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들과 안락한 노후 꿈꿨을 대통령
국정농단 엄중한 책임 면하기 어려워
혈혈단신 고독한 여행이 기다릴듯

▲ 최건 변호사

필자가 대학에 입학하였던 20여 년 전쯤, ‘칼리토의 길’(Calito’s Way·국내 제목 칼리토)이라는 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연출하고 알 파치노, 숀 펜 등 명배우들이 출연하였는데 흥행에도 나름 성공하고 내용도 상당히 충실했다. 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푸에르토리코 계 마약상인 칼리토(알 파치노)는 3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5년 만에 출옥하였는데,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7만5000달러를 벌어 자신의 애인 게일과 함께 아름다운 바하마에 정착하려 하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경찰과 범죄조직으로부터 쫓기다가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상당한 시간이 지난 관계로 영화 속의 모든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의 엔딩 장면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다른 갱스터의 총을 맞고 응급실에 실려 온 칼리토는, 병원 벽에 걸려 있는 남국의 무희가 춤추는 ‘낙원으로의 탈출’(Escape To Paradise)이라는 제목의 포스터를 보면서 의식을 잃어간다. 그러면서 자신이 항상 그리워하던 바하마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자신을 상상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회생하며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정말로.” “이번 여행(죽음을 의미한다)은 당신을 데리고 갈 수 없을 것 같다.” “…힘든 밤이었어, 지쳤어.”라고 하면서 눈을 감는다.

이 영화와 같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바하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경관의 남국(南國)을 떠올리며 각박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은퇴 후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자신을 상상하곤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필자와 같은 범인(凡人) 뿐 아니라 대통령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또 한 명의 국정농단 주역인 장시호는 평소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제주도에서 대통령과 함께 살겠다’는 발언을 주변에 하고 다녔다고 한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른바 최순실 패밀리와 대통령이 혈육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점, 장시호가 제주도 서귀포시에 수천 평의 땅과 빌라 한 동을 보유하고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보면 그녀의 이야기가 전혀 근거 없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 대통령은 퇴임 후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혈육보다 더 아끼던 가까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모든 근심을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사는 자신의 모습을 항상 꿈꾸어 왔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도 이루지 못할 꿈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자신의 혈육을 포기하면서까지 생사고락을 같이 하였던 자들 뿐 아니라 자신을 돕던 비서진들도 영어(囹圄)의 처지가 되었다. 또한 2016년 12월9일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된 이상 대통령은 길게는 6개월 동안 청와대의 관저에 칩거하며 사실상 은둔생활을 하여야만 한다. 게다가 향후 예측되는 일정은 더욱 더 험난해 보인다. 지금까지 밝혀진 범죄사실 등에 비추어 보면 헌법재판소 역시 국회의 결정과 달리 판단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일 뿐 아니라, 설사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기각 결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와 별도로 퇴임 후의 법적 책임은 스스로 감당하여야만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본인이 원했던 ‘질서 있고, 명예로운 퇴진’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다.

즉, 대통령이 향후 떠나게 될 길은 아마도 그 누구도 데리고 갈 수 없는, 고독한 여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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