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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기획특집성곽도시 울산을 말하다
[성곽도시 울산을 말하다]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말을 보호하는 울타리 성격 강해(27)남목마성 제4편- 호랑이(虎)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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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8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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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목이 제작한 <방어진목장지도(1678)>의 일부분.

남목마성(방어진목장, 울산목장)은 일제강점기의 지형도에 미미하게 남아있는 흔적을 바탕으로 현황을 실측해 보면, 그 전체 길이가 약 5km에 달하며, <목장지도(1678)>에서 지금의 방어동 및 화정동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그려진 마성 내부의 목책은 2.4㎞로 정도이다. 또한 조선전기 방어진목장인 구마성의 경우는 약 6.7km이다.

그리고 축조시기와 관련하여 <해동제국기(1471)>에 그려져 있는 구마성(舊馬城, 옛 마성)은 <경상도속찬지리지(1469)>의 기록에도 보이므로 1469년 이전에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고, 신마성(新馬城)은 <학성지(1749)>의 기록을 통해 볼 때, 1651년에 축조된 것으로 사료된다. 즉 조선후기에는 임진왜란 등의 전란을 겪으며 이미 황폐화되었던 구마성을 대신하여 염포삼거리와 미포만 사이를 가로지르는 신마성(현재의 남목마성)을 새롭게 축조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남목마성은 고종34년(1897)에 폐지되었다.

조선시대 전국의 목장, 호환 피해 심해 대비책 철저
산행장·포수·창군 등 사냥부대 만들어 호랑이 잡아
외적 막기위해 쌓은 여타의 성곽들과 축조성격 달라
골짜기 구간에 비해 능선구간을 보다 튼튼하게 쌓아


한편, 남목마성은 그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다양한 하부구조의 직책이 있었다. 고종8년(1871)에 간행된 <울산목장목지(蔚山牧場牧誌)>와 고종32년(1895)의 <울산장기양목장목지여사례책(蔚山長鬐兩牧場牧誌與事例冊)>을 통하여 살펴보면, ‘성지도감(城池都監) 2인, 병방군관(兵房軍官) 1인, 산행장(山行將) 2인, 하리(下吏) 30인, 통인(通引) 12인, 사령(使令) 12인, 관노(官奴) 14인, 관비(官婢) 3인, 포수(砲手) 33인, 창군(鎗軍) 20인, 마성문직(馬城門直) 3인, 마성감고(馬城監考) 2인이다’ 라는 직책들이 보인다.

   
▲ <울산염포지도(1471)>의 일부분.

그런데 <울산목장목지(蔚山牧場牧誌)>에는 보이지 않지만 <울산장기양목장리폐절목(蔚山長鬐兩牧場釐弊節目)(1861)>의 기록에 의하면 도척(刀尺)과 급창색(吸唱色), 남목관청고자(南牧官廳庫子), 북목식주인(北牧食主人) 등의 직책도 보인다. 이를 보면, 남목마성 안에는 기록에는 전하지 않지만, 보다 세분화 되고 많은 직책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목장관리는 군두(群頭)와 목자(牧子)가 담당하였는데, 군두는 간양군(看養軍), 즉 목자를 거느리고 매일 근무를 서며, 목자는 매번(每番) 6명씩 한조를 이루어 산을 오르내리며 말을 보살피고 10일 만에 교대하였다.

이러한 체계 속에서 등장하는 직책 중 주목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병방군관(兵房軍官)과 산행장(山行將), 포수(砲手), 창군(鎗軍) 등이 있다. 조선시대 전국의 각 목장은 국마(國馬)를 기르는 곳이므로 호랑이의 피해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방어진목장도 예외가 아니어서 호환(虎患)의 피해가 심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이 철저하였다. 먼저 염포(鹽浦)와 주전(朱田) 두 마을 사람들을 심종군(尋踪軍)에 편성하여 정해진 순서에 따라 매일 이른 아침마다 호랑이나 표범의 발자국을 찾아보게 하고, 그 출입여부를 관아(官衙)의 감목관에게 알렸다. 만약 호랑이가 마성을 넘어 목장 안에 들어온 흔적이 발견되면 병방군관과 산행장의 지휘아래 포수(砲手)와 창군(鎗軍), 목장 내 거주 군정(軍丁) 등으로 사냥부대를 만들어 잡게 하였다. 이를 위해 남목마성에는 호랑이와 표범을 잡기 위한 전문적인 조직을 갖추고 사냥을 전담했을 것으로 보이는 산행장 2인과 포수 33인, 창군 20인을 배치하였다.

