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북창비결(北窓秘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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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창이 지은 북창비결(北窓秘訣)은 도교 내단수련법(內丹修鍊法)에 대한 입문서로 역사적으로 보면 정신수련에 관한 저작들이 희소한 만큼 그 위상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정렴(鄭磏, 1506~1549)은 조선 중종, 명종 때의 문인으로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사결(士潔), 호는 북창(北窓)이다. 충남 온양(아산) 태생으로 조선시대 선인(仙人), 이인(異人), 도인(道人)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민간인으로부터 조정(朝廷)에 이르기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용호대사(龍虎大師)로도 불리어지는 북창은 조선시대 도가(道家) 내단(內丹)사상, 즉 단학(丹學)의 중시조(中始祖, 쇠퇴한 집안을 다시 일으킨 조상) 또는 비조(鼻祖, 어떤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로 평가 되고 있으며 토정 이지함, 매월당 김시습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奇人)중 한 사람이다.

북창은 생이능언(生而能言, 태어나면서 말을 할 줄 아는 능력)과 생이지지(生而知之,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쳐서 모든 것을 알다)하며 영적(靈的)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무불통지(無不通知)한 대학자였다.

북창은 깨달음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행동은 노자와 견줄만 했으며,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표본으로 삼았다.

학문·그림·음악에 조예가 깊어 ‘조선의 3대 기인’으로 꼽혀
부친이 주도한 사화 막지못했고 인종의 승하에 대한 비애로
관직 포기하고 산중에 들어 44세의 나이로 앉은자세로 입적
폐기·현빈일규·태식 등 신선수련법 정수만을 설명으로 남겨

선천적으로 학문능력이 탁월해 스물이 되기 전에 천문, 지리, 의약(醫藥), 복서(卜筮), 한어(漢語), 유·불·선(儒·佛·仙), 율려(律呂), 산수(算數), 외국어 등을 두루 통달했다.

저서로는 선가(仙家)에서는 필독서인 북창비결과 예언서인 궁을가(弓乙歌) 외에도 북창집(北窓集), 동원진주낭(東垣珍珠囊), 유씨맥결(劉氏脈訣) 등이 있다.

▲ 북창이 지은 북창비결(北窓秘訣)은 도교 내단수련법(內丹修鍊法)에 대한 입문서로 역사적으로 보면 정신수련에 관한 저작들이 희소한 만큼 그 위상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북창은 신(神)과 통했다고 하며 산사(山寺)에서 선가(仙家, 도교)의 육통법(六通法)을 익히기 위해 3일간 정관(靜觀)을 하고 난 뒤에는 배우지 않고도 저절로 통하였으며 천리 밖의 일도 생각만 일으키면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과거시험에 관심이 없었던 북창은 부모의 강압적 권유로 사마시(司馬試, 조선시대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를 통과해 관직에 진출했다. 중종 때는 조정에서 등용하는 인재로 발탁되어 장악원(掌樂院,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관청) 주부(主簿, 조선시대 종육품 벼슬), 관상감(觀象監, 조선시대 천문(天文), 지리(地理), 역수(曆數), 측후(測候), 각루(刻漏) 등의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과 혜민서(惠民署, 조선시대 궁중에서 일반 서민의 치료를 담당하던 관청)의 교수(敎授)를 역임하였으며 후에 포천현감을 마지막으로 벼슬과 세상을 등지고 스스로 은일군자(隱逸君子)가 되었다.

관직을 그만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부친과의 갈등 즉 부친인 정순붕이 을사사화를 일으키려하자 만류하였지만 소용없었던 일. 두 번째는 인종(仁宗)의 이른 승하(昇遐,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높임 말)이다. 성군(聖君)으로 칭송되었으며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난 인종은 세자시절부터 공부방 병풍 위에 영의정 피장(皮匠, 白丁), 좌의정 서경덕, 우의정 정북창이라고 써놓을 정도로 그를 높이 인지(認知)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북창은 부친이 주도한 사화를 막지 못했다는 고뇌와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던 인종의 승하에 대한 비애감으로 관직을 포기하고 산중으로 들어가 하루에 천 잔의 술을 마시며 스스로 촉수(促壽)해 44세라는 나이에 좌화(坐化, 앉은 채로 입적함)했다.

