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윤문영

때는
현재. 칼바람 부는 초겨울 저녁.

장소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주점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외롭게 자리 잡은 커피숍.

무대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등장인물은
김 과장 (40대/남), 정 대리 (30대/남), 박 인턴 (20대/남)이다.

극이 시작되면 박 인턴이 커피를 들고 들어와 홀짝홀짝 조금씩 나눠 마신다.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모습이다.
잠시 후 정 대리가 커피를 들고 들어온다.
박 인턴,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박 인턴 정 대리님, 오셨어요?
정 대리 어! 박 인턴도…? 부장님 얘기 듣고?
박 인턴 네, 부장님께서…
정 대리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며) 이 칼바람은 올해도 돌아오는구나. 왜 퇴근시간만 되면 찾아오는 걸까? (혼잣말로 구시렁댄다.) 부장님도 참. 애들은 애들끼리 회식시키시지.
박 인턴 (회식이라는 말에 조금 안심하며) 역시 오늘은… 회식일까요?
정 대리 그럼 뭐겠어. 당연한 걸 뭘 물어.
박 인턴 전 회식 직전에 가장 불안해지더라고요. 사실…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요.
정 대리 내가 인턴 때도 그랬지. 직장 상사와 함께하는 자리는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월급 주는 사장님이라 해도 피해 갈 수 없지. 맞아. 기억해보니 그때는 사장님도 가끔 이렇게 부르시곤 하셨는데…
박 인턴 사장님께서요? 직접 나오셔서요?
정 대리 놀랄 일도 아니지. 그땐 사장님께서 직접 회식도 시켜주시고 하셨어. 부장님, 가끔 이러셔. 갑자기 무겁게 분위기 잡고 술 한잔하자고. 정기회식이 아니어도 그럴 때 있잖아. 술 한잔하고 싶은… 마치 오늘 같은 날에.
박 인턴 근데 왜 커피일까요? 곧장 술자리로 가는 것도…
정 대리 (말 끊으며) 너 몰랐어? 너도 참 눈치가 그렇게 없어서야.
박 인턴 뭔가 이유가 있었군요?
정 대리 이젠 알만할 때 되지 않았니?
박 인턴 아직 부족합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정 대리 오늘 같은 자리 처음이지? 앞으로 자주 있을 거야. 생각을 해봐. 왜 커피숍이겠어. 부장님께서 간이 안 좋아지신 거겠지. 뭐 물론 심각한 건 아닐 거고, 아무튼 커피 한 잔 사주시면서 카드 주시고 가실거야. 우리 부장님 센스 있으시잖아. 또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박 인턴 간 건강이요? 그런 얘기가 있었나요?
정 대리 너도 6년 차가 되면 몰라도 알게 된단다. 이 무역상사의 사이클이란… 너 이제 몇 년 차지?
박 인턴 이제 인턴인걸요. 까마득합니다.
정 대리 금방 훅 간다. 간도, 시간도…
박 인턴 네,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정 대리 그래, 아직 인턴이었지. (조심스럽게 묻는다.) 계속 이 일할 거야?
박 인턴 그럼요. 얼마 만에 얻은 직장인데요.
정 대리 너 겨우 그런 이유야? 그런 이유로 일을 하겠다는 거야?
박 인턴 아닙니다. 물론 재미도 있고요. 잘 할 자신 있습니다.
정 대리 아니야. 넌 그냥 단순히 여길 월급 주는 곳으로 판단하고 있어. 안 그래?
박 인턴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정 대리 나라면 이 일을 왜 하는지. 미래는 어떤지부터 판단할 거야. 안 그래?
박 인턴 저도 그런 생각입니다.
정 대리 그럼 말해봐.
박 인턴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사실 요즘 취업문이 좁지 않습니까? 취업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사실 나쁘지 않은 대학에서, 물론 장학금은 못 받았지만… 그 등록금 한두푼 아니잖습니까. 그거 다 알바해가며 갚고 나서 얻은 게 뭔가요? 이 직장입니다. 그런 직장인데 어떤 일인들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정 대리 그게 무슨 이유야? 나는 뭐 안 그런 줄 알아?
박 인턴 대리님과는 다르죠. 대리님은 황금기수 아닙니까?
정 대리 황금? 그런 게 어딨어? 너랑 나랑 몇 기수나 차이 난다고?
박 인턴 그때는 공채가 많았다고. 매출도 엄청나서 해외연수도 시켜주고, 회식도 매일매일에…
정 대리 누가 그래? 과장님이?
박 인턴 말 못 합니다.
정 대리 과장님도 참. 그런 걸 애들한테 왜.
박 인턴 애들 아닙니다.
정 대리 너 오늘 좀 대든다?
박 인턴 죄송합니다. 취업 때를 생각하니 울컥하게 되네요.
정 대리 그걸 왜 나한테 쏟아부어. 내가 대기업 다니니? 철밥통 공무원이니? 나도 너랑 똑같은 월급쟁이다.
박 인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정 대리 (망설이다가) 너도… 뭐… 정직원 될 건데 뭐가 부럽니.
박 인턴 제 꿈입니다.
정 대리 뭐가? 대리가? 겨우?
박 인턴 대리까지라도 살아남는다면 그보다 영광은 없죠.
정 대리 영광일 거까지야.
박 인턴 대리만 되어 볼 수 있다면 그만둬도 좋습니다.
정 대리 뭐? 겨우?
박 인턴 그럼 경력직이라는 타이틀로 다른 곳에 이동할 수 있겠죠. 그 정도도 행복할 거 같습니다.
정 대리 너 왜 그래? 누가 너 짜르기라도 한대?
박 인턴 (기겁하며) 아니요. 가만 안 있을 겁니다.
정 대리 그럼? 가만히 있지 않으면?
박 인턴 짤리면… 짤리면… (울음이 터진다.)
정 대리 너 왜 그래?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박 인턴 저 짤리는 겁니까? (운다.)
정 대리 누가 그래. 누가 널 짜른대? 넌 괜찮을 거야.
박 인턴 정말입니까? (울음을 조금씩 그친다.)
정 대리 그럼.
박 인턴 책임 지실 수 있나요?
정 대리  (다른 사람들 눈치를 살피며) 내가 왜 책임을 져. 너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취업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대학 등록금이 한두푼 아니잖습니까.
알바해가며 갚고 나서 얻은 게 뭔가요?

