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창호 극작가

백제 무왕 때(7세기 초)의 혜현 법사는 그 어렵다는 법화경을 술술 외웠지. 한날은 수덕사 법당에 온 신도의 신발을 세는 버릇을 알아챘지. 이렇게 신발이 많으니까 복전함이 두둑해진다는 생각에 속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한 게야. 이래선 대중 앞에 설 자격이 없다는 걸, 세 치 혀로 법문 가르칠 자격이 없다는 걸 뉘우쳤어. 이제부터 진정 고요함을 찾아 수행승의 본모습으로 돌아갈 때라는 걸 깨달았지.

법사는 노구를 이끌고 속리산을 떠나 달라산(월출산)으로 갔지. 굴에 들어앉아 끝없이 법화경을 읊으며 정진했어. 한날은 범의 울음소리가 들렸겠다. 승려들이 내려오라 해도 법사는 끄떡도 않거든. 범이 굴 앞을 어슬렁거렸어. 법사가 말했지. 범아, 배가 고파 못 살겠으면 지금 나를 먹고, 피 냄새 맡으려고 잠시 왔다면 돌아가거라. 난 할 일이 있으니 담에 오너라. 내 죽을 때쯤 와서 잡아먹되 미처 전하지 못한 법문은 계속해야 하니 ‘그건’ 남겨두고 먹어라. 하니 범이 순순히 물러가거든. 홀로 앉아 잡념을 끊으니 비로소 삶이 보여. 시간은 그걸 생각하는 순간에도 지나가. 하나에 몰입해도 사는 건 잠깐이고. 그러니 그 잠깐을 영원으로 만들어야지. 나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이것이 뭐냐, 질문하며 법사는 굴을 떠나지 않았지.

며칠 뒤에 승려들이 데리러 오니 법사가 말했어. 범이 알아듣고 갔으니 다시 올 게야. 늦게 오더라도 내 주검을 그대로 둬라. 그리고 법사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음송하기 시작했어. 거룩한 모습 두루 갖추신 세존이시여. 여쭈오니, 그 어떠한 인연으로 관세음보살이라 부르십니까. 마침내 법사가 입적하니 승려들은 주검을 놓아두고 갔지. 예상대로 범이 와선 그 시신을 먹고 갔지, 해골과 ‘혀’를 남겨두고. 꽃이 피고 지길 세 해. 찬바람 부는 데에 붉은 혀만 남아 있거든. 혀는 더 붉고 더 연해졌지. 그 후엔 변해서 딱딱해지니 승려들이 혜현의 혀를 석탑 안에 사리처럼 모셨단다. 세상에나! 죽어서 배고픈 짐승의 먹이가 된 다음에도 그 부드러운 혀로 남아 사람들의 가슴을 데울 수 있다니.

장창호 극작가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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