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양심·소신에 따라
합리적 정치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율성 전제돼야 정치도 발전

▲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재판의 결과에 따라 다시한번 정치권에 큰 파도가 몰려 올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통치방식을 넘어서 민주세력과 소통해야 함에도 권위주의적 통치로 일관한 나머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번 국민의 분노는 박 대통령의 실정을 넘어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국정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치권에서는 국정전반의 개혁을 논의하기 보다 이번 사태를 대통령중심제의 폐해로 진단하면서 권력구조 중심의 개헌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는 느낌이다.

대통령중심제나 의원내각제는 그 운영에 따라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제도일 뿐 어느 한 쪽도 완벽할 수는 없다. 일각에서 논의되는 이원집정부제 또한 총리와 대통령간의 권한이 충돌해 임기 내내 국가가 혼란상에서 헤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현재 우리 정치의 혼란상을 권력구조의 잘못으로 진단하는 것은 헌법을 잘 못 이해한 오진일 따름이다.

어느 제도를 택하던 의회가 정치의 중심에 있는 한 이를 구성하는 국회의원들이 양심과 소신에 따른 합리적 정치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율성이 전제될 때 그 제도의 민주적 원리가 발휘되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에 의한 상대적 진리의 발견 즉 집단지성의 신뢰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지성이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개의 주체가 자유의지에 기반해 합리적인 이성을 통한 의사표현이 가능해야 한다.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의 어떤 사항에 대한 의사표시는 자율성에 근거해야만, 집단지성을 오염시키지 않게 되어 상대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의 자율성을 오염시켜 정파적 의사표시를 강요하는 원인은 두 가지 정치 풍토에서 찾을 수 있다.

그 하나는 힘에 의한 공천 관행이다. 정당의 공천은 투명성, 공정성, 객관성을 갖춘 방법에 의해야 함에도 지금까지 각 정당들은 형식적인 공천심사위를 구성해 놓고는 당대표 혹은 청와대 실력자들의 계파 싸움의 산물을 오더 형식으로 내려 보내곤 하였다. 이렇게 계파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의원들은 계파이익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게 되거나, 공천과정에서 들어간 금전을 회수하기 위해 매수된 의사표시를 할 수밖에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기초인 집단지성이 오염되어 국민들의 생각과는 유리된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계파공천의 대표적인 예가 지난 총선 때 이루어진 새누리당의 공천파동이라 할 것이다. 결국 집권여당이 과반 득표에 실패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작금의 탄핵 정국의 시초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다른 하나는 당론 절대시 풍토이다. 현행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주민들의 의견이나 본인의 합리적인 판단에 관계없이 당론에 따른 의사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국가적 사항이 집단지성이 아닌 정파 싸움의 산물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에다 국회선진화법이 더해져서 국가적 과제의 정체현상이 심해져 국정이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숙원사업인 의료보험개혁이 쉽지 않았던 것도 반대당인 공화당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주당 내에서도 안건에 따라 의원들의 이해득실이 엇갈리고, 소신에 따라 투표하는 크로스보팅이 그 원인이다. 자신의 당이 만든 법이라 해도 자신의 지역구에 유리하지 않거나 소신과 반하면 투표하지 않는다. 미국은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의원들의 자율성에 기초한 크로스보팅 제도가 일반화돼 있기 때문에 의회와 행정부의 균형 잡힌 정치가 가능하다. 우리도 제16대 국회때 386의원들 사이에 크로스보팅제 도입이 이슈화됐다가, 2001년에는 김홍신 의원을 중심으로 도입을 선언했으나 논의만 무성할 뿐 결론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 국민들이 지독히 혐오하는 계파정치, 당리당략 정치, 보스독식 정치의 종식은 권력구조의 변화만으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의원들이 공천 줄서기와 당론으로부터 해방돼 자율성을 회복할 때 우리 정치는 진일보할 것이고, 이를 전제로 권력구조 변경의 개헌도 검토돼야 할 것이다.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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