박 인턴 (다시 한껏 억울한 표정으로 울려고 한다.) 역시…
정 대리 알았어. 책임질게. 책임진다.
박 인턴 감사합니다. (울음을 그친다.)
정 대리 나 정말 깜짝 놀랐다. 사내자식이 울음은 무슨. 너 무슨 일 있냐?
박 인턴 억울해서요.
정 대리 뭐가? 뭐가 그렇게 억울해? 짤릴 거 같아서?
박 인턴 아니요. 제가 못 해서 짤리는 건 괜찮아요.
정 대리 그럼 뭔데?
박 인턴 전 언제나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왔거든요. 누구보다 못하다. 1등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정말 열심히 하려고 했습니다. 아니, 열심히 했어요. 근데 이런 일이… 역시 명문대가 아니라서일까요?
정 대리 아니, 그러니까 누가 널 짜른다고 했냐고.
박 인턴 그런 생각이 매일 들어서요.
정 대리 너 솔직히 말해. 무슨 얘기 들었어?
박 인턴 그런 거 없습니다.
정 대리 정말이야? 너 뭔가 듣고 이러는 거 아니야?
박 인턴 아닙니다. 그냥 TV 드라마에서 다들 그러니까요.
정 대리 열심히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애를 왜 짤라. 걱정 마.
박 인턴 그렇겠죠?
정 대리 뭐, 일단 6개월은.
박 인턴 네?
정 대리 분기 별로 매출 실적 계산한다 해도 적어도 1/4분기만으로는 쉽게 결정 나지 않아. 그러니 6개월은 안심이지. 그 이후는…
박 인턴 역시 선배님께서는 뭔가를 알고 계시는군요.
정 대리 그 이후는 나도 모르지.
박 인턴 그래도 대리님은 맘 편하시겠네요.
정 대리 나도 마찬가지야.
박 인턴 그만두셔도 벌어 놓으신 것도 있으실 테고…
정 대리 무슨 소리야. 대출이 산더미인데… 나도 여기서 한 번 울어볼까?
박 인턴 별로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겠네요.
정 대리 나야말로 안 되지.

▲ 일러스트: 윤문영

박 인턴 그럼 저는요?
정 대리 물론 누가 그만두고 싶겠어. 하지만 순서대로라면…
박 인턴 순서대로라면?
정 대리 결국 순서로 결정하는 게 공평하다면…
박 인턴 사장님부터?
정 대리 그게 말이 되니?
박 인턴 그렇죠? 역시… 그건 무리겠죠?
정 대리 그나저나 왜 부장님은 안 오시지?
박 인턴 근데 왜 다른 분들은 안 오실까요? 저희 부서 다른 사람들은 왜…

김 과장, 커피를 들고 들어온다.

