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송하비결(松下秘訣)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송하노인이 지은 <송하비결> 필사본 표지. 김성욱씨 소장본

송하비결은 소나무 아래에서 쓴 비결서(앞날의 길흉화복을 얼른 보아서는 그 내용을 알 수 없도록 적어놓은 책)란 뜻으로 조선 헌종 때 김씨 성을 가진 송하옹(松下翁, 1845~?)이라는 도인이 조선조 말부터 2015년까지 120년간을 2800여자의 사자성어(四字成語)형태로 국운을 기술한 참서(讖書,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을 적은 책)이다.

송하옹은 집안이 멸문지화(滅門之禍, 한 집안이 멸망하여 없어지는 재앙)를 당하여 평생 은거(隱居)하면서 천문, 지리, 주역을 탐구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 책의 원본 중 한 부를 동학도였던 이석(1900~?,김세옹의 모친)이 보유하고 있다가 김세옹(金世翁 1919~1996년)에게 전했으며 김세옹은 한국 전쟁 중 북한에서 월남할 때 가져왔으며 분실된 나머지 부분은 암송과 필사를 통하여 그의 아들인 김성욱 씨에게 전해졌다.

이 후에 책 내용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0년 12월 김성욱 씨의 저술 <소강절의 매화역수>(도서출판 신지평)란 책의 부록 란에 집안에서 물려받은 송하돈비결의 내용 중 2001년에서 2010년까지를 뽑아 매년마다의 운세풀이를 해 놓았는데 그 중 2001년에 미국의 9·11테러를 예언한 것을 시작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김성욱씨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비결서로
2000년 자신의 저술서에 실어 세상에 첫 공개
2001년 9·11테러 예언 시작으로 세간에 화제
2003년 황병덕 박사 공저로 해석서 정식 출간
초기 적중률 좋았으나 2004년 후반부터 빗나가

당시 인터넷을 통해 예언서의 내용을 확인한 황병덕 박사(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는 김성욱씨(강원도 거주)를 찾아가 2800여자의 송하돈비결의 전문을 함께 해석하자고 권유하여 마침내 2003년 5월 공저(황병덕, 김성욱)로 해석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 황병덕 박사(오른쪽)가 펴낸 송하노인 해석서 <송하비결>.

책의 구성은 약 40%정도가 조선말부터 1999년까지 내용을 기술하고 있으며 나머지 60%는 2000년 이후 즉 2000~2015년 까지 15년 동안의 상황을 집중적으로 싣고 있다.

이 것은 저자인 송하옹이 2000년 이후에 펼쳐질 한반도의 변화무쌍(變化無雙)한 미래를 예견하고 국란을 지혜롭게 대처하길 원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2000년 송하비결 예언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2001년 9.11테러의 언급과 함께 한일 월드컵, 노무현 대통령 당선, 탄핵정국 등 초기엔 많은 적중률을 보였다. 하지만 2004년 후반기를 지나면서 예언 내용은 모두 빗나갔다. 한반도 전쟁, 미국대통령 저격, 괴질로 인한 많은 사람들의 살상, 2007년 대선 등 여러 예언들이 맞질 않았다.

모든 예언서가 그러하듯 신뢰성이 무너지면 책의 수명은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도 있다.

유전(遺傳)되고 있는 비결서는 해석자에 따라 내용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

▲ 황병덕 박사

예언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어 놓고 밝히는 글이 아니다. 오직 후세에 인연 있는 사람만이 그 뜻을 알라고 전하는 글이라고 한다.

그래서 해석에 따라 자칫 식자우환(識字憂患, 아는 것이 도리어 근심이 된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예언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예지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생성되는 것처럼 그 이면(裏面)에는 사회적 혼란과 고단한 현실에 대한 민중들의 불안심리를 바탕으로 생성되는 것이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희망적인 세상의 도래에 대한 기대심리가 더 간절해지는 것이 사람들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민중 속에 알려진 대표적인 한국도참서(韓國圖讖書)를 보면 정감록을 비롯하여 원효결서, 격암유록, 용담유사, 송하비결 등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 정감록, 격암유록과 함께 송하비결은 조선중기 이후의 3대 예언서로 지목되고 있다.

이들 책의 주된 내용은 정감이란 인물과 이심. 이연이란 인물의 대화록을 담은 ‘감결’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조 이씨왕조가 망하고 새로운 정씨 왕조가 건국된다는 것과 외적의 침입 등 환란이 발생하는 때와 그 때에 전란을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는 피난처인 십승지(十勝地)를 열거하고 있다.

물론 송하비결에서도 예언과 더불어 십승지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송하비결의 해석서를 저술한 황박사는 다른 예언서들과 더불어 연구한 끝에 얻은 결론이 십승지는 지리적 개념을 넘어 고도의 상징개념으로 이해되며 십승지로 가라는 것은 결국 한반도 주변 4강을 연결한 십자선 위에 위치하라는 뜻으로 4강 균형 외교만이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처럼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예언서가 생기는 배경을 보면 예언의 주된 담당계층은 일부 지배세력에서 피지배층으로 확산되어 혼란기에 민중 지식인들이 국가권력을 상대로 정치·사회적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도참을 담고 있는 이러한 비결서의 공통점은 국가가 성립된 이후 조정(朝廷)에서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예언은 국가가 통제력을 상실한 혼란기에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회세력들이 저항하는 무기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보면 라말여초(羅末麗初, 신라말 고려초)에는 계림황엽 곡령청송(鷄林黃葉 鵠嶺靑松, 신라는 누런 잎이고 개성은 푸른 솔이다.)와 려말선초(麗末鮮初, 고려말 조선초)에는 목자득국(木子得國, 이씨가 나라를 얻는다.)이라는 예언이 떠돌았다. 조선조(朝鮮朝) 정감록에서는 병자호란 이후 오랑캐를 몰아내어야 한다는 북벌론의 대세에 힘을 불어넣는 예언 등이 등장하고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민심이 흉흉하고 사회가 어수선할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예언서를 통하여 새로운 희망에 의지하려는 심리는 증폭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예언서를 맹목적으로 믿고 추종하며 기대하는 심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 김진 김진명리학회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따라서 예언서는 미래에 대하여 새로운 희망을 주고 민중들로 하여금 상황을 미리 대처하도록 한다면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심리와 불안심리를 역(易)이용하여 사회혼란을 더욱 조장(助長)하는 무리 또는 사람이 있다면 이 것은 분명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각종 예언서들을 신비주의로 치장하고 숨겨진 답을 자의적으로 해석, 혹세무민(惑世誣民)하여 정치적, 종교적 혹은 돈벌이 수단 등으로 이용하는 경우는 차단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있는 여러 예언서 내용 중에서 몇 개는 맞고 몇 개는 틀렸다 라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예언서들이 생겨나고 퍼지는 사회적 배경 그리고 민중들의 분출심리와 방향 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송하비결의 내용이나 해석에 연연하기보다도 먼저 우리의 사고와 시각을 달리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 여기며 이와 더불어 사회전반에 걸쳐 불안을 달래고 민중들의 마음에 위안과 격려 그리고 희망이 될 수 있는 서적이 어떠한 예언서보다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김진 김진명리학회장 울산대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