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난 건 평범한 어느 날이었어. 그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탁발 수행이 있었지.

 “릭, 아직 멀었니?”

 “아니에요. 이제 준비 다 했어요.”

 “아홉 살이나 된 스님이 옷도 똑바로 못 입으면 어떡하누.”

 큰 스님은 어깨 밑으로 흘러내린 장삼을 바로 올려주며 근엄한 목소리로 물으셨어.

 “탁발이 스님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수행인지 너도 잘 알고 있지?”

 큰 스님의 말씀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스님이 된지 일 년도 채 안 됐지만 그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거든.

 메콩강에 나룻배들도 아직 깨어나지 않은 고요한 시간이었어. 새벽의 푸른빛이 가시기도 전이지만 사람들은 벌써 거리로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면 앞장선 큰 스님을 따라 나이순으로 주홍빛 장삼을 입은 스님들의 탁발행렬이 이어져. 스님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정성껏 준비해온 찰밥을 떼어내 스님들의 발우에다 시주를 해. 발우에는 밥뿐만 아니라 과자나 빵, 가끔은 돈도 들어있어. 음식을 얻어먹는다고 해서 우리를 거지로 오해하지는 말아줘. 스님들은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신도들에게 받는 거거든.

 “무언가를 가지게 되면 욕심이 생기는 법이란다.”

 큰 스님이 그러셨어. 그런데 우리가 가진 발우는 조금 신기하단다. 시주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넘치는 일이 없거든. 그 비밀은 거리 곳곳에 놓여 진 빈 바구니에 있어. 우리는 받은 음식 일부를 이 바구니에 덜어 내야해. 덜어낸 음식으로 채워진 바구니는 길 끝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야. 받은 것을 나누는 것이지. 멋지지 않아? 그런데 바로 그날 너와의 만남으로 인해 나의 수행 인생 일대 최고의 고비를 맞이하게 돼 버렸어.

 

 너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어. 그날따라 내 발우는 금세 채워졌어. 그런데 무심코 발우를 들여다 보다 눈이 휘둥그레졌어. 발우 속에는 손바닥만 크기의 네가 짠! 하고 들어와 있는 거야. 넌 마치 푸시산에 떠오른 해처럼 반짝거렸어. 사실 널 본 건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어. 몇 달 전 우리 사원에 온 여행객들이 너를 먹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풍기는 냄새가 보통의 초콜릿 냄새가 아니었어. 초콜릿만큼이나 달콤하지만 그보다 더 진한 냄새였어. 라오스에서는 절대 맡아볼 수 없는 특별한 달콤함이었다고나 할까.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 뻔 했어. 군침을 삼키는 나를 보았는지 착해 보이는 아저씨가 너를 나에게 건네려는데 바로 그 때,

 “릭! 마당은 다 쓸었니, 여기서 여태 뭐하고 있는 거니?”

 큰 스님이 부르시는 거야. 마음 같아선 너를 냉큼 받았겠지만 큰스님이 나무라시는데 널 받아 챙길 수는 없잖아. 잡은 고기를 놓쳤을 때 어떤 기분인 줄 아니? 그렇게 눈앞에서 놓쳐버려 내내 아쉬웠지만 어딜 가 봐도 널 찾아볼 수가 없는 거야. 그런 네가 저절로 나의 발우 속으로 들어왔으니 이런 기적이 또 어디 있겠니. 원칙대로라면 길 위에 있는 바구니에 너를 던져 버려야 했어. 내 발우는 이미 가득 찼었거든.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난 너를 바구니에 덜어내지 못했어. 그 때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어.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더니 그곳에는 바구니를 든 소녀가 있었어.

 ‘스님 난 다 봤어요. 그렇게 욕심을 부리다니 스님 맞아요?’라고 하는 것 같았어. 그런데 뭔가 이상한거야. 소녀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어. 왜 있잖아, 앞 못 보는 사람들이 쓰는 지팡이.

 ‘뭐 어때. 부처님도 한 번쯤은 이해해 주실 거야.’

 너를 가진 순간부터 그날 오전 내내 내가 무얼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이글거리는 태양이 씨엥통 사원의 황금 지붕을 녹여버릴 듯이 뜨거운 오후가 되어서야 쉬는 시간이 주어졌어. 무더운 낮에는 스님들도 자유시간이야. 난 뒤뜰로 나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을 하고 조심스레 널 품에서 꺼냈어. 몇 달 전에 봤던 그 때의 그 모습과 똑같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만 소리를 지를 뻔 했어. 빨간색 봉지에 앙증맞게 그려진 네 모습은 어느새 내 마음 깊은 곳을 차지하고 말았지. 너를 어떻게 꺼내 볼까. 가위로 자를까, 아니면 과감하게 손으로 뜯을까.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끝부분을 잡고 단번에 봉지를 열었지. 달콤한 냄새가 먼저 내 코를 사로잡았지. 갈색 바탕에 윤기가 흐르는 동그란 네 얼굴은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매력적이었어. 한입 너를 베어 무는 순간 난 너에게 반해버리고 말았지. 네 몸속에 숨어 있던 하얀 크림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어. 폭신하면서도 부드럽고 사르르 녹는 게, 눈의 맛이 이럴까. 라오스는 여름뿐이라 눈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책에서 본 적이 있어. 초콜릿색처럼 동그란 항아리 뚜껑 위에 소복이 덮여있던 눈. 눈은 쉽게 녹아버린다고 했거든. 새하얀 크림이 혀에 닿는 순간 사르르 녹는 너는 꼭 눈 같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너는 사라지고 말았어. 하지만 슬프진 않았어. 다행히 너는 하나 더 있었거든.