정 대리 (일어나며) 과장님, 여깁니다.
김 과장 정 대리 와 있었구먼. 다른 사람들은?
박 인턴 저희 둘 뿐입니다.
김 과장 그래? 어허 이거 내가 너무 빨리 왔나? (앉는다.)
정 대리 다른 사람들이 늦는 겁니다. 이미 모이기로 한 시간이 지났는걸요.
김 과장 그래? 근데도 아무도 안 온 거야?
정 대리 저희 와 있지 않습니까?
김 과장 역시 정 대리야.
박 인턴 저도 있습니다.
김 과장 역시.
박 인턴 박종수 인턴입니다.
김 과장 어, 그래. 역시 박 인턴이야.
박 인턴 감사합니다.
정 대리 부장님도 아직 안 오셨습니다.
김 과장 그러게. 오늘 얘기 좀 나누려고 했는데 말이야.
박 인턴 저희도 함께 말입니까?
김 과장 별거 아니야. 그냥 다들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어 하셔서.
정 대리 저희 말입니까?
김 과장  그럼 누구겠어. 자네들이 앞으로 이 회사 기둥 아닌가.
정 대리 감사합니다.
김 과장 정 대리 몇 년 차지?
정 대리 6년입니다. 상사맨의 표본, 김 과장님에 비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김 과장 다 똑같은 월급쟁이지. 뭐 별거 있나. 그냥 월급 좀 많은 거지.
정 대리 정말 부럽습니다.
김 과장 내가?
정 대리 네, 과장님 정도 되시면 걱정 없으실 테니 말입니다.
김 과장 허허, 이거 참. 나도 시한부지.
정 대리 그래도 이제 곧 부장님 되시지 않습니까?
김 과장 어허, 그런 건 크게 말하지 말아야지. 부장님 들으시면 어쩌려고.
정 대리 그래도 사실 아닙니까. (박 인턴에게) 안 그래?
박 인턴 그럼요. 맞습니다.
김 과장 허허허. 정 대리도 과장해야지.
정 대리 저는 대리로 만족합니다.
김 과장 어허, 이 친구. 배포가 이렇게 작아서야. 이 회사 이끌어 가겠어? 젊은 사람이 말이야.
정 대리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직 능력이…
김 과장 (이때다 싶어 진지하게 묻는다.) 능력 안되면 그만둬야지.
정 대리 네?
김 과장 능력 안된다며? 그 말 하려던 거 아니야? (박 인턴) 강 인턴. 안 그래?
박 인턴 저…
김 과장 뭐?
박 인턴 박종수 인턴입니다.
김 과장 아, 박 인턴. 안 그래?
박 인턴 (정 대리와 김 과장의 눈치를 본다.) 그게…
김 과장 (눈치를 주며) 어허.
정 대리 (박 인턴에게 눈치를 준다.) 말해봐.
박 인턴 그게… 그렇습니다.
정 대리 뭐가 그렇단 거야?
김 과장 뭘 묻나? 능력 안된다는 거 아니겠어?
정 대리 저 그 말하려던 거 아닙니다.
박 인턴 그럼요? 저도 그렇게 들렸는데요.
정 대리 아직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김 과장 그거나 이거나.
정 대리 다르죠. 과장님, 왜 그러세요. 왜 놀리세요.
김 과장 (너무 진지해진 분위기를 의식한 듯 분위기를 풀며) 농담이야. 농담.
정 대리 정말 놀랐습니다. 과장님.
박 인턴 (맞장구치며 웃는다.) 하하하…
김 과장 (박 인턴에게) 왜 웃나?
박 인턴 죄송합니다.
김 과장  이 상황이 웃긴가?
박 인턴 농담하시는 줄 알고… 죄송합니다.
김 과장 (정색하다가 다시 분위기를 풀며) 농담이야. 농담. 이 친구 아직 순수하구먼. 미안해. 다들. 회사 생활 15년 넘어가니까 심심해져서 말이야. 이러니 아랫사람들이 싫어하겠지. 그래서인지 회식도 눈치 보여서 못 가겠고 말이야. 회사에선 만년 과장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회식 땐 밑에 사람 눈치도 보이니 이거 참 어렵구먼. 근데 아저씨라 이런 농담 나오는걸 어떡해. 또 재밌기도 하고 말이야.
정 대리 식겁했습니다. 과장님.
김 과장 미안해. 미안해.

어색한 분위기.

