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사태 등 탄핵정국
한국인의 저력으로 슬기롭게 극복
지금의 위기상황을 기회로 바꿔야

▲ 이근용 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늘 접하는 주변의 모습은 웬만큼 크게 변하지 않으면 그 변화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한동안 가보지 않던 곳을 오랜만에 가보면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늘 접하는 사람은 그 변화를 알기 어려운데,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은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고 변한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뿐이지 우리 주변은 항상 변하고 있다.

사회 변화를 주도하거나 변화에 민감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주변의 변화를 크게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하면서도 우리가 지구를 달구며 살아가는 방식은 그리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력이 또한 뛰어나기에 무의식적으로, 사는 방식과 생각을 조금씩 바꿔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요동치면서 변하는 것이 아니면, 웬만한 변화에는 익숙하게 적응하면서 산다.

환경이 변한 만큼 적응해서 사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사람들은 변화에 둔감해지기도 한다. 늘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변화의 폭이 용인하고 감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면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감정의 폭발, 분노를 일으키거나 정신적 파탄, 멘붕을 맞기도 한다. 이러한 심리적 반응은 부수되는 행동을 낳고, 태도와 신념의 변화를 야기하는 단초가 된다.

올해 하반기에는 9월 중순에 있었던 경주 지진 발생 후, 온 나라가 한동안 지진에 대한 경각심으로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모금 문제부터 시작해, 대통령 연설문 작성 관여, 주요 공직자 인사 개입으로 확대되다가 급기야 총체적 국정농단 사태에까지 이르는 최순실 게이트와 이를 규탄하는 촛불시위,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지진 발생으로 인한 원전 붕괴의 위험이나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농단 사태 모두 우리에게 큰 변화를 요구하는 동인들이다. 우리에게 삶의 방식이나 태도,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중차대한 사태들이다. 이들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정도의 문제로, 누구는 이 역시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지는 정도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요즘 ‘끓는 물속의 개구리’ 비유가 자주 등장한다. 뜨거운 물속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견디지 못하고 바로 뛰쳐나온다. 그러나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 물속의 개구리는 서서히 온도에 적응하다가 결국 끓는 물속에서 죽어간다. 여진이 계속 이어지고 진도 3.0 내외의 지진이 단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나, 최순실 게이트에 고위층이 연루된 정황이 계속 드러나는 데도 모르쇠로 버티고 봉합하려는 것은 물속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과 흡사해 보인다.

한 해가 바뀌는 시점이니 뭔가 덕담이라도 해야 할 텐데 돌아가는 정황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2006년 자크 아탈리가 쓴 <미래의 물결>에는, ‘한국의 1인당 총생산은 지금부터 2025년까지 2배로 증가할 것이다. 한국은 경제, 문화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을 것이며, 한국의 기술력과 문화적 역동성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한국적 모델은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성공적인 모델로서 점점 더 각광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측하는 구절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한국이 이 같은 성공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재앙 시나리오를 슬기롭게 피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개의 시나리오란, 하나는 북한의 갑작스러운 체제 붕괴로 말미암아 예상보다 통일이 앞당겨짐으로써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할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체제가 붕괴에 앞서 최후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통한 무력 전쟁을 도발할 경우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아탈리의 예측과 단서가 거의 맞아떨어질 것 같이 느껴지고 그래서 갈 길이 바쁜 시점에,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맞은 국면으로 읽힌다.

어떻게 이 국면을 타개할 것인가. 개구리의 비유로 다시 돌아가 보면, 뛰쳐나온 개구리가 물을 계속 끓게 하고 급기야 모두 수증기로 변하게 해서 판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성숙한 시위문화를 보여주는 시민들처럼, 헌재 재판관, 국회의원, 특검팀, 공직자, 사회지도층이 위기상황을 기회의 국면으로 바꾸는 데 앞장서주기 바란다. 물을 계속 끓이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다.

이근용 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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