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바람이 고즈넉이 불어오는 정자에 앉아 벼루에 먹을 갈고 천천히 무엇인가를 적거나 그리는 여유와 멋. 현대인들이 꿈꾸는 소위 휴식과 힐링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문인들이 서재에서 쓰는 벼루, 먹, 종이, 붓. 문방사우(文房四友) 또는 문방사보(文房四寶), 문방사후(文房四侯)라고도 불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라면 누구나 곁에 두고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는 벗과 같은 필수품목들이다.

생활유적이나 건물지유적 조사가 잦아진 요즘 부쩍 벼루의 출토가 많다. 누군가는 “벼루의 예술은 당시 민중예술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서만도 5세기 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모두에서 화려한 장식의 토제원형다족연(土製圓形多足硯)이 출토되고 있다.

지난해 초에는 경주 월성에서 관청건물지 여러 동과 50여점의 신라시대 토제 벼루가 쏟아져 나왔다. 출토된 벼루 편에는 다리에 사자의 발이나 코끼리의 발 등 다양한 불교적 문양이 조각돼 있었다. 불교문화와 밀접했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조선 초기는 벼루의 전성기라고 할 만하다. 향교와 서원이 늘고 문예 부흥기를 이루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벼루가 제작됐다.

▲ 고려시대 석재 벼루(옥동-농소간도로부지 토광묘48호 출토, 울산발전연구원, 2014).

재질은 흙, 도자기, 돌, 동, 옥, 나무, 벽돌, 기와 등으로 다양한데 삼국시대에는 주로 흙으로 만든 토연이 많았고 고려부터 조선시대에는 석연이 주를 이룬다. 벼루의 주 사용면인 연지와 연당의 형태에 따라 원형, 방형, 다각형으로 나누고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경우도 있다. 용도에 따라 서사용, 휴대용, 회화용, 탁본용, 문방용, 화장용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최근 유적에서 출토되는 벼루의 대부분은 휴대용벼루인 크기가 작은 행연(行硯)들이다. 벼루에 먹을 갈아 한자씩 정성들여 사랑과 진심을 전하던 옛사람들의 애틋함이 유독 그리운 연두(年頭)이다.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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