박 인턴 부장님께서 늦으시네요.
정 대리 과장님, 무슨 얘기 못 들으셨나요?
김 과장 무슨 얘기가 있겠어?
정 대리 그래도 뭔가 이상해요. 다들 안 오고.
김 과장 연락해봤어?
박 인턴 다들 안 받습니다.
김 과장 역시 그런 건가?
정 대리 뭐가 있군요.
김 과장 역시 이번엔 우리 셋뿐인가?

또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된다.
김 과장,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김 과장 강 인턴, 몇 년 차?
박 인턴 저… 박 인턴입니다.
김 과장 아. 미안. 존재감이 없어서.
박 인턴 아… 네.
김 과장 무슨 일해?
박 인턴 네?
김 과장 회사에서 무슨 일하냐고.
박 인턴 복사랑…
김 과장 그건 복사기가 하잖아.
박 인턴 전화 업무…
김 과장 연결해주는 거?
박 인턴 아직 딱히 뭘 맡아서 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옆에서 서포트는…
정 대리 저는 프로젝트 맡아서 하고요.
김 과장 1/4분기 매출은?
정 대리 네?
김 과장 정 대리가 맡아서 한 매출 말이야.
정 대리 왜 그러십니까?
김 과장 뭘?
정 대리 갑자기 왜 물어보십니까?
김 과장 물어보면 안 되나?
정 대리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여기서 물어보실 말은 아닌 거 같아서요.

밖에서 칼바람 소리가 들린다.

정 대리 역시… 저 뿐만이 아니군요. 맞죠?
김 과장 뭐가?
정 대리 전 안됩니다.
김 과장 뭐가 안된다는 거야.
박 인턴 저도 아직 안됩니다.
김 과장 박 인턴, 그러니까 뭐가.
정 대리 과장님이 말씀하시려는 거요.
김 과장 그럼 나는 괜찮고?
정 대리 (그런 뜻이 아니라는 의미로) 과장님.
김 과장 여기 이렇게 모인 세 명만 모인 게 뭐겠어? 얘기들은 게 다들 있을거 아니야. 지금 우리가 여기서 농담 따먹고 있을 때야?
박 인턴 역시 그랬군요. 역시 회식은 아니었군요.
정 대리 뭘 모른 척이야. 너도 다 알잖아. 그래서 나한테 떠본 거 아니야?
김 과장 뭘 떠봐?
정 대리 이 녀석이. 저한테 대리쯤 되면 그만둬도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김 과장 (눈치 보며) 맞는 말이지 뭐.
정 대리 과장님, 그럼 과장님은요?
김 과장 내가 뭐?
정 대리 제가 과장님이면 벌써 그만뒀습니다. 도대체 여기서 만년과장으로 몇 년입니까?
김 과장 뭐? 너 이 자식 말 다 했어?
정 대리 저한테만 뭐라고 하지 마시라고요. 저도 그만두기 싫다고요.
박 인턴 네, 맞습니다. 저도 억울합니다.
김 과장 나라고 별 수 있겠어. 나도 같은 입장이야. 우리 모두 이유가 있잖아. 자, 자, 모두 너무 감정적으로 가지 말고. 이야기해 보자고. 그러니까 다들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야?

밖에서 또다시 칼바람 소리가 들린다.