 그때부터 난 너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지. 이름 옆에 적힌 ‘情’이라는 한자 때문에 처음에는 네가 중국에서 온 줄 알았어. 하지만 끈질긴 추적 끝에 네가 한국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 왜 강남스타일 춤으로 유명한 그 나라 말야. 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너를 보물 상자에 담아 뒤뜰에 있는 보리수나무 밑에 숨겨 두었어. 그리고선 매일 꺼내 보았지.

 그날도 네가 잘 있나 확인해보려 보물 상자를 열어보던 참이었어.

 “릭, 그게 뭐야?”

 깜짝 놀라 돌아보니 키산이었어. 키산은 나처럼 집이 가난해 스님이 된 아이야.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스님이 된 거지. 난 너를 얼른 등 뒤에 숨겼지만 키산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물었지.

 “네가 매일 들여다보는 그게 뭐냐고?”

 명색이 스님인데 거짓말을 할 순 없잖아. 난 솔직히 말했어.

 “한국에서 만든 초코빵인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라오스에 이보다 달콤한 건 없을 걸.”

 “얼마나 맛있길래?”

 “너 눈 알지? 추운 나라에 내리는 새하얀 눈. 눈처럼 달콤한 맛이야.”

 “거짓말 마. 본 적도 없는 눈을 네가 어떻게 알아?”

 “꼭 봐야만 아니, 안 봐도 맛으로도 느낄 수 있는 거야.”

 “어디서 났어?”

 “그건 비밀이야.”

 키산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어. 그러고선 한참 뜸을 들이더니 내게 말했어.

 “릭, 그 거 나한테 주면 안 돼?”

 “말이 돼? 이 초코빵은 내가 정말 아끼는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욕심 부리면 안 되잖아. 넌 지금 부처님의 법을 어기고 있어. 네가 안 주면 큰 스님에게 모두 일러바칠 거야.”

 “비겁해!”

 “욕심 많은 네가 더 비겁해!”

 “내 꺼라고!”

 “세상에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니. 공평하게 승부를 해서 이긴 사람이 갖도록 하자. 대신 내가 지면 못 본 걸로 해줄게. 내일 이 시간, 꽝시 폭포에서 만나기로 하자.”

 너를 둘러싼 우리의 승부는 그렇게 시작됐어. 사슴이 뿔로 들이받은 곳에 물이 쏟아져 폭포를 이뤘다는 전설처럼 꽝시 폭포의 물은 엄청나. 물살이 너무 세서 숨을 오래 참기는커녕 그냥 서 있기도 힘들 정도지.

 “오래 참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난 참는 거라면 자신이 있거든. 하루에 두 끼만 먹는 것도 참을 수 있고 수업 시간에 잠 오는 것도 참을 수 있지만 너를 빼앗기는 건 참을 수가 없었어.

 “하나, 둘, 셋 하면 들어가는 거다. 하나 둘, 셋!”

 난 마음속으로 너를 갖고 싶은 만큼 세었어. 초코빵 하나, 초코빵 둘, 초코빵 셋, 초코빵 열, 초코빵 백. 헉헉. 이쯤이면 되겠지. 가쁜 숨을 내뱉으며 물 밖으로 나오니까 키산의 얼굴은 여전히 물속에 있는 거야. 얼른 다시 물속으로 얼굴을 넣으려는데, 바로 그때 푸우! 하고 키산이 물 밖으로 나왔어.

 “내가 이겼지?”

 “무슨 소리야. 사람이라면 그렇게 오래 숨을 참을 수가 없어.”

 “뭐라고? 내가 속이기라도 했단 말야?”

 “안 봤으니 알 수가 없지.”

 “그래. 좋아. 그럼 이번에는 헤엄쳐서 저기까지 먼저 도착하는 걸로 붙자.”

 키산은 폭포 끝을 가리켰어. 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

 “준비, 시작!”

 물살을 가르며 목적지까지 최선을 다해 헤엄쳤어. 너를 지킬 수만 있다면 차가운 물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너를 맛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네가 어떤 맛인지도 모르고 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키산은 무엇 때문에 너를 그렇게 갖고 싶었던 걸까. 두 번째 대결도 무승부로 끝이 났어.

 “이번에는 무조건 승부를 내는 거다.”

 마지막 승부는 다이빙이었어. 더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내 키의 세배쯤 되는 나무에 올라가 나는 멋진 폼으로 뛰어내렸지. 그런데 키산은 내가 올랐던 나무보다 훨씬 높은 나무를 찾은 거야. 키산이 나무를 오를 때 나는 생각했지.

