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씻어 안치는데 어머니가 안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나는, 김씨! 하고 부른다
사람들이 들으면 저런 싸가지 할 것이다
화장실에서 어머니가
어!
하신다
나는 빤히 알면서
뭐해?
하고 묻는다
어, 그냥 앉아 있어 왜?
하신다
(중략)
어머니와 아들 사인데 사십 년 정도는 친구 아닌가
밥이 끓는다
엄마, 오늘 남대문시장 갈까?
왜?
그냥
엄마가 임마 같다

▲ 엄계옥 시인

밥 냄새만큼이나 마음이 훈훈해지는 시다. 여든 다섯 먹은 엄마와 마흔 한 살 먹은 아들의 대화가 정겹다. 이런 아들이라면 딸 열 부럽지 않겠다. 살기가 삭막할수록 가족 간의 유대가 멀다. 밥벌이를 위해 집을 떠나 살기 때문이다. 부모도 자식들도 함께 살길 꺼리는 세상이다. 지금 아들은 늙은 엄마를 위해 쌀을 씻어 안치며 화장실에 계신 엄마에게 농을 건다. 아마도 엄마 성씨가 김 아무개인가보다. 엄마를 김씨!라고 부르는 걸 보면. 김씨! 하고 부르면 엄마 쪽에서도 어!하는 대답이 곧장 돌아온다. 살아온 세월만큼 서로에게, 호칭에 익숙하다는 얘기다. 엄마와 사십 년 지기니 그보다 더 친한 친구가 또 있을까. 임마 같다는 말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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