   
▲ 능선 구간에 무너진 채 남아있는 남목마성과 실측도면.

마성의 축조는 그 내부의 말(馬) 등 여러 가축이 바깥으로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첫 번째 목적으로 하였지만, 이 가축들을 외부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사나운 짐승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였다.

<성종실록(成宗實錄)> 2권, 성종1년 1월4일의 ‘…울산(蔚山)의 방어진(方魚津)에는 본래 방목한 말이 3백60두였는데 고실(故失)이 57두, 유실(遺失)이 11두, 호랑이가 잡아먹은 것이 67두이며…’라는 기사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59책, 영조28년 7월14일의 기사에 ‘사복시 관원 김상중(金尙中)이 말하기를, 사복시 소속 울장목장 감목관 이공화(李恭華)의 첩보에 따르면, 사나운 호랑이(惡虎)가 목장에 들어와 국마를 잡아먹었는데 그 수가 12필에 달합니다. 목장 관리들이 포수를 이끌고 호랑이의 자취를 쫓아가 잡았습니다. 즉 산행장 서익준(徐益俊)이 스스로 앞장서서 몸을 바쳐 여기저기에서 호랑이를 잡았는데 모두 5마리나 됩니다. 근래 여러 도의 각 목장에서 호환(虎患)으로 인한 폐해가 갈수록 늘어 극에 달함에 따라 전에 만들어 놓은 호랑이 포획방법에 의거하여 울산목장에서 다수의 호랑이를 포착(捕捉)하였습니다…’라는 기사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이와 같은 사항이 외적(外賊)을 막기 위해 쌓은 여타 성곽들과 마성이 서로 다름을 알려 주는 가장 큰 요인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마성은 호랑이와 표범 등의 사나운 짐승이 그 바깥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울타리의 성격이 강했다. 그리고 호랑이 등 짐승들의 행동패턴(뛰어넘기 방식)은 구간별로 마성의 성쌓기 방식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사료된다. 골짜기 구간은 짐승들이 아래에서 위로 뛰어 오르기 어려운 점을 이용하여 경사면에 기대어 비교적 허술할지라도 성을 쌓기만 해도 그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지만, 능선 구간은 성의 안과 밖의 높이차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성 밖이 높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보다 높고 튼튼하게 성을 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것은 1678년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제작한 <목장지도>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지도를 보면, 현재의 염포삼거리 일원으로부터 남목삼거리에 이르는 구간은 골짜기 부분(파란색 화살표 구간)으로 성을 비교적 성기게 쌓은 것 같이 표현되어 있고, 남목삼거리에서 현대중공업 쪽으로 능선을 따라 오르다가 다시 내려가는 부분(빨간색 화살표 구간)은 일반적인 전투용 성곽처럼 성벽 위에 여장(女牆, 성가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과 유사한 것이 표현되어 있다.

즉 골짜기 구간에 비해 능선 구간을 보다 튼튼하게 쌓았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한 장의 지도에서 같은 성(城)을 구간별로 다르게 표현하였다는 것은 축조방식과 모습이 달랐음을 알려주는 것이며, 그 중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호랑이의 출몰이었던 것이다.

남목마성에 호랑이의 출몰에 대해 조선전기 울산 경상좌도병영에서 근무했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방어진목장 안에는 숲이 하늘을 가렸거늘, 호랑이가 좋은 말을 잡아먹는데 누가 용감히 앞장서는가? 화살 하나로 꿰뚫어 피가 물 흐르듯 하였다고 하더니, 잡은 흔적이 아직도 이끼 낀 절벽 가에 보이네’라는 시(詩)를 남겼다. 이창업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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