기 놀이문화와는 생성된 바탕이 다르다. 여타 지방의 유희적 줄다리기문화와는 달리 울산사람들의 정신문화가 함축된 의식적 놀이문화이다. 울산의 각종 읍지를 봐도 마두희의 기록에 인색한 읍지는 없다. 300여년 동안,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쉼없이 지속된 울산 고을민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축제였음을 알 수 있다. 마두희는 유희적 놀이문화라기 보다는 고을의 의식적(儀式的)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지방의 줄다리기와 구별되는 것은 마두희란 명칭이 말해 준다. 동대산이 고을의 정기를 마다하고 말머리의 형상이 고을을 외면하는 지세라서 고을민들은 늘 고을의 쇠퇴에 염려해 왔다. 이를 인지한 고을 수령들은 당시 민족의 짙은 풍수사상에 편승해 마두희를 통해 고을민들을 안정시키고 고을의 융성을 기원했다. 이 얼마나 애민(愛民)의 정신인가.

이 마두희는 수백년 울산사람들의 정신적지주 역할을 하다가 근대에 들어 일제가 민족의 정신문화 말살정책을 강행하면서 1936년 지금의 시계탑사거리의 마두희를 마지막으로 강제 중단당했다. 당시의 상황을 증언한 선인들의 구술자료를 보면 울산의 마두희가 워낙 규모가 크고 고을의 단합이 융숭해서 일제가 상당한 술책을 가했다고 한다. 범 연례 행사인 고을 축제를 해체시킨 일제에 항거하고 불복을 시도했지만 끝내 마두희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 후 70여년만에 전통민속에 관심을 가진 울산발전연구원이 2011년 마두희연구를 발표했다. 이에 관심을 가진 중구청이 마두희 재연에 열성을 보여 중구의 축제문화로 승화시켰다. 아직까지 완전한 전통적 복원에는 미치지 못하나 민속재연에 관심을 갖고 서둘러 재연해서 지역축제로 매듭을 지은데 대해 시민들은 물론 우리나라 민속학계로부터 상당한 갈채를 받았다.

학계에서는 마두희가 우리나라 줄다리기 가운데 가장 역사성이 짙은 줄다리기로 보고 있다. 다른 지역의 줄다리기가 단편적인 기록에 의존하는 반면 마두희는 그 유래와 놀이과정에 대한 세세한 부문이 전해지고 있다. 기록이 구체적인 것은 그만큼 마두희 비중이 컸다는 증표이다. 마두희는 울산사람들의 기개를 표출한 놀이문화이다. ‘타고난 성품이 굳세어 문화를 일으키고 교화를 쉽게 한다’는 동국여지승람과 읍지의 기록이 마두희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울산사람들은 놀이가 갖는 표현성을 통해 새로운 창조의 희열과 자아의 실현을 획득하면서 집단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마두희를 통해 현실을 음미하고 고을의 운명을 고르게 하려 의례적 요소도 가미했다. 여기에 유희적 표현이 짙어지면서 세시풍속화 되었다. 이를 현대적 풀이로 대비하면 연례행사로 이어졌다는 얘기이다. 마두희라는 기능을 통해 일상의 갈등을 극복하고 단합을 다지며 일의 능률도 발휘했다. 울산의 축제 가운데 대동놀이가 겸유된 축제가 있는가? 마두희가 유일하다. 일시적 관심을 유발시키려는 안이한 행사는 지속성이 약속되지 않는다. 민족의 혼이 밴 전통적 바탕이 있는 축제라야 주목을 받는다.

일반적 축제와는 달리 마두희축제는 그 이름조차 향토성을 지니고 있다. 이 좋은 명칭을 왜 말살하려 하는가? 흔하디 흔한 축제의 범주에 마두희를 희석시켜 전통적 축제를 폄하하려는 것인가? 우리나라 줄다리기의 대표적 축제인 충남 당진의 기지시 줄다리기의 예를 보자. 기지시줄다리기도 마두희처럼 그 유래가 풍수지리와 관계되어 있다. 그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의 명칭인 기지시줄다리기를 고수하고 다른 축제와 차별화하면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축제를 보조하기 위해 줄다리기박물관도 마련하고 세계적 축제로 발돋움하기 위해 해마다 예산을 늘이고 있다. 애써 마련한 소중한 전통적 민속축제를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서라도 마두희는 내내 기려져야 한다.

정상태 울산중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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