정 대리 과장님도 아시면서 뭘 물으세요. 뭐, 매출이죠. 전년에 비해 떨어졌다. 회사에서 인력 감축을 시작했다. 특별 명예퇴직 신청자 접수한다.
박 인턴 네, 저도요. 이 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다른 일 찾아보면 어떠냐.
김 과장 내가 들은 얘기는… 그러니까 나만 조금 다르게 들은 거 같은데. 우리 중에 한명. 그러니까 우리 부서에서 한 명이 퇴직 신청을 했으면 하는 거지.
정 대리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강제로요.
박 인턴 저도 들었습니다. 각 부서별로 한 명씩.
김 과장 아. 그래? 알고 있었어? 그럼 우리가 이렇게 싸울 필요가…
정 대리 그럼 여기서 누군데요? 누가 그만둬야 하는데요?
김 과장 그걸 정하자고 모인 거 아니겠어. 물론 모두 감정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 알아. 내가 아깐 미안했어. 그렇게 비겁하게 깔아뭉개는 게 아니었는데… 나도 궁지에 몰리니까… 어쨌든 내가 미안하고, 그러니 한번 다들 생각해보는 게 어때? 어쩌면 정말 명예로울지도 몰라. 퇴직이.
정 대리 뭐요? 명예요? (배신감에 섭섭하다.) 과장님께서 그러시면 안 되죠. 솔직히 과장님이야말로 잃으실 게 없잖아요. 그만두셔도…
김 과장 (반박하며) 왜 없어. 이제 애들이 고등학교 올라가는데… 학원비에, 교통비에, 핸드폰 값에…
정 대리 근데요. 그건 지난번 정리해고 때도 쓰셨던 레퍼토리잖아요.
김 과장 (진심으로) 정말 많이 든다고… 애들 학비에다가 (말하다 보니 열받는다.)  애들 엄마도 씀씀이가 커져서…
박 인턴 (조용히 끼어든다.) 씀씀이는 줄일 수도… 그건 습관입니다.
김 과장 박 인턴. 너까지… 나 그렇게 안 봤다. (협박조로) 너랑 나만 살아남으면 넌 어떻게 되겠어?
정 대리 과장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저로 몰아가는 거예요?
김 과장 아니, 그게 아니고…
정 대리 뭐가 그게 아니에요. 저도 할 말 없는 줄 아세요? 솔직히…
김 과장 솔직히 뭐.
정 대리 과장님 아직까지 승진 못하신 거면… 더 이상 가망이 없잖아요.
김 과장 뭐? 너 너무 솔직하다? 말 다 했어? 너랑 내가 살아남으면 넌…
박 인턴 (자신을 버린 것 같다는 배신감에) 과장님…
정 대리 전 가족 중에 저 혼자 벌어요.
김 과장 나도 마찬가지야. 마누라는 가정주부에, 애들은 학교 다니고…
정 대리 애들 알바시켜요.
김 과장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고등학교 그만두게 하리?
정 대리 저도 가족들 일 못 시켜요.
김 과장 왜? 우리 가족은 시키려 들면서 넌 왜?
정 대리 … 편찮으세요.
김 과장 (예상치 못한 답변에 머뭇거린다.) 그래? 그럼 강 인턴… 아니 박 인턴은? 어차피 존재감도 없는데…
박 인턴 그런 걸로 판단하는 게 어딨어요?
김 과장 정 대리, 가족이…
박 인턴 저도 저 혼자 벌고요. 동생도 취업 준비하고, 시집도 가야하고…
김 과장 아픈 사람은 없잖아. 산 사람이 어디 굶어 죽기야…
박 인턴 아픈 사람 있어요. 저희 가족도 아픕니다. 그리고 6명이나 된다고요.
정 대리 (재빨리) 난 7명.
김 과장 (지지 않는다.) 난 8명이야.
박 인턴 (밀리기 싫다.) 저도… 다 끌어오면 10명은 될걸요?
김 과장 거짓말 아니야? 가족까지 팔아서 거짓말 하기야? 그럼 난… (고민한다.) 그만두면 내 목숨이 위태로워.
정 대리 에이, 과장님, 거짓말 마요. 무슨 목숨까지…
박 인턴 산 입에 거미줄은 안친다고… (눈치 보며) 김 과장은 성실해서 괜찮을 거라고. 부장님께서…
김 과장 뭐 부장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날 까내리는데? 정말이야. 나 정말 목숨 달렸어. 이거 왜 못 믿어. 진짜야. 사채 썼어.
정 대리 에이, 그게 무슨 목숨이에요. 전 진작에 썼어요.
박 인턴 저도요. 백수 시절에 대출이 안돼서.
김 과장 무슨 사채를 이렇게나 많이 써? (의심한다.) 다들 거짓말 아니야?
정 대리 속고만 사셨어요? (휴대폰을 꺼내며) 지금 증명해 드릴까요?
박 인턴 (품에서 서류를 꺼낸다.) 전 매일 들고 다닙니다.
김 과장 사채업자한테 맨날 전화 오고, 이자도 장난 아닐 텐데?
정 대리 그러니까 더더욱 그만 못 두죠.
김 과장 아니, 다들 어디다 그렇게 돈을 쓰는 거야.
박 인턴 집에서 저 혼자 버니까요.
정 대리 늘 부족하죠.
김 과장 나도 한 집안의 과장이야.
정 대리 과장님, 지난번에 로또 되셨다면서요.
김 과장 무슨 유언비어야. 로또 5등이야. 5등. 그거 하나 됐다고.
정 대리 전 그런 것도 당첨된 적이 없어요. 정말 부럽습니다.
김 과장 그거 내가 줄게. 거기다 보너스로 내가 돼지 꿈꾸면 바로 팔게.
정 대리 아니요. 전 열심히 일하는 거 밖에 없습니다. 그런 운은 따르지 않아요.
박 인턴 정 대리님, 지난번에 불만 있으시다면서요. 휴가 좀 더 달라고…
정 대리 넌 안 그래? 왜 날 공격해.
김 과장 그럼 날 공격하는 건 되고?
박 인턴 아무래도 전… 과장님보단 대리님에게 공격하는 게 편한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정 대리 뭐? 그렇게 따지면 박 인턴 넌? 이 일 안 해도 된다며.
박 인턴 제가 언제요? 이거 네거티브입니다. 전 그런 말 한적 없는데요?
정 대리 진짜 부모님 아프신 건 맞아?
박 인턴 네, 맞습니다.
정 대리 다 끌어오면 10명 맞고?
박 인턴 등본 보여드릴까요?
정 대리 너 이거 거짓말하는 거 아니다. 부모님을 내기에 거는 거야.
박 인턴 그러니까… 저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아프십니다.
김 과장 (박 인턴에게) 야. 네가 그만둬.
박 인턴 과장님, 제가 왜요?
김 과장 그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박 인턴 저를 위해서 매일 백일기도하시는데도요?
정 대리 그건 어느 집이나 그래. 그리고 백일기도는 백일만 하는 거야.
김 과장 그래, 그건 정 대리 말이 맞아.
박 인턴 그럼 도대체 어떻게 정하시려고요?
김 과장 가장 회사에 타격이 적은 사람이 아무래도…
박 인턴 그건 누가 정한 건가요? 그럼 결국 저군요. 당연히 제가 얼마 안 됐으니…
정 대리 네, 그건 조금 불공평한 거 같아요.
김 과장 (정 대리에게) 이거 왜 이래. 너한테도 유리한 건데…
박 인턴 제 의견은… 오래 일하신 순서부터 나가시는 게 낫다고 봅니다.
김 과장 누가 네 의견을 물었어?
박 인턴 부장님께서 저희끼리 정하라고 하신 거 아닌가요? 저한테도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과장 부장은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거야?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여전히 밖에선 칼바람이 분다.

