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없고, 가격 뛰니…전통시장에 ‘흥정’ 사라져
일부 수산물, 상인 대상 경매시장조차 안 열려

설 대목을 앞두고 전통시장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우와 갈치 등 시장 주력 품목인 농축수산물값이 최근 크게 올라 손님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재래시장에서 직접 만난 상인들은 “도매에서 떼오는 가격이 워낙 많이 올라 가격을 내릴 수도 없다”며 “불황에 물가 인상까지 겹쳐 매출이 크게 줄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6일 낮 송파구 방이 시장에서는 흔한 ‘흥정’ 풍경조차 찾기 어려웠다. 가격을 들은 손님들은 그대로 물건을 내려놓고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수산물 매장을 운영하는 이 모(41·남) 씨는 “올해 들어 하루 매출이 작년보다 15~20% 줄었다”며 “특히 갈치는 너무 비싸져 판매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갈치 한 마리를 2만5천 원(최고가)에 팔고 있었는데, 이는 지난해 이맘때보다 30%나 오른 값이다. 냉동 갈치 가격도 1년사이 20%나 올랐다.

이 씨는 “갈치가 아니라 금치”라며 “잘 팔리지도 않지만, 중국 어선이 갈치를 쓸어 가 물량확보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상인들이 갈치를 구하는 ‘경매시장’조차 잘 열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 오징어 가격도 중국 불법조업의 여파로 올랐다. 이 씨는 냉동 오징어 두 마리에 6천 원에 팔고 있었다. 1년 전 같은 돈이면 세 마리를 줬던 것과 비교하면 값이 50%나 뛴 셈이다.

이 씨는 “보통 오전 8시에 출근해 하루 13시간 동안 일한다”며 “국내 주요 유통업체에서 일하다 고졸 출신의 한계를 느끼고 퇴사 후 요식업 등을 하다 시장에 안착했는데 장사가 너무 안되니 몸보다 마음이 더 괴롭다”고 호소했다.

예년 같으면 설을 앞두고 활기를 띨 축산물 매장도 조용했다.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직후 잠시 안정을 찾았던 한우 값이 설을 앞두고 다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한우전문매장을 운영하는 강 모(55·남) 씨는 고무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붉은빛 한우를 가리키며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강 씨는 한우 등심(1+등급) 한 근을 5만8천800원에 팔고 있었는데, 이는 작년 1월보다 10% 높은 가격이다.

그는 “한우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값싼 육우를 찾으면서 하루 매출이 30% 감소했다”며 “설 특수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 밖에 무(1개 3천 원), 당근(1kg 5천500원), 사과(5개 5천 원) 등도 가격이 올랐다.

김 모(41·여) 씨는 “반찬거리를 사러 전통시장에 왔다”며 “사과 등은 마트보다 싼 것 같은데, 갈치 등 수산물은 확실히 재래시장이 비싼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통의 식당들도 농축수산물 재료값 인상을 반영해 값을 따라 올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방이시장에서 된장찌개 등 5천~6천 원 짜리 한식을 파는 음식점 주인 박 모(57·여)씨는 “올해 상반기에 음식 가격을 500~1천 원 정도 올릴까 생각 중”이라며 “우리 식당에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건설 현장 인부들이 많이 와 마음에 걸리지만, 이런 물가 추세라면 살기 위해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와중에 일부 매장은 ‘계란 대란’ 여파로 매상이 오히려 늘어난 곳도 있었다. 한 매장에서 대란 한 판(30알)과 왕란 한판(30알)은 각각 1만500원, 1만1천800원에 판매됐다.

이 매장 점원 김 모(32·남) 씨는 “계란 가격이 비싼데도 수요가 많으니 매출은 늘었다”면서도 “주변 상인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내색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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