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농단은 잘못된 주권행사 실례
자신의 소중한 돈을 빌려줄때 보다
더 철저하고 엄격한 검증과 고민을

▲ 김진규 법무법인 재유 울산대표변호사 변리사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주변의 잘 아는 사람이 급히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잠시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돈을 빌려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마음은 대개가 친구나 친척의 금전적 어려움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으면서 빌려주고 싶지만, 지금이나 미래의 자신의 처지가 걱정되어 빌려줄 수 없는 경우일 것이다.

필자는 십중팔구는 빌려 주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돈을 빌리는 사람은 우선 은행이나 마을금고 등의 제1, 제2 금융권이나 부모형제를 거친 후에도 돈을 빌리지 못해서 친구를 찾기 십상이고, 물적·인적 담보도 없는 것이 통상이기 때문이다. 돈 잃고 사람 잃는다,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도 못 받는다는 등의 이야기 및 지인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충분히 들어주면서 밥 한 끼 사주고, 용돈이나 차비주고 말아라라고 한다. 그럼에도 정 빌려 주고 싶으면 떼여도 되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빌려 줄 수 있을 때만 빌려 주라는 등의 조언을 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하는 말이나 변호사가 해주는 말이나 차이가 거의 없다.

선거철이 되면 여러 명의 입후보자들이 자신에게 한 표를 꼭 찍어 달라고 한다. 돈을 빌려 달라고 할 때와 같이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믿어 달라고 한다. 이렇듯 돈을 빌려주는 것과 후보자들에게 한 표를 찍어 주는 것은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자기의 소중한 것을 남을 믿으면서 준다는 점, 한번 주고 나면 쉽게 돌려받지 못한다는 점, 빌려간 사람이 마치 자기 것인양 착각하면서 함부로 쓴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장실 가기 전과 갔다 온 후의 마음처럼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많이 닮아 있다. 그리고 돈을 빌려 가는 사람이나 입후보자들의 약속이나 공약이 거짓일 가능성이 많아서 사기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돈을 잘못 빌려 준 경우에 결국 돈을 다시 돌려받으면 어느 정도 피해는 해결이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인간적 배신감,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파탄에 따른 이혼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점, 토끼 같은 자식들이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기도 한다는 점, 자신이 평생을 일궈온 사업의 부도 등의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뒤따르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특이성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흔히 법조계에서는 사기죄에 대한 피해는 강도죄보다 심각하다고 말한다.

금전문제에서는 사용처에 대한 거짓말이나 자신의 변제의사나 재산의 정도 등에 관한 거짓말을 이유로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하거나 민사상의 대여금 반환 청구 등의 법적절차가 따르지만, 잘못된 정치인에게 민·형사적 법적 책임을 묻기는 만만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앞에서 보듯이 돈을 빌려 줄 것인지에 대해 필자에게 물어본다면 웬만하면 빌려주지 말라고 할 것이지만, 투표를 할 것인지를 물어 본다면 그것은 국민주권 행사의 한 방법이므로 아무리 바쁘더라도 꼭 투표를 하라고 권유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즉, 돈을 빌려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측면이 있지만 투표를 하는 것은 의무적인 성격도 있다.

우리 국민들은 현재 국정농단이라는 시국에서 잘못된 투표권의 행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지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해 당하는 고통과 아마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권자로서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투표를 할 때도 채무자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인에 대한 검증과 신뢰가 필수적이다.

돈을 빌려 줄 때는 나를 속이는 것은 그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처지이기도 하므로 저당권 등의 물적 담보나 연대보증 등의 인적 담보라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선거에서 나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는 잘못된 권한을 돌려받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돈을 빌려 줄 때보다도 더 철저하고 엄격한 검증과 고민이 필요하다.

김진규 법무법인 재유 울산대표변호사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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