북창이 지은 북창비결(北窓秘訣)은 도교 내단수련법(內丹修鍊法)에 대한 입문서로 역사적으로 보면 정신수련에 관한 저작들이 희소한 만큼 그 위상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정렴의 호를 붙여 북창비결이라고 하였으며 용호비결(龍虎秘訣), 단기요결(短氣要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판각본이나 단행활자본의 출판은 없고 <북창비결>, <북창결>, <용호결> 등과 같이 필사본으로 세간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

근대에 들어서서 구한말의 석학이었던 무능거사(無能居士)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라는 책속에 수련사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북창은 북창비결에서 내단수련법을 이해하기 쉽게 그 요점만을 서술해 초학자라도 실행이 가능한 특징이 있다고 알리고 있다.

용호(龍 물, 虎 불)란 호흡수련의 이치를 상징하는 수화상생(水火相生)의 의미를 담고 있다.

호흡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으로 내용이 간단하면서도 수도(修道)의 본질과 요체를 보여주므로 민간에 널리 전승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의 장점은 조식수행(調息修行)을 통해 도(道)에 이르는 과정을 매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지도무난(至道無難,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다.)을 저절로 떠올리게끔 하는 책이다.

신선(神仙)이 되기까지 과정이 불과 다섯 장도 채 안되지만 금과옥조(金科玉條,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규칙이나 교훈)로만 구성되어 있다.

먼저 폐기(閉氣, 기운을 닫는다는 뜻으로 숨을 멈추지 않고 기운이 단전에 머물게 하는 것)로 시작해 태식(胎息, 코와 입이 아닌 모공으로 이루어지는 호흡)이 능해지고 주천화후(周天火候, 단전의 기운이 저절로 움직여 전신을 훈훈히 맴도는 것)가 일어난다는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되어지고 있다.

조식수행을 ‘폐기’라는 한 마디로 함축하고 현빈일규(玄牝一窺, 氣가 충만해 구멍이 열리는 징후)를 이루어 ‘태식’에 능해지고 대주천을 완성해 주천화후가 일어나고 결태(結胎, 단전에서 이루어지는 선천의 기운 즉 지극히 높은 수준의 觀이 이루어져 참다운 자신을 깨닫게 되는 것)를 이루기까지 폐기에서 시작해 폐기로 끝맺음을 강조하고 있다.

단학(丹學)과 관련된 서적이 너무 많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서두에 폐기가 조식수행의 핵심임을 소개한다. 그리고 폐기, 현빈일규, 태식, 주천화후, 결태라는 신선수련법에 대해 정수(精髓, 사물의 가장 중심이 되는 알짜)만을 차례로 설명하면서 ‘비록 하늘을 나는 술법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으니 오직 배우는 이의 정성에 달려 있을 뿐 이다’라는 글로 끝을 맺고 있다.

한편 무병장수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교 수련서인 <북창비결>의 저자인 본인은 44세의 짧은 수명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 김진 명리학회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이 것은 물론 은둔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촉수(促壽)하였던 것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먼저 북창은 자신의 수명이 80세임을 알고 있었지만 과거를 준비하던 한 친구의 딱한 사정을 뿌리칠 수가 없어 30년을 넘겨주었으며 또 한 번은 다른 친구의 부친이 찾아와 죽어가는 3대독자인 자식의 목숨을 간청하는 바람에 다시 10년을 옮겨주었던 것으로 두 친구를 위해 대명요사(代命夭死, 남의 목숨 대신 죽는 것)를 했다.

또한 그가 좌화(坐化, 앉은 채로 입적함)하던 날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는 백일비승(白日飛昇, 도를 극진히 닦아 육신을 가진 채로 신선이 되어 대낮에 하늘로 올라감)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북창은 그의 탁월한 천재성과 저서로도 주목받아야 하겠지만 어진 마음과 일생 청렴한 처세 그리고 인명(人命)에 대한 진정한 희생정신은 더욱 주목받아야 할 사항들이라 할 수 있다.

김진 명리학회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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