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헌, 배우의 품격

상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진행하는 사람도,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까지 모두 어색한 자리였다.

27일 오후 열린 제53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 이야기다. 시상식의 주인공들이 상당수 불참하면서 “상을 잘 전달하겠다”는 대리 수상자들의 소감 아닌 소감이 이어졌다.

배우들은 촬영 일정 등을 불참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여러 논란에 휩싸인 대종상 참석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많다.

그나마 영화제의 체면을 세워준 배우는 이병헌이었다. ‘내부자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무대 위에 서서 대종상의 안타까운 현실을 언급한 뒤 “변화라는 것은 모두가 한마음이 돼 조금씩 고민하고 노력하는 순간에 시작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언젠가 후배들이 제가 20년 전 대종상 시상식에 오면서 느꼈던 설레고 영광스러운 마음을 갖고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종상 측은 이병헌의 시상식 참석에 대해 “이병헌이 한국영화계와 대종상의 발전을 위해 대승적으로 결단했다”고 밝혔다.
 
이병헌은 올해 ‘내부자들’로 각종 상을 모두 휩쓸었다.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자연기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등 수상 목록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병헌은 1991년 KBS 14기 탤런트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드라마 ‘해피투게더’(1999), ‘아름다운 날들’(2001), ‘올인’(2003), ‘아이리스’(2009),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번지점프를 하다’(2001), ‘달콤한 인생’(2005) 등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가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톱스타로서 명성을 재확인했다.

이병헌은 자신의 인생 영화로 2005년에 출연한 ‘달콤한 인생’(2005)을 꼽는다. 이 작품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을 계기로 미국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병헌은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 대화때 ‘인생에서 가장 떨렸던 순간’으로 할리우드 진출작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2009)에 캐스팅된 뒤 첫 대본 리딩을 할 때를 떠올렸다.

이병헌은 “당시 대본리딩 때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힘들 만큼 긴장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이병헌은 이후 ‘악마를 보았다’(2010), ‘지.아이.조 2’(2013) 등에 출연했고 지난해 ‘내부자들’에서 안상구 역을 맡아 인생연기를 펼쳤다.

이병헌과 함께 작업해본 감독과 배우들은 그가 얼마나 ‘지독하게’ 연기에 매달리는지 잘 안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은 “이병헌이 현장에서 보여준 영화에 대한 열정과 무시무시한 집중력은 매 순간 나에게 감동을 줬고, 소름 끼치게 했다”고 말했다.

‘마스터’의 조의석 감독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병헌은 촬영 때 자신의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 스타일”이라고 했고, 김우빈은 “(이병헌의) 열정이 신인배우보다 강해 모든 컷을 꼼꼼히 모니터하고 ’오케이‘사인이 나더라도 몇 번을 다시 찍었다”고 떠올렸다.

이런 그의 열정은 어떤 역할이든 대체 불가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로 거듭나게 했다. 배우로서 존재감이 확고해질수록 그의 말과 행동의 무게감도 커졌다. 이병헌은 최근 공식 석상에서 다양한 발언으로 화제를 낳았다.

이병헌은 지난달 청룡상 남우주연상 수상 때 “’내부자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영화가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지금은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겨버렸다”고 일침을 가했다.

전날 대종상에서도 ‘작은 노력이 변화를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해 박수를 받았다. 이병헌의 수상 소감을 지켜본 뒤 시상자로 오른 선배 연기자 김보연은 “이병헌이 옛날에는 까칠했는데 겸손해졌다. 이병헌을 볼 때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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