 ‘하나 남은 초코빵 못 먹게 되어도 좋아. 키산에게만은 절대 뺏길 수 없어!’

 나는 키산이 나무에서 미끄러지길 속으로 빌었어. 그런데 아뿔사. 정말 그렇게 돼 버린 거야. 키산은 나무에 오르자마자 휘청거리더니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고 말았어.

물살을 가르며 목적지까지 최선을 다해 헤엄쳤어.
너를 지킬 수만 있다면 차가운 물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너를 맛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거야.

 키산은 누워 지내야 했어. 당연히 아침 탁발 수행에도 나갈 수가 없었지. 나는 너를 갖고 있었지만 네가 먹고 싶다거나 예전처럼 좋지는 않았어. 너를 품에 안고 키산이 누워 있는 방을 서성이기만 했지.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메콩강 위의 달이 네 모습처럼 동그랗게 부풀던 날 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키산을 찾아갔어. 그런데 빼꼼 열린 문 틈 사이로 방안을 들여다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어. 키산 곁에는 탁발 때 보았던 낯익은 얼굴이 있었거든. 왜 있잖아. 우리가 준 음식 바구니를 가져가던 그 지팡이 소녀.

 “스님, 왜 그동안 탁발하러 나오지 않았어요?

 “짠, 아무도 없을 땐 스님이라고 안 불러도 돼.”

 “오빠가 나오질 않아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짠, 오빠가 네 선물을 구하기 위해 잠시 어디 좀 다녀왔어.”

 “어떤 선물인데?”

 “짠, 너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눈 맛 빵이 있대. 얼마나 달콤한지 입에 닿는 순간 사르르 녹고 만대.”

 “눈은 달콤한 맛이야?”

 “아마도 그런가 봐. 조금만 기다려. 오빠가 공부 열심히 해서 눈 맛 빵 꼭 구해줄게.”

 키산은 소녀의 손을 가져가 볼에 비볐어.

 소녀는 더듬더듬 지팡이를 짚으며 마당으로 걸어 나왔어. 잠시 망설이다가 소녀의 지팡이를 붙잡았어. 소녀가 흠칫 놀랐어.

 “네가 혹시 키산 동생 짠이니?”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난 대답대신 너를 꺼내들었지. 하도 만지작거려 뭉개지긴 했지만 하얀 크림은 그대로였어.

 “이거 먹어봐. 키산이 겨울 나라에서 구해온 눈이야.”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문 소녀는 음미하듯 너를 머금고 있기만 했어.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채였지만 소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어.

 “와아, 눈은 달콤하구나.”

 그제야 무거운 내 마음이 사르르 녹더라. 그 때 나는 진짜 눈 맛을 보았어. 너처럼 동그랗게 생긴 보름달이 소녀와 나를 비추는 밤이었어. <끝>

당선소감-이서림 / 동심으로 세상 밝히기 위해 더욱 정진

▲ 이서림

“세상은 생각대로 되진 않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에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의 대사입니다. 제게는 신춘문예가 그랬습니다.

한 해 동안 지은 글 농사 검사 받듯 꼬박꼬박 응모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설렘보다는 조바심이 앞섰습니다. 그렇게 세 번째 맞이한 계절. 이번 겨울은 또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야 할까 지레 겁먹고 있을 때 기적 같은 일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 맘껏 울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웃다 보니 정신이 번뜩 들더군요.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하는데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아서요. 외로운 싸움에 지치지 않도록 응원해준 나의 사람들인 든든한 스승님 박덕규, 노경수 교수님, 홍종의 선생님, 영원한 글벗 은정이와 현정언니, 초록목도리 식구들, 나의 가족들과 보석들,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모두 그들 덕분입니다. 믿어주신 만큼 깊을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동심으로 세상을 밝히는 그 멋진 일을 위해 쉬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약력
●1982년 부산 출생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수료
●현재 울산 mbc 구성작가

심사평-김구연 / 새로운 이야기와 명확한 표현력에 집중

▲ 김구연

본심에 오른 작품 모두를 읽은 소감은 한 사람이 썼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야기도, 표현도 엇비슷했다는 것이다. 그 만큼 수준이 고만고만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동화는 말 그대로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러니 무엇보다 이야기가 재미있고 유익해야 하고 표현이 새롭고 명확하기를 심사위원은 바라게 된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손톱 긴 손자, 꼬리긴 할머니’ ‘라오스의 달콤한 눈’ ‘안녕 해바라기야’ 3편이었는데 나는 ‘라오스의 달콤한 눈’을 선택했다.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응모자에게 한마디 한다면 사투리 사용에 신중을 기하라는 것이다. 나라 안의 모든 어린이가 독자이기 때문인데 현상 투고 작품에서는 더욱 그렇다.

약력
●1942년 서울 출생
●197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동화집 <자라는 싹들> <마르지 않는 샘물> <가을 눈동자> 등 발표
●새싹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소천아동 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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