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반복되는 알코올의존증 범죄는
대부분 형벌만으로는 개선되지 않아
치료명령이 근본적 해결방안 될수도

▲ 이종엽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형사 법정에서 피고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변명은 ‘술에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범행을 하게 됐다’는 이른바 주취 항변이다. 그 중에는 술에 취해서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피고인도 꽤 많다. ‘술’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책임을 미루려는 동기에서 주취 정도를 과장하여 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폭력행위로 인한 범죄자 중 57.7%가 음주로 인한 것이라는 통계가 보여주듯 술은 범죄와 연관된 가장 강력한 단일 요인이다.

피고인들은 대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드시 술을 끊겠다’고 다짐하며 선처를 바란다. 그런데 이러한 부류의 피고인들은 대개 이미 술로 인한 반복된 범죄경험을 갖고 있다. 심지어 30,40번이 넘게 폭행, 상해, 재물손괴,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처벌받은 피고인도 있다. 종전 사건들에서도 피고인들은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반드시 술을 끊겠다’고 다짐했을 텐데 그들의 다짐은 이번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알코올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향정신성 약물이다. 마약을 비롯한 모든 중독성 약물과 마찬가지로 알코올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주는 방법으로 작용한다. 알코올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 수용체의 기능을 증진시키고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 수용체를 방해하며 일시적으로 도파민과 세로토닌 수치를 높인다. 이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고 생각이 느려지며 괴로운 일들은 단순하게 보인다. 동시에 쉽게 흥분하거나 공격성도 높아지게 된다.

문제는 알코올의 지속적인 사용이 뇌의 구조와 기능, 화학적 구성을 아예 바꾸어 놓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의 하나로 장기간 술을 마시게 되면 뇌의 도파민 시스템이 변화하게 되는데, 도파민은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 미친 듯이 그 일을 반복하게 만드는 생존을 위한 보상회로이다(실제 지렛대를 밟으면 도파민이 나오도록 설계한 실험에서 실험용 쥐는 죽을 때까지 지렛대를 밟는다). 헤로인, 코카인, 필로폰 등의 중독 기전과 마찬가지로 바뀐 뇌는 이제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술은 너무나 흔해서 그 위험성이 간과되기 쉽지만, 놀랍게도 알코올은 필로폰이나 대마초보다 중독성이 더 높다. 미국의 어느 적응형 알코올중독자가 알코올중독을 이겨내는 과정을 쓴 글에서 ‘알코올중독자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은 설사환자에게 설사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는데, 술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반복해서 법정에 오는 피고인들을 보면 그 말이 실감 나곤 한다.

범죄에 대한 처벌은 형벌이라는 고통의 부과로 그러한 범죄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기대에서 시도된다. 그런데 알코올의존증으로 인한 범죄의 하염없는 반복을 보면, 이 사람들에게 형벌을 부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치료감호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알코올중독으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보호관찰소의 감독 하에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명할 수 있는 ‘치료명령부 집행유예 제도’가 도입되었다. 중독된 뇌가 정상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는 스스로 술을 끊겠다는 피고인들의 결심이 자주 좌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세 달 고통스럽게 술을 참았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어느 순간 포기하기 마련이다. 치료명령을 통해서 이들이 자신의 현재 상태를 보다 잘 이해하고, 전문 의료기관의 지도 아래 자신의 ‘병’을 잘 이겨내길 바란다. 치료는 어쩌면 엄한 형벌보다 사회를 더 잘 보호하는 방법일 수 있다.

이종엽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