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기자 사회문화팀

“원인규명 조사를 해서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습니다.” 언뜻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인지 모호한 이 발언은 지난 10월5일 태풍 ‘차바’ 내습 당시 울산혁신도시 건설로 수해가 가중됐다고 주장하는 태화·우정·유곡동 주민들을 상대로 LH가 줄기차게 내세우고 있는 공식 답변이다.

수해 발생 이후 태화우정유곡동 주민들은 수차례 LH를 항의방문해 집회를 열고, 성의있는 답변을 요구했지만 LH는 앵무새처럼 형식적인 대답만을 반복했다. 참다 못한 주민들은 지난달 LH 본사가 있는 진주혁신도시를 찾기도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피해 주민들은 공익성을 지향해야 할 공기업이 이윤 추구에 골몰해 사기업보다 더한 행태를 보이는 점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주민들은 LH를 상대로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지만 거대 공기업을 상대로 힘에 부친 모습이 역력하다.

일각에서는 약자인 주민들을 도울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지만 울산시와 중구청은 “지자체는 협의 대상일 뿐 법적으로 LH를 강제할만한 수단이 없다”는 무기력한 답변만 내놓고 있다. 수차례 열린 간담회에서도 울산시와 중구청은 LH를 압박할 만한 별다른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태도를 봤을 때 LH가 지자체를 하찮게 보는 경향이 짙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무기력한 모습만을 계속 보여준다면 LH의 태도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자체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내년에 울산혁신도시가 준공된다고 해서 LH가 울산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LH는 앞으로 울산에서 중구 장현도시첨단산업단지 조성사업과 다운2지구 조성사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LH가 혁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보여줬던 고압적인 행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LH가 일으켰던 각종 문제들은 다시 불거질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울산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태화우정유곡동 수해 주민들은 오늘도 항의집회를 연다. 내려가는 수은주에 반비례해 참가자들의 고생은 커져 간다. 주민들의 고생이 빨리 끝날 수 있도록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기대해 본다.

이춘봉 기자 사회문화팀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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