김 과장 이래서 결정할 수 있겠어? 서로 비방하고, 남는 게 뭐야. 남는 사람도 결국 제대로 지낼 수 있겠어? 이렇게 감정이 상해서야.
정 대리 아니, 회사는 생각이 없답니까? 우리 중에 아무나 그만둬도 상관없다는 거죠? 머릿수만 줄이면 된다니 그런 생각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저희가 없으면 회사가 과연 잘 돌아갈까요?
김 과장 응. 너무나. 잘. 너무 열받게도 잘 돌아가. 안타깝지만 내 경험으론 그래.   (사이) 아니야. 멋진 거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난 절대 안 돼. (사이) 6개월 준단다. 내가 15년을 넘게 일했는데, 겨우 마지막 정리할 시간은 6개월 준대. 그게 말이 되니? 나 이제 40대 시작이야. 이제 와서 어디 가서 뭐 하라고. 벌써부터 집에서 쉬라고? 사업할 돈이 있어야 사업이라도 할거 아니야. 쥐꼬리만한 퇴직금에다가 사채보태서 치킨가게라도 하라는 거야? 집에서 가족들한텐 내가 벌써 부장됐고, 연봉 오르면 뭐 할지 계획까지 다 세웠더라. 아직 집 하나 마련 못했는데, 난 어떡하니. 너희들은 아직 젊으니까 기회가 있잖아.
정 대리 아직 전 과장님만큼 퇴직금도 안 나와요.
김 과장 퇴직금이 뭐가 중요해. 다시 취업하면 되지.
박 인턴 네, 맞아요. 대리 경력직으로 취업 가능해요. 전 아직 경력이 안돼서…

명예? 특별 명예? 무슨 훈장이라도 된답니까?
명예롭게! 특별하게! 특별명예퇴직!
이제 30대 초반인데, 무슨 명예퇴직이에요.

