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심의는 의회의원들의 중요한 책임
파벌과 정치적 계산으로 좌지우지 안돼
기초의회는 밑바닥 민심 제대로 읽어야

▲ 이재명 사회문화팀장

기초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라 하여 주민들의 여론을 밑바닥까지 수렴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국회나 광역의회가 놓치는 서민들의 민생 현장을 구·군 행정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취지 면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제도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당리당략에 휘둘리고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말단 선거조직으로 선봉에 나선다. 그러다 보니 풀뿌리는 온데 간데 없고 파벌과 당략만 난무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주민들의 대표라는 엄중한 책임의식을 망각하고 주민혈세를 갖고 외유성 해외 나들이를 다녀오는 의회가 많아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울산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최근 내년도 당초예산 심의 과정에서 기초의회의 파벌 양상이 드러났다. 어떤 곳은 의장을 뽑는 과정에서 갈라진 파벌이, 어떤 곳은 기초단체장에 대한 찬반 관계를 둘러싼 파벌이, 어떤 곳은 남쪽과 북쪽 등 지역적 파벌이 만들어져 있다. 파벌들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심각한 갈등을 표출, 특정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등 유례없는 삭감 드라이브를 걸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단적인 예로 중구의회에서는 가장 큰 축제 행사인 마두희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가 예결위에서 부활됐고, 남구에서는 울산의 대표축제라 할 수 있는 고래축제의 주관기관인 고래문화재단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가 가까스로 부활했다. 울주군에서는 5개 지역의 공원조성 관련 예산과 구청장의 핵심사업 예산이 삭감됐다가 마지막에 부활됐다.

예산을 삭감한 의원들은 나름대로 삭감 이유를 그럴듯하게 내세웠으나 삭감 사실이 알려지자 대부분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고, 그러한 여론에 떠밀려 결국은 다시 예결위에서 부활시키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보였다. 마두희의 경우 그 동안 마두희를 발굴하고 전통깊은 축제로 키워왔던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즉각적으로 반발했으며, 고래축제는 장생포 주민들이 구청을 찾아와 시위를 벌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올바른 예산 배정은 한해의 일을 좌지우지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 예산심의는 의회 의원들이 집행부를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해 주민들의 혈세 낭비를 막는 것은 의회 의원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책임이다.

그런데 울산지역 기초의회 의원들의 이같은 예산삭감 드라이브 뒤에는 파벌과 정치적인 계산, 지역 이기주의 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주민들의 피같은 돈을 무기 삼아 상대방을 공격하고 방어하는데 이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몹쓸 짓이다. 밤새도록 일해 번 돈을 세금으로 내주고 의원들에게 서민들을 위해 잘 사용하는지 감시하라고 뽑아주었더니 하는 짓이 고작 그 돈으로 패거리 싸움질이나 하고, 헤게모니 쟁탈전이나 하고 있다면 주민들이 과연 용납하겠는가.

그 동안 기초의회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여러번 나왔다. 모두가 다 이런 폐해가 전국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싸고 거대한 촛불집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이제는 그 누구도 국민 여론의 도도한 물결을 거슬러가지 못한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이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시대는 지났다. 하물며 나라가 그럴진대 기초단체는 어떠하랴. 기초의회는 주민들의 살강 밑 숟가락 갯수까지 읽어내야 제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밑바닥 민심을 읽어야 할 기초의회가 파벌끼리 힘겨루기나 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이제는 기초의회도 주민들을 좀 무서워해야 한다. 촛불민심은 청와대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 사회문화팀장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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