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한지 20년 되는 해다.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을 통해 ‘스물세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0세 약관(弱冠)을 맞이한 울산을 키운 팔할 이상은 바로 울산시민들일 것이다. 누군가는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산업현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렸고, 누군가는 울산의 수출전진기지인 울산항을 철통같이 지켜냈다. 울산의 발전을 이끌고 함께 성장한 울산시민들이 성년 울산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전 울산항 보안실장 서상대씨

“울산항 위상 잘 지켜가기를”
전 울산항 보안실장 서상대씨
20년새 부두시설 40% 증가·CCTV로 보안강화
지난해 말 퇴임…울산항 발전상 지켜봐와 뿌듯

울산이 지금과 같이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이자 산업수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울산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류를 책임지는 수출전진기지 울산항이 든든히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묵묵히 한 자리에서 울산항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항만 종사자들의 땀이 오늘날 울산항의 위상을 만들었다.

20여년간 울산항의 경비보안을 책임진 서상대(60·사진) 보안실장은 2016년말 정년퇴임을 했다.

1년 365일 불철주야 울산항의 불빛을 밝히던 서 실장은 돌아보면 힘든 일도 있었지만, 울산항의 발전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세월이 자신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서 실장은 “돌아보면 울산항이 20년 사이에 규모도 커졌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본격적으로 항만에 크레인 등 장비들이 들어선 1970년대 이후 1990년대에는 제품의 규격화가 되면서 시설들이 많이 현대화됐다. 그러면서 부둣가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울산항은 1~6부두까지 있었다. 20년 사이에 울산본항 7~9부두와 울산신항 등이 생겨나면서 규모적으로 부두시설이 40% 이상 증가했다.

또 항만보안에 있어서도 시설 현대화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2005년부터 울산항에 CCTV가 도입된 이후 현재 300여대의 CCTV가 보안직원들의 눈과 귀가 되어 울산항을 지키고 있다.

그는 “CCTV가 없던 시절만 해도 사람이 직접 항만을 돌아다니면서 순찰업무를 담당했었는데, 지금은 모니터를 통해 울산항 구석구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예전엔 없던 밀입국자 등이 생겨나면서 보안에 대한 중요도는 예전보다 더욱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서 실장은 “현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며 “후배들뿐만 아니라 울산시민들도 울산과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책임지고 있는 울산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잘 지켜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자영업자 윤준식씨

“전통시장 활기 되찾았으면”
자영업자 윤준식씨
수암시장 10평 가게에서 시작해 식육식당 운영
손님들이 줄 서서 물건 사가던 그 시절 그리워

흔히 울산의 주력산업으로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을 꼽지만 노동자뿐만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울산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했다.

남구 무거동에서 식육식당을 운영하는 윤준식(47·사진) 대표는 20년 넘게 울산에서 식육업에 종사하고 있다.

25살때부터 남구 수암시장에서 식육점 칼을 잡기 시작한 윤 대표는 손님들에게 싸고 맛있는 고기를 제공하겠다는 마음으로 20여년째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윤 대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식육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안좋고 나이 든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었다”며 “20대의 젊은 내가 식육업을 한다고 했을때 집안에서 반대도 많이 했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식육점을 차리기 위해 2년여동안 식육점에서 무보수로 일하며 기술을 배워 수암시장에서 30여㎡(10평)짜리 첫 가게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인근의 야음시장보다 규모가 작았던 수암시장은 제대로 된 상가도 없이 노상에서 물건을 팔던 시절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경매장과 도축장을 찾아 물건을 받아오는 도매를 시작해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곧 주변에 입소문이 나면서 가게를 열며 얻은 빚을 1년도 안돼 다 갚았다”며 “그리고 2000년도 초반에 들어서면서 수암시장이 번창하던 시기에는 사람도 많고 가장 활기가 넘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암시장도 주변에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지역의 다른 전통시장들과 마찬가지로 점차 활기를 잃어갔다고 한다.

윤 대표는 “지금도 10년간 장사를 했던 수암시장을 자주 찾는다. 아케이드도 설치되고 예전보다 여건은 좋아졌지만 사실 옛날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건을 사갈 정도로 사람이 더 많았다”며 “시장사람들도 예전만큼 사람이 오지 않으니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하더라. 지금은 사람들이 대형마트에 익숙하지만 다시 전통시장이 활기를 찾는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 사진작가 김남효씨

“문화 콘텐츠 개발 힘써야”
사진작가 김남효씨
27년째 한화케미칼 근무…사진작가로도 활동
유화공단 비롯한 울산 변화상 카메라로 기록

지역경제 발전의 역군이자 사진으로 울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기록해 가고 있는 김남효(50·사진) 사진작가는 한화케미칼 울산공장에서 27년째 재직 중이자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울산이 쉼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동안 한켠에서 사라진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아 울산의 역사와 문화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김 작가는 1989년 옛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에 입사해 당시 1공장 증설현장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울산석유화학공단에서 근무 중이다. 경남 하동군이 고향인 김 작가는 일자리를 찾아 울산으로 왔지만, 이후에 그 누구보다 울산을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입사 당시를 돌이켜보면 한화케미칼 회사의 규모만 20여년 전보다 10배 이상은 커진 것 같다. 그렇게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울산이 발전하는 과정에 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뿌듯하다”며 “우리가 땀흘려 일한 만큼 경제가 발전하고 울산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타지에서 온 김 작가의 눈에는 당시 울산의 바다와 공단 등 모든 풍경이 새롭고 신선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공단의 확장으로 인해 이주하는 사람들과 사라지는 마을 등 울산의 변화상을 직접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김 작가는 “모든 시간은 지나가고 아련해진다.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내가 일하는 공단 주변과 사라지는 풍경을 위주로 사진을 찍었다”며 “이후로는 울산의 앞바다, 태화강, 반구대 암각화 등 울산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장소에 대한 애착이 생겨 꾸준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울산이 20여년간 이룩한 경제발전을 넘어 문화적인 콘텐츠 개발에 주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돌아보면 울산은 경제적인 것들은 다 이뤄냈고, 환경적인 부분도 많이 개선돼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사실 울산은 참 많은 걸 가지고 있다. 선사시대 역사를 간직한 반구대 암각화 등 울산만의 콘텐츠를 발굴해 경제와 환경, 문화가 균형잡힌 도시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이우사기자woosa@ksilbo.co.kr 사진=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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