정 대리 내가 무슨 경력으로? (김 과장에게) 솔직히 이 업종의 경력으로 어딜 가서 일해요? 세상에 이 정도 경력 없는 사람이 어딨다고요. 경력직은 무슨. 그냥 실업자 되라는 거죠. 아직 젋다 너. 나가자. 명예롭게. 명예? 무슨 명예요? 특별 명예? 무슨 훈장이라도 된답니까? 명예롭게! 특별하게! 특별명예퇴직! 이제 30대 초반인데, 무슨 명예퇴직이에요. 전 사실 너무 섭섭했습니다. 황금기수다 뭐다. 네, 그땐 회사가 상황이 좋았으니 절 뽑았겠죠. 근데 뽑아놨으니 이제 그만이라는 건가요? 전 부장님도 섭섭해요. (부장 말투로) 너 그림 그리고 싶었잖아. 어때, 예술 멋지지? 예술 해. 예술. 네, 저 이쪽 전공 안 했어요. 근데 예술 전공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거 싫어서 더 열심히 했어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은 대학원 가고 교수까지 가야지. 학생들의 존경 받으며 교수, 어때? 10년, 20년 뒤에도 네가 이 회사에 있을 수 있겠어? 여기서 버티는 게 불행이야. 직장 상관을 떠나서, 너의 인생을 응원한다고, 너만은 그러지 말라고, 꿈 찾아 떠나라고. 그래서 저는 뭐라고 했냐고요? 아직 모르겠다고 했어요. 전 그만둘 수 없다고. 그랬더니 부장은 여기 남아봤자 회사가 널 가만두겠니? 이번에 버텨도 다음 분기에 매출 떨어지면 또 반복이야.  내가 형 같아서 말해주는 거야. 형이니까, 형이라서… 세상에 형이 그러나요?
김 과장 부장 동생 많아서 좋겠네. 
정 대리 네가 남으면 근무평가를 좋게 줄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다. 넌 눈엣가시 된다. 6개월 줄게. 나가자. 노조보다 회사가 더 준비 많이 했다. 이길수 있어, 너? 전 이 말 듣고, 그만둬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그만둡니까? 근데 오늘은 정말 비참해지네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요? 그렇게 비겁하게 버텨야 하나요?
김 과장 그 얘기, 나도 들었어. 늘 반복이지. 때만 되면. 근데 사실이야. 노조가 회사를 이길수가 없어. 눈엣가시. 그것도 맞아. 나도 명예롭게 나가고 싶었지. 사람들은 다 욕해. 왜 그렇게까지 버텼냐고. 근데, 여길 나가면 어디로 가려고?

모두 말없이 정적만 흐른다.
밖에서 바람 소리도 잦아든다.

김 과장 (정 대리를 위로하며) 정 대리 꼭 버텨. 여기서 우리끼리 유치하게 싸우고 있지만, 우린 버텨야 해. 물론 박 인턴에게 그만두라는 건 아니야. 박 인턴도 버텨야 해.
박 인턴 (감동하며) 과장님.
정 대리 과장님, 설마?
김 과장 아니 나도 물론 열심히 버틸 거야. 나도 못 나가. 이게 우리가 앞으로 계속해야 할 일이야. 우리들 앞으로도 서로 유치하게 비방하고 싸우겠지. 근데 그거밖에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해? 결국 누군가는 그만둬야 하는데 어떡하냐고.
정 대리 전 두 번 버림받을 겁니다. 예술계에서도, 새 인생을 찾아들어온 여기 이 회사에서도.
박 인턴 저도요. 대학 전쟁에서도, 여기에서도요.
김 과장 아직은 아니야.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고.
정 대리 그래야죠. 후회가 없으려면요. 근데 어쩌죠? 누가 그만둬야 하죠?
김 과장 그만둬야 하는 사람은 없어. 다들 이유가 있고, 삶이 있으니까.
박 인턴 그럼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 시작인가요?
김 과장 그래야지. 그래서 누가 그만둘까? 난 안돼.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할 거니까.
정 대리 저도 마찬가지요.
박 인턴 저 또한입니다.
김 과장 이거 정말 어려운 싸움인데? (정 대리에게) 근데 부장이 정말 그래? 회사가 이번에도 노조보다 준비 많이 했대?
정 대리 네, 엄청요.  
김 과장 노조는 뭐 하는 거야? 뭐 맨날 져.
박 인턴 언젠가는 이길 수 있겠죠?
정 대리 언젠가는 이길 순 있겠지. 우리 그만두면.
김 과장 이겨도 뭐 별거 있겠어? 결국 사장이나 돼야 안심하며 사는 거지.
정 대리 이참에 퇴직금으로 사장님 되시는 건 어떠세요?
김 과장 이렇게 갑자기 공격들어오기야? 정 대리는 미술학원 원장 어때?
정 대리 (박 인턴에게) 넌 왜 가만히 있어? 넌 복사만 할 거면 그만두는 게 어때? 인쇄소 알바 어때? 인턴이나 알바나.
박 인턴 이거 왜 이러세요? 제 복사 속도를 누가 따라옵니까? 제대로 회사에서 일만 시켜 주시면 제가 정 대리님만큼 못할까요?
김 과장 맞는 말이네.

또다시 찾아온 정적.

