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현석 남울산보람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10여년전 이맘때 필자가 대학생이던 시절의 일이다. 친구들과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과자봉지를 펼쳐놓고 맥주를 즐기고 돌아왔는데 그날 밤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점점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가 충수돌기염 수술을 받게 됐다. 수술 후 간호사에게 원활한 회복을 위해 가벼운 운동을 하라는 안내를 받았는데 그 때 ‘가만히 누워 있어도 아픈데 어떻게 운동을 하라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되고 보니 그 때 무작정 참지 말고 무통주사를 맞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통증은 조직 손상이나 이에 의한 통각수용체의 활성화에 의해 나타나는 불쾌한 감각을 말하는데, 신체의 이상 상태에 대한 경고의 기능을 하는 중요한 방어기전의 일종이다. 우리가 뜨거운 냄비를 만졌을 때 느끼는 통증은 반사적으로 더 큰 손상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뼈에 금이 간 환자가 느끼는 통증 또한 움직임을 제한시켜 더 큰 골절을 방지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어적 역할 외의 통증은 오히려 인체에 생리적, 정서적으로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수술적 자극으로 인한 조직 손상에 의해 발생한 통증은 비단 그 인내의 불편함을 떠나 인체에 여러 생리학적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수술 후 통증 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돼 심근산소소모량을 증가시켜 심근허혈과 심근경색을 일으킬 수 있다.

또 환자가 통증 때문에 호흡과 기침을 할 수 없으면 수술 후 무기폐나 폐렴 등의 폐합병증 발생빈도가 높아지며, 위장관 운동의 회복을 지연시켜 마비성 장폐색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수술 후 통증을 조절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무통주사이다. 무통주사는 정맥이나 경막외강으로 진통제를 지속 또는 간헐적으로 투여하는 방법으로 통증자가조절장치를 통해 일정속도로 진통제를 투여하되 통증이 있을 때마다 환자 스스로 버튼을 눌러 추가 용량의 진통제를 투여할 수 있기 때문에 통증자가조절법(patient controlled analgesia)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때 약물의 과도한 투여를 방지하기 위해 추가 용량은 일정시간 간격으로 일정양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마취 없이 수술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났다해서 환자가 아직 회복 된 것은 아니다. 회복기의 환자에게 통증 조절은 수술시 마취만큼 중요하다. 통증 조절은 단순히 환자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술후 합병증 감소와 빠른 회복을 위해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평생 수술 한번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행운일 것이다. 하지만 무통주사와 함께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자. 이제 무통주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양현석 남울산보람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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