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 동시에 쪼아 껍질을 깨는 닭처럼
새해에는 모두들 한마음으로 노력해
보다 밝고 희망찬 한해를 만들었으면

▲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

새 해가 밝고 있다. 정유년이다. 정유년(丁酉年)의 丁은 하늘의 운세를 드러내는 글자이고, 정유년의 유(酉)는 땅의 운세를 보이는 글자이다. 이것이 천간과 지지이다. 열 번째 지지인 酉는 닭띠이다. 이 酉는 술동이 모양에서 취했다. 이것이 어찌 닭이 되었는 지는 아무도 모르겠으나 새 해는 닭의 해다.

닭은 삼국유사에도 나온다. 그 속에 닭과 관련된 설화가 발천(撥川)과 계림(鷄林)이다. 둘 다 지명인데 발천은 알영이 목욕한 냇물이고, 계림은 김알지가 탄생한 숲의 이름이다. 지금부터 2천년 전 경주의 발천에서 알영 공주가 거듭났다. 경주는 당시의 수도였고 나라 이름은 진한이었다. 이 진한이 계림으로 바뀌어 불리기도 했다. 신령스런 닭이 운 숲이라 하여 계림이라 한 것이다. 이 계림이 다시 신라로 바뀌고 찬란한 천년의 문화를 이룩했다. 울산도 그 주변국 우시산국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많은 가축 중에 우리와 친숙한 닭은 무엇보다 신의(信義)가 있는 동물이다. 매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꼬오끼요” 하고 시간을 알린다. 어느 한 마리가 울면 온 마을의 닭들이 이어 운다. 농삿일이 주업이던 우리 선조들은 닭소리에 일어나고, 별빛을 보고 집에 들었다. 닭은 문덕(文德)도 지녔다고 한다. 닭의 머리에 장식된 볏 때문이다. 아름다운 닭의 볏은 고관의 벼슬처럼 위세가 높다. 닭은 심성(仁)이 또한 어질다. 먹이가 생기면 혼자 먹지 않는다. 반드시 꼬꼬꼬 하며 주변의 동료들을 부른다. 이것이 화(和)의 정신이다. 닭은 또 무(武)의 정신도 지녔다. 발에 달린 발톱이 과(戈)를 연상시킨다. 거기다가 닭은 용감(勇)하다. 고개를 들고 적을 대항하는 투견의 모습이 용장에 비견된다. 그러고 보면 닭은 신(信), 문(文), 인(仁), 무(武), 용(勇)의 오덕을 갖춘 동물이다.

이런 酉가 지지에 든 올해는 왠지 좀 더 밝을 것 같고, 형편도 좋아질 것같은 느낌이 든다. 정유년을 맞는 새 해의 간절한 바람이다. 어쩌면 그런 기대는 오늘의 현실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도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이다.

옛날 우리집 닭둥지에 알을 품고 있던 어미닭 생각이 난다. 아래채 모퉁이에 자리한 닭집은 봄이 되면 알을 품고, 노란 새끼 병아리를 까곤 했다. 얼마나 귀여웠던지. 20일 가량 품으면 알에서 부화된다. 대개 십여 마리가 한꺼번에 태어나 함께 다니곤 했다. 그러면 참깨 등의 먹이를 뿌려 주었다. 그러면 종종 걸음으로 와서 쪼아 먹는 모습이라니. 참으로 귀여웠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 했던가. 식음을 전폐하고 알을 품던 어미 닭이다. 그러고도 20여일, 드디어 어미닭이 품던 알을 쪼으면 속에 갇혔던 병아리가 꼼지락 거리고 세상으로 나온다. 그 병아리도 알 속에서 어미닭의 쪼으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쪼았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려면 이처럼 안과 밖에서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줄탁동시다.

세상에 일방적인 것은 없다. 함께 해야 한다. 선생과 제자 사이도 그렇다. 선생만 애써도 안 되고 제자 홀로 노력해도 힘들다. 함께 노력해야 좋은 논문도 나오고, 새로운 학자도 키워진다. 고을의 살림살이도 그렇다. 시장 혼자만 뛰어도 안 된다. 온 시민이 함께 해야 한다. 나라도 그렇다. 정치도 그러하리라. 같은 목표를 두고 같은 공감대로 노력하면 불가능은 없다. 이것이 진인사(盡人事)다. 그런 뒤에 대천명(待天命)해야 한다.

새해를 맞으며 우리 모두 하늘의 큰 덕을 믿자. 또 닭의 오덕도 닮아 보자. 그러고도 잘못이 생기면, 이는 하늘의 몫이다. 하늘이 하는 일을 우리 인간들이 어쩌겠는가.

김경수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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