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철作. FRP, 43×18×60㎝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한 나무와 숲에서 ‘열정’을 읽는다. 내 마음 속 뜨거운 에너지가 투영된 것일까. 풍성하게 몸집을 불리는 여름 숲, 솟아오르는 열정을 추스리기 위한 몸짓일 것이다.

떠나고 싶다. 어딘가로 자꾸만 떠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떠났다 돌아오면 일상의 중압감이 그대로인데도 혼자서 무작정 길을 떠난다.

일억 사천만년 전에 생성된 우포늪의 갈대숲 사이를 걸어 다니기도 하고 억겁의 시간이 깔린 늪 위로 일몰이 덮여 오는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했다.

이른 봄 고목에 핀 홍매가 보고 싶을 땐 무작정 순천행 버스에 올라타기도 했다. 다행히 개화시기를 잘 맞춰 도착하면 볼 수 있지만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선암사 홍매 앞에서 겨우 올라오는 여린 꽃봉오리만 보고 돌아와야 할 때도 있다. 때로 이미 다 지고 난 뒤 가지에 매달린 꽃자리만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의 재촉이 멈춘
생의 그 어느 언저리 시절부터
주어진 삶의 주변을 즐길 여유 배워
어느새 모호해진 가상과 현실의 경계
매 순간을 놀이로 즐길 수 있게 돼
떠나지 않아도 하루하루 신비한 여행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계곡 쪽으로 정면을 삼은 옥산서원 독락당에 도착했을 땐 세상과 절연을 하고 자연 속으로 세계를 열어두고 살아가겠다는 회재 이언적의 사유에 잠시 도취되기도 했었다.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려본다면 저물 무렵 부여정림사지석탑의 그 수학적 비례의 아름다움을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없지 않았나 싶다. 처음으로 수학적 비례에 따른 규칙이 아름다움이란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눈 앞에서 바라보며 어둠이 탑을 감출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부여박물관에 자그맣게 놓여 있던 백제금동대향로와의 만남도 잊을 수 없다. 금동대향로에 조각된 신선들이 노닌다는 박산의 봉우리마다 신비로움이 깃들던 시간, 박산은 신선이 산다는 바다 위의 전설상의 산을 가리키는데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축소돼 그 첩첩산중을 날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몸이 향하는 방향을 바꾸는 일이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던 시간들이 어느새 이제 떠나지 않아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오래 뿌리를 내리고 살다 보면 나무의 시절처럼 열매와 푸른 잎들의 여행을 함께 겪기도 하고 계절의 고락을 나누기도 하며 빈 가지의 시리고 찬란한 시절을 고스란히 겪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우주의 밤과 낮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다니게 되는 것이다. 요즘 자주 떠올리게 되는 칸트의 묘비명을 읊어본다. ‘나의 마음을 채우고, 내가 그것에 대해 더 자주, 더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늘 새로운 경외심과 존경심을 더해주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 그리고 내 마음 속의 도덕률.’ 어떤가? 너무 멋지지 않은가? 내 마음 속의 도덕률과 저 우주의 하늘의 별들과 동일시되는 경지가 너무 찬란해서 눈이 부실 정도인 것이다.

떠날 수 없는 여행, 일상에 사로잡힌 자신을 벗어나고 싶은가? 주변을 즐길 수 있게 된 나에게 이런 것은 이제 아쉽질 않다.

낙엽이 떨어지고 난 뒤 빈 가지들로 채워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시베리아 벌판에 서 있는 것이라 여기기도 하고 시린 겨울 소나무들이 서 있는 시퍼런 숲의 정경을 바라볼 땐 핀란드의 어느 숲 한 가운데 서서 호흡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시내 거리에 세워진 대형 트리를 쳐다보며 뉴욕 거리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떠나고 싶던 시절, 몽마르트르 언덕은 세잔이 화구를 메고 오르내리던 곳이라 한 번 올라보고 싶었던 곳이다.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에 나오는 ‘몽마르트 대로; 햇빛 비치는 늦은 가을날 안개 낀 아침’의 풍경 같은 곳은 아직 대하질 못했지만 언젠가 나와 마주칠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어쩌면 스쳐지나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 파리 거리를 하루 종일 어슬렁거리며 어디 도착할지를 정하지 않아도 좋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좋은 채로 그렇게 걸어 다니고 싶었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풍경이었다. 햇살이 따스한 날이나 조금씩 비가 흩뿌려도 좋은 날에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무작정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녀 보아도 좋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도망치다시피 길을 떠나기만 했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그 때와 다른 시간을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을 떠나서 도착한 그 곳엔 풍경과 역사가 있었고, 낯선 공기들이 떠돌고 있었다.

어느새 현실이 가상이며 가상이 또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인지 모르겠다. 아마 그 무렵부터일 것이다. 스스로 현실을 가상현실처럼 즐기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때론 더 나아가 증강현실화 하면서 매 순간을 놀이로 꾸며보게 되는 것이다.

떠날 수 없는 여행이 떠나지 않는 여행이 되었지만 우린 떠나지 않아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인해 우주의 광활한 공간을 늘 여행을 떠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하루하루가 너무 신비롭지 않은가.

 

■ 김진철씨는
·개인전 3회 및 80여회 그룹전
·한국현대미술대전 조각부 대상(1993)
·충남미술대전 초대작가
·제주특별자치시, 통일미술대전 심사의원 역임
·울산대, 충남대 강사 역임
·울산미술협회 사무국장
 

 

 

 

 

■ 강현숙씨는
·시인
·2013년 시안 신인상으로 등단
·울산작가회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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