정 대리  근데 도대체 부장은 언제 옵니까?
김 과장 부장이 지금 그 반말 들었으면 아마 너부터 짜를 거야.
정 대리 이젠 모르겠습니다. 뭐 오지도 않는데요.
박 인턴 근데 슬프네요.
김 과장 뭐가?
박 인턴 결국 우리 중에 누군가는 그만둬야 하는 거죠? 과연 누굴까요?
정 대리 그게 기대돼? 난 살 떨리는구먼.
김 과장 (괴로워하며) 차라리 명예로울지도 몰라. 퇴직이.

정 대리와 박 인턴, 김 과장을 동시에 쳐다본다.

김 과장 (말실수했다는 듯) 농담. 거짓말. 조크.
정 대리 한 번만 눈 감아 드립니다.
김 과장 고맙네. 나도 이렇게 비굴하게 살고 싶진 않다네. (밖에 큰소리로 외친다.) 으아! 이 녀석들아 칼바람 2번만 더 버티게 해줘라! 애들 대학만 들어가자! (잊고 있던 부장이 떠오른다.) 그나저나 도대체 부장은 언제 오는 거야.

울려 퍼지는 커피숍 마감 음악 소리.

김 과장 가자. 여기 주인도 퇴근해야지.
정 대리 네. 내일 또 와요.
박 인턴 그래도 과장님, 대리님과 함께해서 다행이에요.
정 대리 우린 서로 적인데도?
박 인턴 그래도 왠지 적 같지가 않아요.
정 대리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 이런 게 그런 의미인가?
김 과장 자, 퇴근하자고!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김 과장, 정 대리, 박 인턴, 어깨동무한 채 커피숍을 나간다.
막.

 

당선소감-김연민 / “불확실한 미래, 더욱 고민하고 노력하는 계기로”

▲ 김연민

막연히 신춘문예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당선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긴 하는군요.
당선되면 한없이 기쁠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기분이 이상합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돌이켜보면 극작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 희곡 쓰기에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응원과 조언을 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내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글을 쓰고 연출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신 김재엽 연출님과 극단 드림플레이, 극작에 있어서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신 김낙형 연출님과 이해제 연출님, 희곡이 완성되면 늘 함께 읽어주는 동료, 마지막으로 언제나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이 많은 작품에 기회를 주신 경상일보 심사위원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요즘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스스로 흔들리던 시기였습니다. 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더 고민하고 노력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힘내서 열심히 작품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약력
-1983년 경기 안산 출생
-극단 드림플레이, 스토리 포레스트 연출
-2011년 안산 창작희곡 공모 수상
-2016년 대한민국 신진 연출가전 연출상 수상
-연극 ‘이카이노 이야기’ ‘쯔루하시 세자매’ ‘종로 갈매기’ 등 연출

 

심사평-김삼일 / “리듬과 템포가 적절하게 녹아든 극적 구성 돋보여”

▲ 김삼일

예심을 통과하고 본심에 올라온 희곡은 ‘명예로울지도 몰라 퇴직’ ‘연’ ‘97% 칼슘으로 남다’ ‘언어의 시간’ ‘담배를 피우는 사이’ ‘족욕실’ ‘물처럼 산소처럼’ ‘면도날 위에 앉은 새’ ‘귀하신 몸’ 등 9편이었다. 9편 모두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라 당선작을 가려내는데 땀을 흘렸다. 대사도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극적 구성도 치밀하게 한 흔적들이 보였다.
다만 희곡은 읽기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올렸을 때 관객들에게 어떻게 에너지가 전달될 것인가를 염두에 두었을 때 더 좋은 희곡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최종 ‘연’과 ‘명예로울지도 몰라 퇴직’ 두 편을 가지고 세밀하게 살펴본 결과 극적 구성이나 갈등구조, 대사의 응축미가 잘 나타났는데 ‘연’은 인간의 죽음과 삶을 소재로 택해 이색적인 극적 구성으로 전개했으나 암전이 너무 잦아 연극의 흐름이 끊기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명예로울지도 몰라 퇴직’은 단 3명의 등장인물을 등장시켜 간결하고 적절한 호흡을 계산한 함축된 대사와 신체적 동작을 유발시키는 순간적 리듬과 템포가 적절하게 녹아있는 극적 구성이 좋았다. 소재도 명예퇴직이라는 절박한 순간을 긴장과 웃음, 진실된 과장의 기법으로 구성해 무대에 올렸을 때 관객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적셔 줄 것으로 기대돼 당선작으로 뽑았다.

약력
-KBS 울산방송국 보도부장 역임
-KBS 대구방송총국 취재부장 역임
-포항시립극단 상임연출가 역임
-제3회 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수상
-현재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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